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덩치를 키울 때, 나는 왜 병원을 반토막 냈나?

개원가에는 암묵적인 성공 방정식이 있다.


환자가 늘어나면 직원을 더 뽑고, 매출이 오르면 병원을 확장하고, 결국에는 건물을 올리는 것. 그것이 수의사로서, 그리고 경영자로서의 '성공한 삶'이라고 모두가 믿는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그 확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인가, 아니면 병원이라는 기계인가?"

여기,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세 명의 전문직이 있다.


사례 1. 24시 동물병원의 덫 : 동기 철수의 눈물


며칠 전, 동기 철수의 병원에 다녀왔다.

녀석은 우리 학번에서 가장 야망이 큰 친구였다. "동네 병원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결국 작년 초(2025년)에 대형 사고를 쳤다.

지난 10년간 개미처럼 일해 모은 전 재산에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을 더해 총 10억 원을 베팅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24시 메디컬 센터'다.

수의사만 10명, 스탭까지 합치면 직원 수만 30명이 넘는 그야말로 기업형 병원이다.

오랜만에 만난 철수는 화려한 원장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개원 초기에는 의기양양했던 녀석의 얼굴이, 1년이 지난 지금은 묘하게 푸석해 보였다.

"야, 철수야. 병원 으리으리하다. 이젠 진짜 기업 회장님 다 됐네. 1년 정도 해보니까 어때? 돈 좀 쓸어 담았냐?"

내 농담에 철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송 원장... 말도 마라. 매출? 그래, 예전 병원보다 딱 2배 찍히더라. 통장에 들어오는 숫자는 커졌지. 근데... 까고 보면 남는 게 비슷해. 아니, 오히려 골치만 더 아프다."

녀석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확장 전, 녀석의 병원은 영업이익률이 30%에 달하는 알짜배기였다. 하지만 덩치를 키우고 24시간 병원을 돌리다 보니 야간 수당, 인건비, 관리비가 폭증해서 영업이익률이 15%로 곤두박질쳤다는 것이다.

매출이 2배가 되었는데 이익률이 반토막 났다? 결국 가져가는 절대 수익금은 예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소리다.

철수의 퀭한 눈을 보며 나는 문득 2021년, 의사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한탄 글이 떠올랐다.


"2018년에 서울 아파트를 팔고 경기도로 내려와 개원했습니다. 병원은 대박이 났고, 죽도록 일해서 3년 만에 빚도 다 갚았습니다. 그런데 2021년에 보니, 제가 팔았던 서울 아파트가 10억이 넘게 올랐더군요. 제가 뼈 빠지게 수술해서 번 돈보다, 그냥 그 집 깔고 앉아서 숨만 쉬고 있었던 게 더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차라리 집을 지키고 페이닥터(봉직의)나 하면서 월급이나 받았다면, 지금 제 자산은 훨씬 더 늘어났을 겁니다. 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내 몸을 갈아 넣은 걸까요?"

지금 철수의 꼴이 딱 그랬다.


(여기서부터는 속마음)

'철수야, 너는 지금 세 가지를 놓치고 있어.'


첫째, 뼈아픈 기회비용이다.

만약 그가 확장의 욕심을 버리고, 그 10억 원을 2025년 초 코스피 시장에 묻어두었다면 어땠을까? 작년 한 해, 코스피는 불을 뿜으며 거의 2배가 올랐다.

그가 가만히 앉아만 있었어도 10억 원의 시세 차익을 얻어 총자산이 20억 원이 되었을 거란 얘기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30명의 직원과 씨름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벌 수 있었던 10억을 공중에 날려버린 셈이다.


둘째, 매몰 비용과 감가상각의 늪이다.

철수가 투자한 10억 중 인테리어 5억, 장비 3억... 보증금을 뺀 8억 원은 사실상 증발하는 돈이다. 이 돈은 앞으로 5년에 걸쳐 '감가상각'이라는 이름으로 먼지처럼 사라진다.


셋째, 세금이라는 거대한 동업자다.

백 번 양보해서 순이익을 조금 더 늘렸다고 치자. 늘어난 소득은 곧장 최고 세율 구간으로 진입한다. 소득세, 지방세, 건보료...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추가로 번 돈의 50% 이상을 국가가 가져간다.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의 절반을 세금으로 뜯기는데, 굳이 내 삶을 갈아 넣어 덩치를 키울 이유가 있을까?


사례 2. 건물주가 된 선배의 착각 : 신도시 상가의 배신


철수를 만나고 며칠 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정형외과 박 선배와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개원가에서 소위 '성공한 의사'의 표본이다. 수도권 신도시에서 개원해 대박을 터뜨렸고, 최근에는 그 수익을 바탕으로 상가 건물을 매입해 확장 이전까지 마쳤다.

