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빌라 수오미(Kahvila Suomi)
첫 북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첫번째로 꼽았던 도시는 헬싱키였다. 비용이나 날씨 등의 문제로 인해 일정을 양보하고, 펼쳐둔 페이지를 접으면서도 남겨둔 이 곳. 나에게 헬싱키, 그리고 핀란드란 자일리톨과 초록초록한 느낌으로 점철된 외딴 곳이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기 전까지.
유달리 핀란드가 나의 로망이 된 것은 이 영화 덕이다. 수 년전에 일본영화로의 입문을 도와준 카모메 식당. 이는 외딴 나라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랍을 들추어 기록해두었던 짤막한 영화감상평을 꺼내어 읽는다. 아무래도 헬싱키에 가야겠지.
개별 쇼트가 소중해서 행여나 놓치면 다시 되돌리며 본 영화. 일단, 유럽과 일본의 만남이라는 컨셉이 영화전반에 끼치고 있는 느낌이 좋다. 핀란드라는 외딴 북유럽국가의 헬싱키라는 도시와 오니기리가 함께인 것이 좋다.
나에게 이것이 준 느낌은, 수상하게도 '동질감' 이었다. 그 느낌의 꼬리를 물어보니 카모메식당은 내가 네덜란드에서 등교길에 항상 지나쳤던 이라크 출신의 주인이 운영했던 케밥가게, 그리고 그 옆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또, 강변 근처에 신라면 사발을 팔던 오리엔탈 마켓도 연달아 이 중에 끼어들었다.
그 이질감과 익숙함이 교차하는 기억이 일본의 색감으로 나타나니 어느새 동화 속 추억이 된다.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 속을 꼼꼼히 채우고 밥덩이를 내어놓는 것이나 생선을 굽고, 고기를 튀기며, 커피를 내리는 주인 여자들의 손길, 뜨겁게 김이 오르는 커피잔과 갓 구운 시나몬롤, "나는 잘 먹는 뚱보가 좋다"는 말, 맛있게 먹는 사람들. 이를 아우르는 분모가 의외의 '헬싱키'라는 것이 특별한 포장지로 감싼 선물박스를 떠안는 느낌을 준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선물과 같은 영화.
애틋한 마음을 담아, 전력을 다해 헬싱키로 내달리게 된다. 북유럽의 일본 가정식을 먹으러 진짜 헬싱키에 왔다. 믿기지 않는 설렘. 조금씩 개어두었던 로망들을 실제로 꺼내어 챙겨입는 날이다.
카모메식당은 헬싱키 중앙역과 주요 관광스팟에서 꽤 떨어져 있어서 반드시 일정 내에 번듯한 시간을 마련해두어야 했다. 나와 같이 로망을 간직하고 이곳을 찾은 여행자가 꽤 있는지, 골목에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나를 알아보고서 방향을 찔러주는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는 '카빌라 수오미(Kahvila Suomi)'라는 이름으로 핀란드 가정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번역하자면 '핀란드 카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근 일본인이 인수한 이후로는 '카모메식당' 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외관은 평범한 인테리어 샵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망설일 필요도 없이 가게로 들어서니, 공간의 모든 것들이 궁금해져서 고개를 여기저기 돌리기 시작했다.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서본다.
마치 나를 맞아주는 듯한 카모메식당 영화 포스터와 시나몬 롤, 내려먹는 커피, 샐러드 바가 보인다. 여주인이 바삐 테이블을 정돈하고, 손님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갈 채비를 한다. 아늑한 노란 조명과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식기가 팅팅탱탱 부딪히는 소리와 감자 냄새, 일본어, 영어, 핀란드어가 뒤섞이는 곳. 이내 자리를 찾아 앉는다.
자리와 마주 본 거울에 비추어보니, 옆 테이블에서 세 쌍둥이와 식사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아기가 하도 울어댄 탓에 먹는둥 마는둥하고 있었다.그렇게 식당 안에는 일본인 커플과, 핀란드 가족, 그리고 내가 어우러 앉아서 가정식을 먹고 있었다.
구운 연어를 메인으로 하는 핀란드 가정식을 주로 고르게 된다. 이 곳에서는 으깬 감자를 밥처럼 먹는다. 그래서 감자튀김이 아니라 먹기 좋게 퍼진, 되직한 감자를 선택한다. 샐러드와 감자를 양껏 떠서 먹고, 연어를 자르며 식당에 앉아 메모를 정리하는 것만으로 연신 뭉클함을 느낀다.
커피를 홀짝이면서 곁들여 먹었던 빵과 샐러드는 따뜻했다. 여행책자를 살피고, 메모를 정리하고, 영화 속 공간과 대조하면서 나의 서랍 속 동화와 조우하는 순간.
식사를 하는 시간동안 유리창 바깥으로는 크리스마스 준비를 위해 한아름 보따리를 들고 가는 가족들과 우산 없이 이슬비를 맞으며 우중충한 거리를 휘적이는 연인들, 이제 막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엄마와 아기들이 있었다. 그렇게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뭉글뭉글 했던 곳. 감자를 계속 푹푹 퍼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