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의 허리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내가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환상을 버린 날(5년 전 기록)


"악!"

수술실의 차가운 정적을 깨고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취가 덜 된 강아지의 비명이 아니었다. 바로 내 입에서 나온, 짐승에 가까운 소리였다.

시계를 5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수술대 위에는 28kg이 넘는 거구의 골든 리트리버가 누워 있었다. 녀석의 누런 치석을 제거하기 위해 스케일링을 하던 중이었다. 대형견의 구강 구조상, 어금니 안쪽 깊숙한 곳을 보려면 시술자가 몸을 비정상적으로 비틀어야만 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찌릿한 전류가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손가락 끝까지 저릿하게 만들더니, 이내 허리 요추 4번과 5번 사이에서 '뚝' 하는 섬뜩한 파열음이 들렸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는 통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원장님! 괜찮으세요?"

놀란 테크니션 선생님이 황급히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하지만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건드리지 마... 잠깐, 잠깐만."

마취 중인 환자를 두고 허리를 펼 수는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 소리를 삼켰다. 진통제 대신 잇몸에서 배어 나오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남은 치석을 모조리 긁어냈다.

다행히 리트리버는 마취에서 말끔하게 깨어났다.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꼬리를 흔들며 보호자의 품에 안겨 병원 문을 나섰다.

"원장님, 우리 아이 이빨이 새하얗게 됐네요! 역시 원장님 실력이 최고예요."

보호자의 감사 인사에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배웅했다.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그대로 진료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녀석은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갔지만, 내 허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파스 냄새가 진동하는 진료실 의자에 누워 멍하니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당시 내 나이 30대 후반, 한창 일할 나이였지만 내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내 몸은...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수의사를 '백조' 같다고 한다.

깨끗하고 시원한 진료실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귀여운 동물들을 쓰다듬으며 우아하게 돈을 버는 직업.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존경받고, 고소득까지 보장된 꿈의 직업.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쉼 없이 갈퀴질을 해대야 하는 백조의 발처럼, 우리의 현실은 처절한 육체노동의 연속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환자를 온몸으로 제압하며 땀범벅이 되는 건 예사다. 작은 고양이도 죽기 살기로 저항하면 성인 남성 혼자서는 제어하기 힘들다. 하물며 대형견은 말할 것도 없다. 진료가 끝나면 온몸에 멍이 들거나, 날카로운 발톱에 긁혀 상처투성이가 되기 일쑤다.

그뿐인가. 뼈를 보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엑스레이를 찍는다. 방사선 피폭을 막기 위해 입는 납복의 무게는 약 5kg. 마치 중세 시대의 갑옷 같은 그 납덩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셔터를 누른다. 초음파 검사를 할 때는 어두운 방에서 모니터를 보기 위해 목을 거북이처럼 빼고 구부정한 자세로 수십 분을 버텨야 한다.

이 짓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실제로 당시 찍어본 내 경추와 요추 엑스레이 사진은 내 나이보다 15년은 더 늙어 있었다. 목 디스크(C5-C6)와 허리 디스크(L4-L5)의 협착 소견. 이것은 영광스러운 훈장이 아니었다. 그저 내 몸이 실시간으로 닳아 없어지고 있다는 가혹한 증거일 뿐이었다.

어디 나뿐일까.

수의대 동기들의 단톡방에는 '건강' 이야기가 자주 올라왔다. 어느 병원 도수치료가 용한지, 신경주사를 맞으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공유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개중에는 더 비극적인 소식도 들려왔다. 당시 지역 수의사회 모임에서 늘 활기차게 분위기를 주도하던 한 선배 원장님의 부고 소식이었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 낮에는 진료하고, 밤에는 병원 경영을 고민하며 쉬지 않고 달리던 분이었다. 수술실에서 쓰러진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다 못해 공포가 밀려왔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나의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다.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종종 부러움 섞인 한탄을 했다.

"야, 그래도 너는 전문직이라 좋겠다. 정년이 없잖아. 잘리지도 않고 평생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럴 때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독한 술을 털어 넣었다.

정년? 그래, 법적인 정년은 없겠지. 누구도 나를 해고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내 몸의 유통기한은 분명히 존재한다.

가끔 악몽을 꾼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꿈. 오른손에 마비가 와서 수술용 메스(Scalpel)를 쥐지 못하는 꿈.

내가 출근하지 못하면 병원 문은 열리지 않는다.

또한 그날의 매출은 '0원'이 된다.

아니, 0원이면 다행이다. 임대료, 직원 월급, 기계 리스비 등 고정 지출은 숨만 쉬어도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내가 멈추는 순간, 내 병원은 나를 잡아먹는 거대한 하마가 된다.

이것이 '1인 원장', 즉 전문직 자영업자의 딜레마다.

우리는 사업가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시간당 단가가 조금 높은 고강도 육체노동자'일 뿐이다. 내 노동이 멈추는 순간, 내 소득도 멈춘다. 이것은 결코 '안정적인 삶'이 아니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외줄 타기였다.

'노동 소득만으로는... 절대로 안 된다.'

척추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던 그날 밤,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 육체는 회계학적으로 볼 때 '감가상각(Depreciation)'이 일어나는 소모품이다. 시간이 갈수록 낡고, 병들고, 가치가 떨어진다. 20대의 체력과 지금의 체력이 다르듯, 내 노동의 생산성은 우하향할 수밖에 없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친 단 하나의 동아줄이 바로 '투자'였다.

'자본'은 늙지 않는다. 지치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으며, 허리 디스크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가지도 않는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복리'라는 마법을 부려 스스로 몸집을 불린다.

"살아야겠다..."

나는 닳아가는 육체를 대신해 24시간 쉬지 않고 일해줄 나만의 '아바타(Avatar)'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것만이 이 지옥 같은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날 유일한 비상구였다.

그날 이후, 나는 점심시간마다 쪽잠을 자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미국 주식 차트를 보기 시작했다. 아직은 미미한 시드머니였지만, 화면 속 붉은 곡선만이 내 유일한 진통제였다.

언젠가 더 이상 내 손으로 수술칼을 잡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 나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했다.

"원장님, 다음 환자 들어옵니다. 사나운 고양이라서 보정 잘해야 할 것 같아요."

테크니션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욱신거리는 허리에 보호대를 다시 꽉 조여 맸다.

'찌익-'

거친 벨크로 소리가 비장하게 진료실을 울린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노동해야만 산다.

하지만 언젠가 이 답답한 보호대를 풀고, 자본이 만들어준 자유를 유영할 그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닳아가는 몸을 이끌고, 저 차가운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해당 브런치북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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