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카탈로그를 움켜쥔 후배를 보며

노동을 자본으로 바꾸는 3단계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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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진짜 테슬라 지금 들어가도 됩니까? 아, 씨… 어제 팔았는데 오늘 프리장부터 또 오르네."


점심시간, 근처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후배 최 원장이 양손에 커피를 들고 내 진료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의 스마트폰 화면은 온통 빨간색과 파란색 숫자로 번쩍이고 있었다.

그는 페이닥터 생활을 청산하고 개원한 지 3년 차 된, 이른바 '잘나가는' 청년 원장이다. 수의사와 직원을 여럿 두고 매달 1,500만 원씩 꼬박꼬박 가져가면서도 그의 입에서는 늘 '돈, 돈, 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너 아까 오전에 니네 병원 수술실 들어갈 때도 주식 호가창 봤지? 눈이 퀭하다." 내가 받아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무심하게 툭 던지자, 최 원장이 멋쩍게 웃었다.

"아, 요즘 장이 너무 다이내믹해서 눈을 뗄 수가 없잖아요. 형님은 1인 병원 하면서 진료도 여유롭게 보시고 참 부럽습니다. 옛날에 사둔 미국 주식들 알아서 쑥쑥 크고 있으니. 저도 형님처럼 경제적 자유 좀 누리고 싶은데, 요즘 뭐 눈여겨보는 종목 있습니까? 저 이번에 진짜 한방 먹어야 하거든요."


최 원장이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탁 내려놓았다. 며칠 전부터 입버릇처럼 말하던 신형 포르쉐 카탈로그였다. 나는 그 화려한 책자를 힐끗 보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최 원장. 네가 지금 경제적 자유를 못 누리는 이유는 종목을 몰라서가 아니야. 자본주의 게임의 룰을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지."


나는 진료실 창밖으로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응시하며 내가 깨달은 3단계 공식을 이야기해 주었다.


"투자의 1단계는 '채굴'이야. 네 손에 들린 그 수술용 메스, 네가 뼈 빠지게 차린 그 병원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현금 채굴기라고. 네가 차트 본다고 수술에 집중 못 하고, 호가창 본다고 보호자한테 영혼 없이 대하는 순간 네 채굴기는 고장 나는 거야. 투자 멘탈은 네 병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든든한 현금 흐름에서 나오는 거다."


최 원장은 커피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스마트폰 화면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2단계는 '환전'이야. 넌 지금 그 채굴기로 번 돈을 감가상각 덩어리인 쇳덩이(포르쉐)를 사거나, 통장에 숫자(원화)로 썩혀두려 하잖아. 나는 내 피땀 흘려 번 원화를, 썩지 않는 자산인 '미국 1등 주식'으로 끊임없이 환전했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테슬라. 내가 수술실에서 개똥을 치우고 있을 때, 미국 최고의 천재들이 나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게 만드는 거지. 내 땀방울을 그들의 뇌세포로 환전하는 것. 그게 내 투자였어."

"맞는 말씀이네요. 우량주 모아가는 게 정답이긴 하죠." 그가 기계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마지막 3단계는 '스노우볼', 지루함을 견디는 엉덩이 싸움이지. 너처럼 수능 1등급 맞던 똑똑한 전문직들이 투자에서 박살 나는 이유가 뭔지 알아? 지적 오만함으로 시장을 이겨 먹으려 들기 때문이야. 나는 병원 매출이 들어오면 기계적으로 샀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포르쉐를 사는 바보짓은 안 했어. 남들이 공포에 질려 던질 때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가만히 엉덩이로 버티거나 더 주워 담았지. 투자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니까."


내 이야기가 끝나자 진료실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오후 2시, 최 원장의 스마트폰에서 오후 진료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그가 자리에서 훌쩍 일어났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형님 말씀 구구절절 다 맞습니다. 역시 형님은 멘탈이 남다르세요. 저도 언젠간 형님처럼 우량주 장기투자 해야죠."


그는 '언젠간'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테이블 위에 놓인 포르쉐 카탈로그를 아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일단 이번 달에 들어간 테슬라 단타만 쇼부 보고요! 아, 포르쉐 계약금 넣으려면 5천만 원 더 당겨야 하는데. 오후 슬개골 수술 집중해서 하고 오겠습니다. 형님 수고하십쇼!"


진료실을 나서는 후배의 급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이 내일 당장 호가창 앱을 지울 일은 없을 것이다. 저 포르쉐 카탈로그를 쓰레기통에 버릴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아마 조만간 60개월 할부 노예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할부금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수술 일정을 잡고, 수술과 수술 사이 화장실 변기에 앉아 핏발 선 눈으로 단타를 칠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들 머리로는 내 3단계 공식이 정답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99%의 사람들은 눈앞의 화려한 쇳덩이가 주는 도파민과, 하루 만에 일확천금을 얻을 것 같은 단기 투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똑똑한 전문직일수록 자신이 그 1%의 예외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나는 억지로 그를 말리거나 설득할 생각이 없다. 자본주의는 잔인하게도, 저런 조급한 사람들의 돈이 나처럼 지루하게 엉덩이로 버티는 사람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오는 시스템이니까.


내 가운 주머니 속 스마트폰은 고요했다. 내가 여유롭게 오후 첫 환자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의 천재들은 나를 위해 거대한 자본의 눈덩이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나와 최 원장의 5년 뒤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게임을 즐기면서.


해당 브런치북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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