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 입문 가이드
예술은 예술가의 삶을 녹여낸 결과물이다. 흔히 얘기하는 창작의 고통과 고독의 지난한 과정의 산물인 것이다. 즉 창조적 행위라는 것은 수 없이 반복되는 실패와 환멸의 총합이다. 우리가 쉽게 예술의 수월성이라고 이야기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다.
그렇게 태어난 예술작품은 예술가만의 소유가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는 관객들과의 공유물이 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관객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초연하게 다시 자신만의 세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것은 보다 깊은 예술세계 속에서 작업에 몰두하려고 하는 예술가의 본능에 가깝다. 그러나 현실은 대다수 예술가들에게 그러한 사치를 허락하지 않는다. 즉 창작이라는 예술가의 본연의 일 이외에 많은 시간을 예술외적인 업무에 허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손실을 줄이고 예술이 관객과 보다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예술행정(Art administration)이다. 예술행정의 개념은 학자나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지만, 예술이 갖고 있는 사회적 효용성과 공공재로서의 가치에 따라 공공이 예술부문에 개입하는 일련의 행위 및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다.
예술가는 창작에 전념하여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예술행정가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술행정가는 예술가의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예술가들의 작품을 발굴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기획하고 홍보하여 관객들에게 제공해야한다.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서 양쪽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시장의 변화에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예술행정의 기능과 역할은 생각보다 넓고 전문적이다. 예술행정가는 예술가처럼 예민해야하며 행정가처럼 냉철해야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행정가들은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점점 행정이라는 관성적 성질에 매몰되고 모든 것을 법 규범이라는 사각 틀에 가두어 판단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예술행정가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과다한 업무 환경 탓도 있다. 즉 ‘언제까지, 얼마나 해야 하는가’ 의 문제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창의적 고민을 상쇄시킨다는 의미다.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예술행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관료주의적 예술행정 구조가 소비자와 고객중심의 참여적 예술행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구조적 문제의 개선과 더불어 예술행정가들 스스로 변화하고 혁신해야만 한다. 예술인과의 협업이나 다양한 시민들과의 협치를 고려하지 않고 행정의 칸막이 안에서 일방적으로 업무를 시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갑의 입장에서 예술가를 사업의 대상이나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틀에 가두어 길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헌법 제22조에 명시된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란 조문은 예술가의 권리와 예술적 가치 보호를 의미한다. 예술행정은 이러한 핵심 가치 아래에서 존치되어야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며 철저한 분업화를 통한 효율성 전문성의 시대다.
예술행정도 예술과 행정의 기능 분화가 전제될 때 비로소 예술 본연의 가치를 보호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행정이 정치와 분리되고 관료화를 벗어나 전문적이고 능동적으로 구동되어야 예술가와 시민이 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