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 중독
돌이켜보면, 나도 알고 있었다.
그 관계가 해롭다는 걸.
나를 조금씩 망치고 있다는 걸.
그런데도 나는 끊지 못했다.
나는 무책임하게 나 자신을 방치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이 정도는 내가 참으면 되지.”
“나만 잘하면 괜찮아질 거야.”
라고 스스로를 눌렀다.
가슴 안에서 울리던 내적 비명은
괜히 유난 떠는 감정처럼 취급했고,
아무 일도 아닌 척 외면했다.
그때의 나는 늘 상대를 먼저 봤다.
말투, 표정, 답장의 속도.
하루의 기분은 그 사람의 반응에 따라 달라졌다.
나는 점점 나를 느끼지 못했고,
어느새 상대의 기분이 나의 자존감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관계가 나만 아프게 한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점점 예민해졌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여유를 잃고 있었다.
나 하나 참고 버티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관계는 조용히,
나를 걱정하던 주변 사람들까지
조금씩 망가뜨리고 있었다.
⸻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나는 불편함을 말하지 못했다.
사과가 습관이 됐고,
잘못한 일이 없어도 먼저 사과해야 했다.
버려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계가 깨질까 봐 늘 긴장했고,
그 불안은 우리 사이에서
상대의 무기가 되어 돌아왔다.
나 없이도 상대는 잘 지낼 거라는 생각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는 내가 불안해할수록
자신의 자존감이 단단해지는 듯 보였다.
내 고통을 먹고 자라는
그의 자존감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만약 당신에게도
이 중 몇 개가 겹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중독의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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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끊지 못했을까
외로워서라기보다는,
나를 잃는 방식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분위기를 맞추는 역할을 했고,
희생해야 했고,
양보해야 했고,
어른의 기분을 먼저 살필 때
철들었다며 사랑받았다.
갈등보다 침묵이 안전하다고 배웠다.
그래서 관계에서도
경계보다 순응이 먼저 나왔다.
사랑받기 위해
존재가 아니라
내 역할을 타인의 손에
내놓는 법을 배운 셈이다.
⸻
그 결과로 나는
자존감은 점점 얇아지고,
감정은 둔해지거나 한꺼번에 폭발하고,
관계는 회복이 아니라 소모가 됐다.
무엇보다 가장 아픈 건 이것이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느껴도
그 감각을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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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
회복은 극적인 결단이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탈출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갑자기 용감해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주 작은 선택을 바꿨다.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내 감정을 먼저 인정하는 것.
불편함을 설명하지 못해도
그 감정이
내 안에 존재할 수 있다고
허락하는 것.
관계를 끊은 게 아니라,
자존감의 위치를 옮겼다.
상대의 기분에서
나 자신의 감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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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망
다시는
나 자신의 내적 비명을
외면하지 않을 것.
상대의 표정이 아니라
나의 감각을 기준으로
관계를 선택할 것.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 예민해서가 아니다.
이미 몸과 마음이
충분히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 신호를 듣는 순간부터
회복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