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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Feb 25. 2022

두려움의 호흡 앞에서

2022년 2월 24일


 지하철을 탈 때마다 뉴욕 타임즈를 읽는다. 미숙한 영어 감각이라도 잃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출발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의 메이저 언론의 기사를 틈틈이 읽어가며 산다는 건 내가 예상한 것보다도 더 많은 걸 보게 해주었다. 내가 알았던 것, 몰랐던 것,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것, 모르지만 아는 체 해온 것, 알긴 하지만 잊고 있던 것까지 전부 다.


 최근 뉴욕 타임즈의 Breaking News란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급박한 상황에 관해 조명하느라 바쁘다. 매일 매일 공포의 크기가 부풀어간다. 일정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면서 오늘도 뉴욕 타임즈를 켰다. 별 생각 없이.


 Breaking News란이 그렇게 빠르게 업데이트 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어떨 때는 10분에 하나, 어떨 때는 2분에 하나, 어떨 때는 1시간에 하나. 새 기사를 클릭해서 읽던 와중에 1분도 채 되지 않아 업데이트가 되기도 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이런 얘기를 했고, 이 지역 주민들은 이곳으로 가고 있고, 어느 나라 총리가 어느 나라 장관을 만나고. 기사를 읽다가 문득 지하철 안을 둘러본다. 피투성이가 된 시민도, 폭격을 당한 가족을 둔 사람도, 탈출 행렬에 뛰어든 어린아이도 없다. 그저 각자의 길을 갈 뿐.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평생 알지 못하리.


 그리고 이어폰을 꽂은 귓가에는 상황을 읊는 키예프의 뉴욕 타임즈 특파원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창밖을 봅니다.
이 아름다운 도시를요.
방금 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네요.
안개가 껴있습니다.


 이어지는 인터뷰. 불안한 음성으로 공포스러운 밤을 보냈다고 대답하는 탈출 행렬의 한 남성. 나이를 묻는 특파원의 말에 돌아온 건 ‘18’이라는 한없이 작은 숫자.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역에서 내려 걷는 동안 내내 울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미움도, 증오도, 눈물도, 죽음도, 전쟁도 없는 곳으로.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힘이, 권력이, 이데올로기가, 국가가, 승리가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난 무슨 권리로 이렇게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냐고 묻고 싶었다. 비도 오지 않고, 안개도 끼지 않은 이 순간을, 내가 살아가도 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존재와 영혼 뿐인 세상에 안기고 싶었다. 그럴 수 없는 세상에서도 아직도 그것만을 꿈꾸면서, 바보 같이 되묻고 또 되묻는 나날들.


 밤이 두렵다. 그들의 두려움에 비하면 나의 두려움은 하등 덧없을 정도로 흔들리는, 작디 작은 것이라는 사실. 그 사실이 두렵다. 그들 만큼 두려워하지 못하는 내가 싫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작전 개시일. 짧은 글 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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