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소득 5억의 저주, 빚내서 세금을 내다

내가 병원 문을 닫지 못하는 진짜 이유



6월의 학살극, '성실신고'라는 올가미


개원 후 5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지옥 같던 초기의 적자 터널을 지나, 마침내 내 병원도 확고한 궤도에 올랐다. 매일 밤낮없이 수술실과 진료실을 오가며 내 몸을 갈아 넣은 결과, 연 매출은 10억을 훌쩍 넘겼고, 장부상에 찍힌 그해 '순소득(순이익)'은 무려 5억 원에 달했다.


"원장님, 드디어 연소득 5억 찍으셨네요! 이제 진짜 돈방석에 앉으셨습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들을 보며 나 역시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주변에서도 다들 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수의사 같은 전문직(서비스업)이 연 매출 5억 원을 넘긴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국세청의 '성실신고대상자'라는 무시무시한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뜻이다.


보통 자영업자들의 종합소득세 신고는 5월에 끝난다. 하지만 국가가 "너희는 돈을 많이 벌었으니 우리가 현미경으로 뼛속까지 털어보겠다"며 특별 관리하는 성실신고대상자들은 한 달 뒤인 6월에 세금을 낸다. 이름은 '성실신고'라며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합법적 삥 뜯기'의 최고봉이다.


6월 초, 세무사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장부상 소득이 5억이니, 이번 1년 치 종합소득세 총액은 무려 1억 6천만 원으로 계산되었다.


그래도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불과 반년 전인 작년 12월, '중간예납(선납)' 명목으로 이미 7,000만 원을 국가에 먼저 갖다 바쳤기 때문이다. 겨울에 이미 고급 외제차 한 대 값을 세금으로 뜯겼으니, 이번 달엔 남은 금액만 내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원장님, 세금 계산이 끝났습니다. 총 종소세 1억 6천만 원에서, 선납하신 7천만 원을 빼고 남은 종합소득세가 9,000만 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총 종소세(1.6억)의 10%인 지방소득세 1,600만 원이 따로 붙습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잠깐만요. 그럼 제가 이달 말까지 당장 현찰로 내야 할 돈이..." "네, 합쳐서 총 1억 6백만 원입니다."


머리를 둔기로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십중팔구는 속으로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배부른 소리 하네. 5억 벌어서 세금 1억 6천 내면, 그래도 수중에 3억 4천이나 남는데 뭐가 억울하다고 징징대는 거야?"


직장인의 월급 통장 기준으로는 그 계산이 맞다. 하지만 자영업의 세계에서 '장부상 이익(5억)'과 '실제 내 통장 잔고'는 완전히 다른 나라의 언어다.


5억이라는 돈? 내 수중에는 없었다. 왜냐고? 개원할 때 끌어다 쓴 막대한 은행 대출. 매달 피코 풀리게 벌어서 그 대출 '원금'을 갚는 데만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기가 막히게도 세법상 대출 원금을 갚은 돈은 '비용'으로 1원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오직 이자만 인정된다.)


그뿐인가. 옆 병원에 밀리지 않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샀던 1억짜리 최신 의료 장비. 내 통장에서는 당장 현금 1억이 목돈으로 뭉텅 빠져나갔지만, 국세청은 그 돈을 그해의 비용으로 다 털어주지 않고 5년에 걸쳐 찔끔찔끔 감가상각으로 쪼개서 인정해 준다. 수술을 위해 쟁여둔 수천만 원어치의 약품 재고들도 팔리기 전까진 꼼짝없이 내 '자산'으로 잡힌다.


