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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라이터 Jun 02. 2022

문틈 사이로 보이는 잔디밭이 나를 다시 불렀다

슬로우, 여행리포트


서울의 한강처럼 부산에는 삼락공원이 있다. 잔디밭에 누워 낙동강을 바라다보며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서울 사람들은 한강에서 컵라면을 먹는다던데. 부산사람들은 삼락공원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글을 쓰기 위해 지난 여행의 기억들을 되새기고 있을 즈음, 푹신한 잔디밭을 걷다 저 멀리서 한 300m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리쯤에서 우연한 기타 소리에 끌려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슬로우, 여행리포트 첫 번째ㅣ회상

여행은 회상할 때야 비로소 참의미가 된다. 사실 여행을 다니고 있을 쯤엔 그 자체로의 행복감을 느끼려 하기보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모습들을 감상하느라 정작 느껴야 할 행복감은 제대로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나도 사실 그렇다. 여행을 다닐 때는 이상하리만치 집에 가고 싶어 진다. 소풍 가기 전날에는 밤잠 설쳐가며 설레었지만, 막상 부대끼며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있을 땐,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일몰 광경이 그저 티브이 속에 나오는 어느 예능프로그램 속의 일몰 영상 같다. 성격이 급한 탓일까. 빨리 무언가를 하고 싶다가도 그것을 달성하고 나면 빨리 그곳을 탈출하고 싶다. 그리고 집에 와 다시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바로 몇 시간 전의 그 아름답던 일몰의 모습이 그리워, 다시 나가고 싶어 진다.


슬로우, 어행리포트 두 번째ㅣ경험

예전 도쿄에 어느 섬에 혼자 놀러 갔었을 때(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굉장히 유명한 곳이었다) 혼자 여행하며 방황해가며 거 리르 걷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곳을 향해 갔던 기억이 있다. 도착하니 일본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처럼 맥주축제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오후 5시에 맥주를 즐겁게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또 이런 경험은 어디서 할까”라며 나도 같이 그들과 끼어서 어깨동무해가면서 홀짝홀짝 맥주를 같이 마셨다. 지나고 나니 그때의 그 경험들은 그 어떤 누구의 시간과 기억과도 맞바꿀 수 없을 만큼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자, 경험이 되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니, 그때 꽤나 즐거웠나 보다.


슬로우, 여행리포트 세 번째ㅣ사람

여행지에서도 사람은 걸어야 하며, 보아야 하며, 먹어야 한다. 헐레벌떡 기차를 놓칠까 봐 뛰어다니며 제시간에 맞춰서 좌석에 앉아야 하며, 미리 예약해둔 초라하거나 혹은 근사한 호텔 같은 숙소에 체크인해야 한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늘 마주쳐야 하며 미소를 지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곳, 그곳도 나에겐 짧은 기간 동안의 여행지이겠지만, 그들에게는 그곳은 그들의 반복되는 일상일 것이다. 사람을 보며 배우고, 말투와 언어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추측한다. 사람이 없는 곳은 없으며, 도쿄의 그곳과 오사카의 화려한 밤거리 속에는 사람이 있다.


-개인적으로 여행지에서 평소의 일상처럼, 그곳의 현지인처럼 생활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여행을 온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 그곳은 나에게 더 특별해지고, 선택지들 중에 가장 선택하고 싶은 기억들이 될 것이다. 여행을 한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지루함이 있기에 그 여행은 더욱더 특별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하다 잠시 쉬어가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그렇게 여행은 오아시스처럼 나에게 생각의 기회와 기록의 여유를 가져다준다.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이러니하게 여행지에서 일상의 루틴을 반복할 때 그 여행은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슬로우, 슬로우. 그렇게 여행은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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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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