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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산대폭발 Aug 08. 2024

아사코 씨에게.

소설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및 영화 '아사코'에 대해

 아사코 씨, 안녕하세요. 다시 뵙는 건 아마도 2년 만인 것 같습니다. 익히 뵙던 곳에서가 아니라 줄글로 만나게 되었으니 아사코 씨의 속마음을 이제야 알게 된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다행이었다고 할까요. 덕분에 어떤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게 닿지 않는 편지를 쓴다는 건 거의 20년 만인 것 같습니다. 우습게도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이순신 장군 전기를 읽고 이순신에게 편지를 쓰는 숙제에서 서두를 '이순신 아저씨께'라고 했다가 어머니에게 된통 혼난 이후로는 이게 뭐라고 편지 쓰는 걸 두려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사코 씨에게는 이순신이 뭔 대수겠냐, 싶으시겠지만 제 이야기는 우선 제쳐두기로 할까요.


 솔직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다 읽고 난 후의 책날개 위로 쓰인 서평가 도요자카 유미의 추천사에 "아사코의 섬뜩할 정도로 이기적인 모습"이라고 쓰여있어서요. 아사코 씨는, 그래요, 도요자카 유미의 말처럼 '신용할 수 없는 화자'이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멋지다고 생각해요. 무엇에든 솔직하고, 자신을 드라마틱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하늘이 잿빛이고, 길을 걷는 이들에게서는 잡음이 들려오고, 새로이 정착한 도시의 추억을 쌓아온 유일한 친구들이 단숨에 나와 절연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비련의 삶의 주인공이라는 뜻은 아니니까요. 아사코 씨는 아사코 씨대로 열심히 살아갈 뿐일 테니까요. 가게의 쇼윈도에는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고, 무리라도 해서 구매하여 이것을 만들어준 사람에게 이 일을 꼭 지속해 달라는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싶더라도, 너무 갖고 싶어서 전단지를 보고 두 번을 찾아가고, 굳은 결심 뒤에 세 번째 찾았을 때 누군가 구매하여 빈자리만 남았더라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라는 모습은 내 가슴을 섬찟하게 만들 정도로 차갑게도 보였지만, 어쩌겠나요, 아사코 씨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을. 그 모습이야말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인 것을. 하지만 내가 아사코 씨 같은 사람이었다면, 아사코 씨를 보고 이렇게 멋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요? 청심환을 먹은 듯 무거워진 마음은 누구도 흔들지 못하고, 매달린 나의 횡격막 끝이 움직여야 흔들렸을 것입니다.


 아사코 씨. 결국에는 당신을 아무도 신용할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치하루의 말마따나 나이 서른이 넘어서 친구도, 일도, 집도 없는 사람이니까요. 사회는 나와 대화하여 나를 알아내기에는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있으니, 내 주변에 남은 것들로 나를 평가할 테니까요. 하지만 죄송스럽게도 당신은 그렇게 아무도 신용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아준다면 좋겠습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건 내 문제니까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라는 그 자세로 말입니다. 내 마음속으로 이 세계 어딘가에서 아사코 씨 대로 살아갈 아사코 씨를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남아주세요.


 아사코 씨, 바다 건너 본인보다 열아홉은 젊은, 모르는 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좀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물론 어이없다고 생각할 만큼 내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으시겠지만), 사랑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으나 무한한 동경이 내 맘에서는 솟아나고 있습니다. 어차피 신경 쓰지 않으시겠지만요. 아사코 씨를 만난다면 꼭 묻고 싶은 게 있긴 합니다만 아마 물어봐도 그럭저럭 답변하고 바깥 날씨나 살펴보고 계시겠지요. 나는 아사코 씨의 시선의 끝을 따라다니며 동경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겠습니다, 아사코 씨. 현상을 파악하는 눈을 멈추지 않고, 남들의 말을 들어주겠지만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오롯이 나의 책임만으로 그렇게 살겠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은 회백색 하늘이었습니다. 동쪽에서 계속 보이던 별은 오늘따라 더 붉게 보였습니다. 노란 은행잎이 도보를 덮어 발자국도 남지 않을 것처럼 쌓인 길을 걸었습니다. 어떤가요, 조금은 아사코 씨 같았나요. 나는 내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부디 좋은 꿈을 꾸시고, 달지 않은 빵을 먹을 때는 아사코 씨를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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