즉, 나는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빚 갚고, 기계 사고, 약을 채워 넣느라 통장 잔고가 텅텅 비어버렸는데, 국가에서 보는 세무 장부상으로는 "너는 고스란히 5억을 남긴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장부상으로는 부자인데, 주머니에는 먼지밖에 없는 기형적인 상태. 그런데 국가는 장부에 적힌 그 '가짜 숫자'를 들이밀며 나에게 당장 현찰 1억 6백만 원을 내놓으라고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통장에 현찰 1억 원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자영업자가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 건보료 월 300만 원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종합소득세가 확정되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악마가 있다. 바로 '건강보험료'다. 얼마 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날아온 우편물을 뜯어보고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 소득이 5억으로 잡히면서 건보료가 재산정되었는데, 매달 내야 할 건강보험료만 300만 원이 넘게 찍혀 있었다. 평범한 중소기업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이, 나는 오직 '숨만 쉬어도' 나가는 건보료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깊은 한숨이 진료실 바닥으로 꺼졌다. 자영업자들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씹어대던 "빚내서 세금 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 끔찍한 현실이 되어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이 '서류상의 세금'을 기한 내에 진짜 현찰로 내기 위해, 다시 은행에 가서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늘려야 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빚을 갚기는커녕, 국가에 세금을 바치기 위해 또 대출을 받는 기막힌 촌극.


남들은 내 사정도 모르고 쉽게 말한다. "야, 많이 벌었으니까 세금도 많이 내는 거지. 배부른 소리 좀 하지 마라."


머리로는 나도 안다. 덜 벌고 덜 내는 것보다, 많이 벌고 많이 내는 게 낫다는 것을. 하지만 막상 그 어마어마한 1억짜리 고지서를 내 손으로 받아 들고, 대출을 일으켜 국고로 송금하는 버튼을 누를 때면 뼛속까지 소름이 돋고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러다 한 달이라도 매출 삐끗하면 한순간에 파산하겠구나' 하는 공포. 막상 세금을 내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에필로그: 폐업조차 허락되지 않는 무간지옥


가장 무서운 사실은 따로 있다. 과로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서 "에라, 내년엔 그냥 병원 문 닫고 좀 쉬어야겠다"라고 다짐해도, 나는 절대 이 병원 문을 마음대로 닫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올해 너무 힘들어서 문을 닫는다면? 내년 6월에 어김없이 날아올 '올해 벌어들인 소득에 대한 수천만 원의 세금 고지서'를 낼 돈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올해 번 돈에 대한 세금을 내기 위해, 내년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병원 문을 열고 돈을 벌어야 한다. 세금이 나를 수술대 앞에 강제로 묶어두는 거대한 족쇄가 된 것이다. 이것은 벗어날 수 없는 무간지옥이었다.


나는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다. 대한민국에서 내 몸을 갈아 넣어 버는 '사업소득'만으로는 절대 진정한 경제적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죽어라 일해서 파이를 키워놓으면, 국가는 가장 큰 포크를 들고 나타나 절반을 뚝 떼어간다. 장사가 잘될 때는 내 수익의 반 이상을 떼어가는 가장 노골적인 동업자 행세를 하지만, 정작 병원이 안 되고 적자에 허덕일 때는 단돈 십 원 한 장 보태주지 않는다. 잘될 때만 동업자이고 안 될 때는 철저한 남인 것. 이것이 이 땅의 고소득 자영업자가 마주해야 하는 가장 비참한 현실이다. 내가 현금이 있든 없든, 대출을 받아서라도 무조건 세금을 내야 하는 가장 무자비한 시스템.


이 지옥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팔아서 수익을 실현하기 전까지는 국세청도 함부로 세금을 매길 수 없고, 자기가 알아서 몸집을 불리며, 건강보험료 인상의 폭탄도 피할 수 있는 무결점의 자산.


내가 '미국의 1등 우량주'라는 자본 소득에 미친 듯이 매달리게 된 진짜 이유. 그것은 부자가 되기 위한 탐욕이 아니라, 세금이라는 이름의 합법적 징수로부터 내 생존권을 지키고,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병원 문을 닫을 수 있는 '진짜 자유'를 얻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해당 브런치북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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