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조리 달아나는 터키 아이스크림 같은, 직장 내 가스라이팅에 관하여
혹시 당신의 열정이나 업무 태도에는 변화가 없고 성과도 객관적으로 크게 떨어지지 않았는 데
당신 곁의 상사 혹은 동료 중 누군가과 이야기하기만 하면 100% 의 확률로
1) 일을 하면서 드는 성취감이 약해지고
2) 의욕이 감소하며
3) 내가 잘못(혹은 나만 부족) 한 것 같고
4) 그래서 나의 확신과 추진력이 흐물흐물해지게 되어버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5) 심지어 계속 뒷맛이 찝찝한데도 내가 예민한 것뿐,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애매해서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위의 5가지 물음에 모두 YES라고 답한 당신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신은 가스라이팅 당하는 중이다.
가스라이팅은 교묘하게 심지어 가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일터에서 많은 성실한 일개미들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직장 내의 가스라이팅은 마치 가위바위보 같은 게임과도 같은데, 당신이 상사 혹은 동료와 가위바위보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상대방은 계속해서 가위바위보! 에 내지 않고 당신이 손을 내밀면 패를 보고, 자신의 패를 변경해서 낸다. 그렇게 상대방은 계속 이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포커든, 가위바위보든, 어떤 종류의 게임이든 상대방의 패를 보고 대응한다면 100%로 이길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게임의 룰에 어긋나기 때문에 우리는 룰을 어기면서 게임을 하는 사람을 승자로 부르지도, 실력을 인정해주지도 않는 것이다.
다시 게임으로 돌아가서 당신의 상대방에 대해서 판정을 내려보자.
Q. 치사한가?
그렇다. 저러는 건 매우 치사한 방법이다.
Q. 멋있는가?
내 눈에는 전혀 멋있지 않다.
Q. 그럼에도 저렇게 해서 이기고 싶은가?
그것은 당신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시라. 적어도 나는 저러고 싶지 않다.
Q. 상대방은 어떻게 제 때 낸 당신을 이겼을까?
더 대단하고, 잘나고, 똑똑해서? 아니다.
단순히 당신보다 늦게 냈기 때문이다. 룰을 어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게임에서 개선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게임의 룰에 맞게 보! 에 맞춰서 낸 당신이 아니라
이기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룰을 어기면서 당신을 기분 나쁘게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직장 내의 가스라이팅은 말하자면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는 괴물을 상대하는 것과 같다.
시시각각 머물러 있지 않고 당신을 보기만 하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해리포터의 기숙사 계단 같은,
혹은 손에 닿을 듯 닿지 않은 터키 아이스크림 같은 것.
당신이 오른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 아이스크림은 왼쪽으로 옮겨갈 것이고,
왼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 당신의 머리 위에 있을 것이다.
(해리포터는 재밌고, 터키 아이스크림은 맛있기라도 하지 가스라이팅에는 대체 무엇이 남는가...)
지금 가스라이팅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면, 상대방을 멀리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쉬울 리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상대방을 위해 너무 애쓰지 말 것.
날씨처럼 변덕을 부려대는 상대방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당신이라는 모양을 아예 잃어버리는 방법밖에 없다.
게다가 전부 잃어버린다고 해도 맞출 수 있지도 않다.
(상대방은 죽어도 보! 타이밍에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직장 내 가스라이팅을 생각할 때마다 부적처럼 꺼내 들곤 하는 캡틴 마블의 장면이 있다.
캡틴 마블에서 욘 로그(주드로)는 캐럴(브리 라슨)을 항상 통제해 왔다. 캐럴이 온갖 통제를 깨부수며 자기의 힘을 자각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욘 로그는 캐럴에게 캐럴의 힘을 인정하기 위한 조건을 건다.
('지가 뭔데.. 빌어도 모자랄 판에 조건을 걸어?' 싶지만 이것이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긴 하다.)
"감정을 다스리고, 너의 힘을 통제해서 자기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라"라고.
그러면 너의 힘을 인정해주겠다며 딜을 걸어오는 욘 로그에게
통제를 벗어나 자신의 힘을 깨달은 캡틴 마블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어
I have nothing to prove to you
당신의 잠재력을 짓밟아 자신의 자존감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기억하자.
당신은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욘 로그 따위가 어떤 걸 딜이랍시고 씨부리든 말든,
캡틴 마블은 할 일을 후딱 끝내고, 즐겁게 방긋 웃으며 맥주나 마시러 가면 될 일이다.
연말을 맞이 하여 훈훈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일단 근래 훈훈한 일이 전혀 없었고.... (그렇다... 나는 바빴다..... 남들은 홀리데이 휴가라는 것도 쓴다는 데 들어보기만 했지 내 눈으로는 본 적이 없으니 유니콘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갑자기 가스라이팅을 토픽으로 풀어놓게 된 이유는..... 다가오는 새해를 위해 무엇보다도 힘을 내보고 희망에 들 떠야 할 이때! 가스 라이팅은 어디선가 슬금슬금 나타나 성실하고 선량한 개미들의 빵빵한 에너지 풍선에 미묘한 구멍을 내며 걸리적거리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힘이 안 나지 싶어 곰곰 돌이켜보다가 요새 약간의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걸 깨닫고 분노의 타이핑으로 빠르게 쓴 글)
에너지 빵구쟁이들은 다 밀어버리고 한 해 누구보다 성실히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 축하와 칭찬을 보내며!
마음껏 꿈꾸는 미래를 그려보자.
2021년에, 열심히 일한 모든 일개미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2022년에도 열심히 임할 모든 일개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