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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Jan 01. 2019

오키나와, 잘 잤습니다

호스텔 투어 (아이엔 커피 호스텔 - 더 키친 호스텔 AO)





8월의 오키나와, 더워도 너무 더웠던 여름. 도망치듯 찾았던 만큼 쉬는 공간도 특별했으면 했다. 북-중-남부로 길쭉하게 늘어진 동선을 가지게 되는 오키나와 여행의 특성상, 도심의 숙소 하나로 거점을 꾸리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겸사겸사 오랜만에 재밌는 도전을 결정했다. 왕년에 호스텔 좀 다녀본 제가 호스텔 투어를 시작합니다? 백패커(backpackers)의 낭만이 모락모락. 그만큼의 체력과 열정이 필요한 여행이었으니, 이만한 선택도 또 없다. 오키나와에서 한 잠 잘 자고 나온 유쾌한 숙소들을 소개한다.





아이엔 커피 호스텔 (Aien Coffee Hostel)


느낌있는 뒷방살이


오키나와 중부 아메리칸 빌리지에 위치한 커피점 겸 호스텔. 커피에 자부심 있는 사장님이 뒷켠에 또 하나의 작업을 시작한듯. 최근, 카페테리아나 펍과 숙소를 결합한 가성비 좋은 숙소들이 많아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곳 뒷숙소(?) 답지 않게 비주얼이 만족스럽다. 잿빛 시멘트와 목재, 안목 곁들인 홈퍼니싱 아이템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웰컴드링크로 로컬 소주를 즐기게 해준 건 센스있는 첫 인상을 배가시켰다.


매거진과 포스트카드를 구경할 수 있는 공간과 놋쇠거울


오키나와식 소주 아와모리. 웰컴 드링크치고 황송하군요



무드 잡기 좋은 아침식사


여독을 풀고 일어난 아침은 벌써 일정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금발의 꼬맹이들이 열심히 토스트를 먹고 있었다. 나도 메모장을 펴고 오늘의 동선을 정리했다. 평소에는 커피점이기 때문에, 더 무드잡기 좋은 모닝 코히 타임이다. 실제로 "잘 잤어요?"라며 아침 주문을 받아주는 점원들, 스윗하다. 


다들 바쁜 아침. 그럼에도 셀프 카메라를 놓칠 순 없어.


비치된 굿즈와 책장을 넘겨보다가 허기에 정신 못차리는 나를 발견했다. 기본 모오닝 플레이트에 콜드브루를 한 잔 주문했다. 버터+베이컨+계란+커피 = 말해 무엇하겠는지. 단숨에 각성된 정신으로 기분좋은 아침이 된다. 여느 브런치카페에 뒤지지 않는 맛과 분위기라 숙소로서의 아늑함이 배가된다.


절대 2인분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혼자 다 먹었기 때문이다.


창가에 놓여있는 자전거가 빼꼼. 저 짐들도 싣고 달려주면 좋겠는데.






더 키친 호스텔 AO (The Kitchen Hostel AO)


숙소 효율의 끝판왕


많은 숙소를 다녀보았지만 처음 보는 형태의 호스텔이었다. 형태 자체는 1층 식당과 2층 숙소로 구성되어 전자와 비슷한 유형이었다. 구체적으로 늘어놓으면 다음과 같다. 동선에 따라 1-2-3-4를 따르게 되고, 그 단계의 흐름에 막힘이 없어 쾌적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것은 고도의 설계가 개입된 시스템이다.


1. 어메니티 배부센터

체크인시 옆에 어메니티를 직접 수령하는 무인센터가 있다. 치약, 칫솔, 마스크, 면도기, 팩, 면봉 등 온갖 아이템이 바구니에 비치되어 있고, 양심에 맡긴채로 투숙인원에 근거한 적당량 수령을 안내한다. 간단한방식인데 어찌나 편한지. 빠르게 필요한 만큼 챙길 수 있어서 굉장히 편리했다.


2. 개인물품 락커룸

체크인 후 본격 침대에 입성하기 전에 개인물품을 보관하는 2m 길이의 개인 락커룸실이 있다. 이곳은 무거운 의류나, 신발, 쇼핑물품, 캐리어를 모두 보관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간소한 필수짐만을 챔겨서 몸이 가벼워진 채로 숙소에 입성한다. 


3. 공용 화장실 & 세안대 & 샤워실

화장과 간단한 세척을 해결하는 세안대가 공중 목욕탕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뒤로 그 개수 만큼의 화장실이 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또 그 만큼' 샤워실이 있다. 인원이 일렬로 차례 입장하면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용무(?)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4. 벙커 침대

1층 식당의 사이즈를 생각해서, 2층의 수용가능인원이 그리 많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이게 웬걸. 촘촘히 늘어선 벙커침대는 약 200명이 머물수 있는 사이즈 였다. 침대 안에는 콘센트, 찬장, 옷걸이, 색깔 침구 가 완비인 상태이다. 


평범한 호스텔인줄 알았는데, 굉장한 설계의 산물
입장시 등장하는 개인락커룸. 넉넉해서 대부분의 짐을 보관할 수 있다.


구석 하나 버리지 않는 휴식의 소굴


넉넉한 호스텔 인심으로, 조식을 즐길 수 있었다. 간소한 풀류, 스프, 유제품, 빵, 오믈렛, 음료 등을 먹을 수 있다. 대단한 메뉴는 아니지만, 백패커(backpacker)는 이정도로도 마음이 따뜻하지. 그리고 과음한 다음날 아침은 이런 담백함으로 정화해 주는 센스랄까.


굉장히 고도화된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 답게, 공간 구석구석을 버리지 않고 활용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1층의 카페테리아는 물론이고,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모든 벙커 침대 옆에 램프와 독서테이블을 비치했다. 그래서 머무르는 일정 내 아늑하게 글을 쓰고,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일정을 마감하며 편의점을 털고, 하이볼과 젤리를 오물거리며 일기를 썼다. 


약간 메마른 조식이지만, 그게 호스텔의 담백함이랄까
저 짐빔 하이볼은 왜 국내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것인가. 적극 입고 추진 부탁해요.






여행자의 기운을 만드는 원천은 "좋은 숙소"이다. 푹신한 침대, 향긋한 어메니티, 고급진 로비, 멋진 뷰, 좋은 접근성 등 다양한 요소가 그 만족도를 결정하지만, 오키나와의 숙소에서는 오랜만에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백패커가 된 듯하여 생동감을 부여받았다. 빠르게 짐을 싸고, 풀고, 담백한 조식에도 허허 웃으며 여독을 풀던 곳. 럭셔리하진 않아도, 8월의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자-알 자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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