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락탕탕 서울 탈출기
공원에 핀 꽃은 누군가 정성으로 심은 밥이다.
새로 조성된 신도시의 좋은 점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공원을 들 수 있다. 커다란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잘 조성된 산책길은 몸과 마음에 평안을 주기에 부족함 없다. 운이 좋게도 나는 매일 공원으로 출퇴근을 한다. 집과 회사가 공원의 입출구처럼 공원의 둘레에 딱 붙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을 벗어나 지방의 신도시로 이주를 결심한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도 숲과 나무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매일 아침 인파에 떠밀려 걸음을 옮겨야 했던 서울 순환 지하철에서 벗어나 꽃과 새들이 배웅하는 공원길을 톡톡 걸으며 출근하는 일은 내가 나에게 선물한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정확히 12년 만에 서울에서 탈출했다. 20대처럼 언제나 화려하고 매 순간 희구하는 서울이 좋았으나, 30대가 된 나는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더 이상 서울의 속도를 따라가기에 버겁다는 것을 느꼈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긴장과 초조가 나를 조금씩 병들게 했다. 나는 서른둘, 돌이켜보면 가장 좋은? 나이에 서울을 탈출했다. 더이상 누구하고도 싸우고 경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충남도청이 대전에서 충남홍성으로 이전하면서 조성된 신도시에 작지만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관이 생겼고 나는 그곳으로 이직했다.
"고개만 조금 돌리면 산과 들이 가득했다.''
홍성으로 내려와 가장 첫 번째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역시 집이었다. 곧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조금 넓은 공간을 바랐다. 시골에서 집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집보다 살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의 소개로 회사와 가까운 곳에 서울 오피스텔 임대료의 절반의 금액으로 두배는 넓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나는 갑자기 뉴스에서 매일 같이 떠드는 중산층이 된 기분이었다. 30평대 아파트에 살게 되다니 꿈같은 일이었다. 물론 내 집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나는 소유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내가 가진 만큼만 딱 그만큼만 누리며 살면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 어쨌든 서울에서는 꿈도 못 꿀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변 공원을 만나는 일이었다. 도청이전 신도시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도시는 아니었다. 고개만 조금 돌리면 산과 들이 가득했다.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커다란 호수공원이 나왔다. 또한 높지 않은 돌산이 공원을 감싸고 있었다. 산의 모양이 용과 봉황의 모양을 닮았다 하여 용봉산이다. 용봉산은 매일 호수에 얼굴을 비추고 세수를 하는 것처럼 명징하게 서 있었다. 나는 이곳을 언제든지 산책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들과 이름 모를 들꽃들과 인사하는 출근길"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바람과 하늘을 매일 아침 식탁에 올려놓고 시작하는 하루는 서울의 하루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을 했지만 같은 생활은 아니었다. 9시 정시에 도착하려면 집에서 10분 전에 만 출발하면 됐다. 이불속에서 한껏 게으름을 피워도 되고 아주 천천히 고소한 토스트와 커피를 음미해도 시간이 남았다. 그래도 여유가 있는 날은 공원과 신도시 외곽을 도는 코스로 조성돼 있는 자전거 길을 한 바퀴 돌고 출근했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들과 이름 모를 들꽃들과 인사하는 출근길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니었다. 나는 매일 나만의 특별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기분이었다. 나 혼자만 누리는 특별한 호사같았다. 그렇게 나는 매일 아침 꽃밭에서 지하철을 탄다. 도착역은 언제나 작지만 커다란 충만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꽃밭에서 지하철을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