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테바코 열차 - 멘야지로 라멘 - 흑모래찜질
가고시마에서 근교 도시인 이부스키로 향하는 일정을 충동적으로 결정했다. 대도시 여행의 능선을 넘어 소도시 여행을 시작하게 되면서, 도시간 거미줄을 지혜롭게 이용해서 최대한 많은 곳을 다녀보고 싶었다.
이부스키행 열차 티켓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일반 열차들 가운데 존재감을 과시하는 "테마테바코"(이부타마) 열차를 이용하고 싶다면 조금 더 서둘러야 한다. 타마테바코는 일본의 동화에서 등장하는 "용왕의 선녀에게서 얻었다는 상자"를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열차 외관을 검정색과 흰색으로 반반씩 칠해놓은 모습이 묘했다.
플랫폼에 들어서니, 기차타기 좋은 날씨와 기분좋은 증기를 뿜는 열차가 나를 기다리네. 마음이 찌릿.
흰 연기를 피우는 연출도 여행객을 위한 의도된 장치라고 하는데, 이 디테일 무엇인고.
창가를 마주보고 앉는 좌석에 걸터 앉았고, 열차 여행의 필수품인 도시락을 세팅했다. 열차를 달리는 소리가 쿵쾅대며 파란하늘이 스치는 속도가 빨라진다. 지난날의 과식으로 부어오른 얼굴에, 미처 잠기운이 가시지않은 몸을 깨우기 위해 애썼다. 미지근한 계란을 베어먹고, 더운 날에 대비해 꽝꽝 얼려둔 주스를 한모금 넘긴다. 여름날의 치열한 여정이 또 이렇게 시작된다.
열차를 타고 50분 정도를 달리면 이부스키에 도착한다. 가고시마보다'도' 더 작은 도시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막상 도착하니 생각보다 더 앙증맞은 곳이었다. 열차에서 내린 여행객들의 움직임이 잦아들고 나면, 매미가 찌르르-하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다인 곳. 주민들이 열을 식히는 대합실을 지나, 이부스의 면면을 둘러보고자 아스팔트를 휘적거리며 나아갔다.
여행객들이 이부스키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흑(검은)모래찜질'이다. 온천과 찜질 시설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이부스키역 인근에서 버스를 타면 되는데, 이날은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버스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한번 걸어 나가 보기로 했다. 마을을 관통하여 향하는 길에는 온 몸에 땀이 범벅이었다. 그 와중에 차 밑에서 햇빛을 피해 눈을 붙인 길냥이들이 꽤 많았다. 매일같이 이렇게 주무시고 계신건지 여쭙고 싶었지만 너무 평화롭게 주무시고 계신지라 사진만 한 장 남겼다.
고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들어선 곳은, 삼거리에 위치한 한 라멘집. 식당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눈에 띄는 편이었는데, 알고보니 라멘 대회에서 챔피언을 수상한 장인이 계신 곳. 이런 곳일수록 '기본'을 시킨다. 기본 라멘하나와 차가운 사이다 하나를 마시기로.
신기하게도 이부스키에서는 로컬 브랜드로서 사이다를 판매하는데 그 패키징이 취향을 저격한다. 산과 해를 사이에 둔, 손을 맞잡은 커플이 중심에 서있는데, Festive 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손에 들면 기분도 좋아졌다. 혹자는 흑모래찜질을 마치고, 훈제계란과 함께 먹으면 이 세상 맛이 아니라는 팁을 전수해준 바가 있었다. 쪼로록 얼음컵에 따르고, 원샷했다. 공병은 아직도 내 방 찬장에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다는 후문.
모래찜질을 즐길 수 있는 센터에 도착했다. 역시 이 곳 인근에 오니, 인기척이 꽤 들리기 시작했다. 보통은 가고시마역에서 이부스키역으로 오자마자 이곳으로 직행하니, 본론에 좀 늦게 다다른 편이었다.
빠르게 안내 받고, 삽으로 흑모래를 얹어주는 밭에서 땀을 뺐다. 처음에는 따뜻한 기운만 들기 시작하다가, 무게가 온몸을 누르니 조금은 아찔한 기분이 엄습하기도 했다. 간단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달아오른 몸에 물을 끼얹고, 땀을 빼고, 다시 냉방을 하니 뽀송뽀송해진 상태. 흑모래찜질도 즐겼으니, 이제 다시 역으로 돌아가 타마테바코 열차에 몸을 싣을 시간이다.
8월의 일본임을 감안하면, 너무 뜨거운 나머지 여유있게 둘러보지 것이 아쉽지만, 대도시의 그저 그렇게 유사한 볼거리에 지친 여행자라면 이 신비로운 매력에 흠씬 빠져들게 되리라 믿는다. 나에게 이부스키는, 뜨겁게 덥혀진 지열탓에 온 시야가 일렁거렸지만 한 여름날에 샛길로 빠지길 참 잘했다, 싶었던 꿈결 같은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