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을 시작하며.
제가 가진 가장 첫 기억은 네 명의 가족이 침대에 누워 티비로 비디오테이프 영화를 보고 있는 장면입니다. 영화를 보다 잠시 잠에 들었고, 일어나니 엄마와 아빠는 저와 누나를 남겨놓고 어딘가로 사라져 있었지요. 티비에서는 영화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누나와 함께 울며 불며 세 들어 살고 있는 2층에서 나와 외부 계단을 통해 내려와서 집 밖으로 향했습니다. 집 앞에는 대로를 건너면 슈퍼가 하나 있었는데, 그 슈퍼의 파라솔 아래 엄마와 아빠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부르며 다가가니 엄마 아빠가 우릴 훽- 돌아봤는데, 그때 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요? 그 밤의 습도를 포함한 기운은 기억이 나지만 엄마와 아빠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우느라 엄마 아빠 표정은 안 보였던 것이겠지요? 난 아직까지 그 기억으로 많은 상상을 부풀립니다.
엄마와 아빠는 제가 태어나기 전 비디오 가게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비디오 대여점이라는 게 막 생겨났을 때였고 아주 인기 있는 사업이었다고 하는데 왜 그만뒀을까? 그것은 바로 비디오방의 출현. 가정에 VHS 플레이어가 없는 경우가 있었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비디오방이 생겨나니 비디오 대여점은 사실상 손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였는지 저는 어려서부터 영화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자랐습니다. 비디오 대여점을 폐업하면서 남은 비디오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디즈니를 포함해 지브리 등 애니메이션 비디오가 많았고, 뿐만 아니라 실사 영화도 많았습니다. 어려서부터 피가 낭자하거나, 선정적인 영화를 본 기억도 잦긴 합니다만 그것이 제 어머니가 권장하신 것은 아니었겠지요.
영화뿐만 아니라 책, 음악, 미술 등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는 것에 저희 어머니는 관대하셨습니다. 책 사겠다고 엄마 지갑에 손을 댔을 때도, 책을 사니 별 말 안 하고 넘어가셨을 정도입니다. 예술의 전당에는 꼭 몇 번을 데려가셨고, 미술을 하고 싶어 하면 미술을 시켜주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제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려던 의도였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 보니 자연스레 비교를 하게 됐고, '왜'가 궁금해졌습니다. '이건 같은 장르의 영화인데 왜 끝이 다를까?', '기타는 프렛이 달렸는데 왜 바이올린은 없나?', '왜 미술관에는 샌들을 신어도 되고, 클래식 공연에서는 안 되나?' 나는 궁금한 건 꼭 확인을 해야 하는 성격이 됐습니다. 결국 경험이 매번 물음을 낳고, 물음은 경험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제안한 것 역시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꼭 '어땠니'하고 물으셨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물어봤던 건 별 것 아니었습니다. 어떤 인사치레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냥 뭘 시켜줬으니 응당 반응을 보고자 물어본 것인데, 나는 그것이 반복되니 경험을 곱씹어 스스로도 감상을 남기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뭐든 물어보고 싶어 하는 성격과 꼭 평가하려는 버릇은 다 우리 엄마 탓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저는 고등학생 무렵 앞서 말했던 그 기억을 나름 소중히 여겨 그 옛날 집이 어디인지 찾아보고 싶어 졌습니다. 엄마한테 물어볼 생각은 않고, 혼자 나름 걸어 걸어 거리를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 차를 타고 엄마, 누나, 나 함께 시내를 나가면서 내 고등학교 주변을 지나는데 누나가 대번에 의아한 목소리로 "여기 웬 주유소가 생겼네" 이러더랍니다. "주유소가 왜?"라고 물으니, "아니 우리 살던 집 앞에 주유소가 생겼잖아" 이러는 것 아닙니까? 기억 속의 그 집은 바로 내 고등학교에서 100미터도 체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던 것이죠. 그 길은 제가 하교할 때 매일 걷는 곳이었습니다.
이상하다. 분명 우리 집 앞에는 엄청난 대로가 있었는데, 집 앞에는 풀꽃밭이 넓게도 펼쳐져 있었는데. 주유소가 생기기 전에도, 엄마와 아빠가 갔던 슈퍼 자리에는 지금 아파트가 들어섰더라도, 그걸 못 알아볼 리가 있나. 나는 그 물음을 속으로 숨기고 혼자 그곳에 다시 가봤습니다. 밤이 되어도 그곳은 제가 알던 곳과 달랐습니다. 서늘하고 건조하지만 부드러운 입자감이 느껴졌던 공기도 없고, 그 넓게 느껴졌던 풀꽃밭은 관리도 안 된 채 자라 쓰레기가 여기저기 쑤셔져 있고, 슈퍼는 애당초 없고, 4차선 도로는 숭덩숭덩 걸으면 열 발자국도 안 될 너비였습니다. 막상 전혀 상상치도 못 한 날 것과 마주하니 그 기억이 더 소중해졌습니다. 난 더욱 지키고 싶어 졌습니다.
나에겐 이것이 가장 첫 기억이면서, 가장 처음으로 본 영화이고, 가장 처음으로 느낀 예술입니다. 아무도 나의 예술에 위해를 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기에 반대도 가능합니다. 온갖 만물은 내게 경험으로 다가오면 아주 개인적인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공유될 수 없는 개인적인 기억으로 남게 되어서 너무 소중해요. 이제는 그것에 대해서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