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0일
요상한 아침이다. 이제까지보다 도리어 덜 암담하고, 크게 슬프지도 않다. 그냥 말 그대로 일상이다. 내일 당장 무너질 것 같던 세상은 그냥 그 자리에 있다.
엄마는 밤새 악몽을 꿨는데, 젊은 여성의 팔이 잘리는 꿈이었다고 한다. 새벽 5시까지 개표를 지켜보다 기절하듯 잠이 든 내 방문을 열고 “어떻게 됐어?” 하는 엄마에게 비몽사몽한 말투로 대답했다. “어떻게 됐겠어…”
근데 그냥 그게 끝이다. 뭐,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지만, 대선은 끝났다. 새 대통령이 명왕성에서 온 외계인이든, 카프카의 <변신> 에 나오는 바퀴벌레 형상의 그레고리 잠자든, 우리 옆집 아저씨든, 파워레인저 매직포스든 간에 결과는 나왔고 돌이키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누구든 나의 세계는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난 오히려 이번 대선을 통해 새싹같은 희망들을 보았다. 이를 악문 20대 여성들의 표가 폭죽처럼 한국을 장식하는 것을 보았고, 쇄신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당에 들어가서도 변화를 외치던 나의 몇몇 친구들을 보았고, 산불로 고통 받으면서도 투표장으로 향한 울진 시민들의 높은 투표율도 보았다. ‘누굴 찍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지러운 사회에서도 사람들의 미래가 또 하루씩 연장되어 간다는 게 중요하다.
그 하루가 다른 이들에 의해 파괴되지 않도록 열심히 지킬 생각이다. 만약 파괴 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이 있다면, 손을 내미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어리고 아는 것도 없는 애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영혼을 지켜내는 존재일 거라고 증명할 테니 기대하시길. 미움, 혐오, 편가르기와 파멸? 저는 그런 게 먹히는 시대에 이미 질렸거든요. 제 무기는 연대와 평화와 인애입니다!
한숨과 함께 아침을 시작하셨을, 나라가 왠지 망할 것도 같아 보인다고 여기시는 어른 분들! 걱정마세요. 여기 제가 있잖아요. 저처럼 괜찮은 어린애가 있는 한 이 나라는 안 망해요. 라나 뭐라나.
어쨌든 우습게도 난 여전히 결국은 사랑이 승리할 거라고 믿는다. 꾸역꾸역, 아주 보란듯이 선과 정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지.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김수영, 꽃잎 2)
그러니 미래에서 뵙겠습니다.
그 미래가 폐허일지라도, 우리는 주머니에 꽃씨를 품은 자들이니까요.
2022년 3월 9일-10일, 짧은 글 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