"송 원장, 역시 남는 건 부동산밖에 없어. 이번에 들어간 상가가 50억인데, 대출 20억 끼고 샀거든? 병원 자리 걱정 안 해도 되고, 임대료 내는 대신 내 법인에 월세를 주니까 세금 처리도 깔끔해."

확실히 그는 철수보다 똑똑했다. '법인 전환'과 '자가 부동산'을 통해 세금을 방어하고 자산을 축적하는 테크트리를 탔다. 하지만 잔을 부딪치는 내 머릿속의 '송원장'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배는 지금... 열등한 자산에 인생을 베팅했어.'


(여기서부터는 속마음)

선배가 병원을 차린 이 신도시는 개발된 지 딱 10년이 지났다. 지금이 가장 화려한 전성기(Peak)다.

하지만 부동산, 특히 신도시 상가는 '생물'과 같다. 앞으로 10년 뒤는 어떨까? 도시는 노후화되고, 건물은 낡아간다.

사람들은 냉정하다. 끊임없이 더 깨끗하고, 더 새롭고, 더 편리한 '신축 신도시'를 찾아 이동한다.

더 무서운 건 '대체재'다.

그 신도시 바로 옆, 텅 빈 벌판을 보라. 건설사들은 그 빈 땅에 5년 뒤, 10년 뒤 더 세련된 새 상가를 올릴 것이다.

서울의 강남처럼 땅이 부족해 희소성이 있는 곳이 아니다. 공급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곳에 30억이라는 내 돈(Equity)을 깔고 앉는 건, 투자 관점에서 볼 때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다.


사례 3. 병원을 반토막 낸 나 : 송원장의 선택


두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내 작고 조용한 병원 문을 열었다.

대기실은 한산하다. 북적이는 직원도,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없다.

누군가는 혀를 찰지 모른다. "한때 잘 나가던 송 원장이 왜 이렇게 쪼그라들었냐"라고.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내 병원이 작아진 것은 패배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축소'라는 것을.

나에게 동물병원은 '자아실현의 성전'도, '평생을 바칠 가업'도 아니다.

나, 송원장은 냉정하게 정의했다.


"이곳은 나의 투자를 위한 '현금 채굴기(Cash Cow)'일뿐이다."


나는 지난 10년간, 병원에서 번 돈을 깔고 앉거나 겉치레에 쓰지 않았다.

매달 기계적으로 환전하여 미국 주식을 샀다.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우물이 아니라, 전 세계의 부를 빨아들이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같은 위대한 기업의 주주가 되는 길을 택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지난 10년간 내 포트폴리오의 연평균 수익률(CAGR)은 20%를 상회했다.

여기에 덤으로 얻은 것이 있다. 바로 '환차익'이다.

철수와 선배가 원화 자산에 목을 매는 동안, 원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반면 내가 보유한 달러 자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폭등했다.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다.

이미 내가 자본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내 노동 소득의 2배를 넘어섰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내가 땀 흘려 버는 속도를 완전히 압도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단했다. 병원을 줄이기로.


매출은 반토막 났지만, 나는 '시간'과 '자유'를 얻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원장님, 그 정도 벌었으면 당장 은퇴하고 놀러 다녀도 되잖아요? 이게 말로만 듣던 '팻 파이어(Fat FIRE)'족 아닌가요?"

맞다. 나는 당장 내일 병원 문을 닫아도, 남은 평생을 풍족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허리 보호대를 차고 출근한다.

단순히 나태해지지 않고, 도박이나 유흥 같은 타락에 빠지지 않기 위한 규율 때문만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돈은 내 자본 아바타들이 알아서 벌어온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진료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겁에 질린 고양이의 눈망울이, 나를 믿고 꼬리를 흔드는 노견의 체온이 온전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 우리 초코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보호자의 손을 잡을 때, 그리고 건강해진 녀석이 내 품에 안길 때 느껴지는 그 따뜻한 전율.

그것은 주식 계좌의 숫자가 아무리 늘어나도 줄 수 없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귀한 배당금이다.

나는 이제 돈을 벌기 위해 진료하지 않는다.

반려동물의 아픔을 덜어주고, 그 치유의 과정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기꺼이 출근한다.


점심시간

나는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근처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면서 운동을 한다.

그리고 오후 6시, 미련 없이 병원 불을 끄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작지만 따뜻한 병원, 그리고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는 거대한 자산.

나는 오늘도 '행복한 수의사'이자 '자유로운 자본가'로서 묵묵히 나의 길을 걷는다.

나는 월세를 산지만 자본을 소유한, 가장 자유로운 송원장이다.


해당 브런치북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홀수 화 (Odd): 자본주의를 정복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룬 현재의 투자자 송원장 이야기

​짝수 화 (Even): 돈이라는 방패가 없어 처절하게 버텨야 했던 과거의 생계형 수의사 이야기

이전 02화수의사의 허리에는 유통기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