행정 하는 소설가
조직에서는 각자의 권한을 존중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명하복(上命下服), 연공서열(年功序列)
조직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정적 단어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유교문화를 사회규범으로 여기고 생활을 영위해왔다. 아직까지도 그 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부모에 대한 효도, 나라에 대한 충성, 스승과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이유 불문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관습으로 여겼다. 그런 관습으로 나이가 많고 직급에 높은 사람에게 그에 따른 권위가 주어졌고 그들은 저절로 얻은 권위를 공과 사 구분 없이 행사하는 관행으로 이어졌다. 대학교수나 직장상사의 집안 경조사에 불려 가 가족의 일원처럼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던 시대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도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시대는 변한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조직문화도 마찬가지다. 상명하복과 연공서열은 대부분의 회사 조직문화에서 듣기 어려운 생소한 언어가 된 지 오래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소 무리한 태도로 업무지시를 하면 꼰대가 되고, 구시대적 권위주의자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최악의 경우 직장 내 고충처리위원회에 회부되거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로 곤혹을 치루기도 한다. 그로 인해 몇몇 고위직 임원들은 자신들의 인권과 권위는 누가 지켜주냐고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직장 내 갈등은 대부분 각자의 권한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각자의 역할과 자리를 벗어나 상급자가 하급자의 역할까지 하려고 하거나, 반대로 하급자가 상급자의 역할을 남겨두지 않고 처리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월권이라 부른다. 문서를 최초 기안하는 담당자들은 말한다.
"우리에게 무슨 권한이 있냐,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는데..."
담당자의 권한이 가장 크고 막강하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담당자의 권한이 가장 크고 막강하다. 모든 사업은 담당자로부터 시작되고 끝이 난다. 특히 공공영역에서의 업무는 대부분 담당자의 의지에 따라 일을 시작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 그것이 담당자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권한이다. 물론 그 권한을 악용한 사례를 우리는 소극행정이라 부른다. 물론 상급자의 업무지시로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해도 상급자가 실무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일일이 지시할 수는 없다. 결국 실질적인 중요한 결정들은 담당자의 역할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행정조직에서 가장 힘이 센 직원은 담당자다. 아무리 상급자에게 말을 해도 그걸 시행하는 사람이 담당자이기 때문이다.
공공행정 조직에 있다 보면 이런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대표자나 고위직 직원을 찾아와 업무에 관해 일종의 특혜적 부탁?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대부분 그 자리에서 고위직 직원은 해당 업무의 담당자나 중간관리자를 호출한다. 그리고는 실무적으로 검토해 볼 것을 지시한다. 찾아온 손님은 고위직 직원이 지시했으니 곧 자신의 제안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무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것은 열에 아홉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말 일이 성사되길 바란다면 우선 담당자를 설득하라. 그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그런 권한 때문에 간혹 실무자가 관리자의 권한을 침범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결정을 실무자가 하기 때문에 관성이 생겨 당연히 모든 업무의 결정을 담당자가 해야 된다는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결재가 진행되는 중간에 관리자의 이견이 있거나 수정 지시가 있을 때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권한을 행사했으면 그 이후의 일들은 이후의 권한자에게 넘겨야 한다.
담당자에게 권한이 있듯, 관리자에게도 주어진 권한이 있다. 각자의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관리자가 담당자가 기획한 사업방향의 전체를 틀어버리거나 이해도가 부족해 엉뚱한 방향의 지시를 한다면 담당자는 적극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자가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그것이 비상식적 업무지시가 아니고서는)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한다. 물론 그로 인한 책임은 관리자에게 있다. 중간 관리자로 인해 수정된 사항을 반드시 문서로 남겨놓아야 한다. 그래야 수정된 업무방향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 담당자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기획안을 작성하거나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결재권자들과 상의를 하는 것이 좋다. 관리자는 말 그대로 여러 사업을 관리해야 되기 때문에 사전 회의에서 모든 것을 지시할 수는 없다. 큰 틀에서의 방향성이나 특정 부분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담당자는 자신이 기획한 사업의 방향이 틀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리자의 의견을 보고서에 어느 정도 녹여내면 중간에 이견으로 사업 진행이 멈추는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라"
회사 내에서는 각자의 자리에 맞는 역할과 책임이 있다. 그것이 보직/직책이다. 승진이나 순환보직으로 인해 인사이동을 하게 되는 경우 종종 각자의 자리에 대한 역할을 찾지 못해 혼란이 발생한다. 특히 담당자에서 팀장이나 부장 같은 실무책임자가 되었을 경우 그렇다. 직책이 바뀌었음에도 담당자로서의 역할에 벗어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실무자로서 굉장히 우수했던 직원이 팀장이 되고 나서 직원들로부터 최악의 평가를 받는 일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된다. 자신의 자리에 어떤 역할과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담당자가 운전자고, 팀장은 운전보조자다.
운전을 예를 들면 담당자가 운전자고 팀장은 보조석에 앉아 있다고 보면 된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운전자가 졸고 있지는 않은지, 실수로 길을 잘못들 어선 것은 아닌지, 가야 할 곳에 서 있거나, 서야 할 곳에서 멈추지 않고 있는지 따위를 이야기해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중간중간 갈림길 등에서 담당자는 어느 길이 최적길인지 사전조사 등을 통해 판단해야 하고 팀장은 그 판단이 맞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팀장은 담당자를 보조석에 앉히고 자신이 운전대에 앉아 목적지를 가려고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운전자가 피곤하거나 위험할 경우 운전자를 교체할 수 있다. 그러나 팀장은 그 한 사람만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다 최소 3~6명의 팀원의 목적지를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운전대를 잡으면 다른 팀원들의 목적지는 함께 갈 수 없게 된다. 가급적 담당자가 보다 효과적으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우선으로 하고 상황에 따라 잠시 운전대를 잡았다가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담당자는 팀장이나, 관리자가 운전대에 앉을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히 조사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우선 필요하다. 그런 일들이 한두 번 반복되다 보면 신뢰가 형성되고 관리자는 모범운전자인 해당 담당자의 차량에 탑승을 해서 사사건건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안하게 잠을 청하게 될 것이다. 관리자 역시 자다가 일어나서 엉뚱한 방향으로 우회로를 지시하거나 하는 일방적 권한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운전자든 보조자든 탑승자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다. 신뢰는 존중과 소통, 강력한 연대감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각자의 권한을 존중해 주는 것. 가장 기본이면서 가장 중요한 회사생활의 원칙이다. 팀장아, 그 운전대를 잡지 마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