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를 탈출한 자본주의 돌연변이의 차가운 매뉴얼
수요일 오후 2시.
남들은 식곤증과 싸우며 모니터 앞을 지키고 있을 시간, 나는 텅 빈 평일의 대형 카페 창가에 앉아 여유롭게 에스프레소를 홀짝이고 있었다. 일주일에 단 3일만 진료를 보는 나에게, 수요일은 완벽하게 통제된 '나만의 시간'이다.
내 맞은편에는 대학 동기 박 원장이 핏발 선 눈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정석대로 밟은 친구다. 번듯한 대형 동물병원을 차려 직원을 20명이나 거느리고, 영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으며, 최근에는 주말 인스타그램 업로드용으로 신형 벤츠 SUV까지 뽑았다.
"아, 이번 달도 직원 세 명 퇴직금 정산해주고, 아파트 이자 내고, 와이프가 친구들 모임 간다고 산 명품백 카드값 막으려니까 아주 피가 마른다. 대출 금리는 또 왜 이리 안 떨어지냐."
박 원장은 고급스러운 벤츠 키를 테이블 위에 신경질적으로 던지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츄리닝 차림으로 커피를 마시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근데 송 원장, 넌 참 속도 편하다. 병원도 확장 안 하고, 직원 딱 두 명만 두고 1인 원장 체제 유지하면서 일주일에 3일만 일하고. 남들이 너더러 뭐라고 하는 줄 아냐? 수의사로서 야망도 없고, 현실에 안주하는 독특한 괴짜라고 해. 너 그렇게 살면 안 불안하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불안? 야망?
나는 박 원장, 아니 그를 포함해 평생을 헉헉대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99%의 사람들을 향해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당신들은 아마 지금도 치열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남들처럼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밤을 새웠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영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고, 남들이 타는 수준의 자동차를 유지하기 위해 매달 할부금을 내겠지. 그런데 왜 당신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통장 잔고는 늘 불안하며, 진정한 자유는 멀게만 느껴질까?'
답은 간단하다. 당신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매트릭스가 설계한 '4대 가스라이팅'에 완벽하게 세뇌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테이블 너머로 헉헉대는 박 원장을 보며, 그가 앓고 있는 불치병의 병명을 하나씩 진단했다.
박 원장의 명함은 화려하다. 'XX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하지만 실속은 없으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대형 평수의 아파트, 수많은 직원의 수, 화려한 직함… 이 '체면 유지비'야말로 자본주의에서 가장 악랄하고 멍청한 세금이다.
직원이 20명씩 되고 병원이 클수록 겉보기엔 그럴싸하고 매출도 높겠지만, 그건 내 돈이 아니다. 나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를 가차 없이 버렸다. 대신 꼭 필요한 정예 직원 두 명과 함께 작고 단단하게 일하며 모든 고정 비용을 통제함으로써, 내 손에 떨어지는 순도 높은 마진을 쥐었다.
박 원장의 아내가 샀다는 명품백. 과연 그녀가 정말 원해서 산 것일까?
대부분은 내 기준이 없으니 남의 장바구니를 훔쳐본다. 남이 명품을 사면 나도 사야 하고, 남이 해외여행을 가면 나도 가야 안심이 된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힌 자들은 평생 자신의 욕망이 아닌 남의 욕망을 흉내 내다가, 영원히 자본의 노예로 살다 죽는다.
지금 박 원장을 가장 옥죄는 것은 경기도 신도시의 신축 아파트를 사며 짊어진 엄청난 대출 이자다. 전국이 부동산 광풍으로 들끓던 2021년 최고점, '지금 안 사면 벼락거지가 된다'는 공포와 군중 심리에 휩쓸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하방 리스크(Downside Risk)를 활짝 열어버린 결과다.
주체적인 분석 없는 맹목적인 영끌은 투기이자 자살 행위다. 진짜 자본가는 파도가 미친 듯이 칠 때 무리해서 뛰어들지 않는다.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조용히 남아 알짜배기를 줍는다.
마지막으로 박 원장이 내게 던진 말. "남들이 너더러 야망 없는 괴짜라고 해. 너도 확장 좀 해."
한국 사회는 무리에서 튀는 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이 달콤하고도 폭력적인 참견은, 나를 다시 그들의 팍팍한 삶, 즉 '평범하고 가난한 양 떼' 속으로 끌어내려 가두기 위한 매트릭스의 자동 방어 시스템이다.
"야, 송 원장. 내 말 듣고 있어?"
박 원장의 목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남은 에스프레소를 입에 털어 넣고 그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어, 듣고 있어. 남들이 나보고 괴짜라고 한다고? 다행이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봐달라고 전해줘."
나는 이 4가지 바이러스(체면, 비교, 영끌, 오지랖)에 대한 면역 수용체가 선천적으로 결여된 돌연변이였다.
남들이 나를 '독특한 괴짜'라 부르며 오지랖을 부릴 때, 나는 오히려 그 허름한 위장막 뒤에 숨어 철저한 '비대칭성 시스템(하방은 닫히고 상방은 무한히 열려있는 투자 구조)'을 조용히 구축해 나갔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다.
40대 초반의 나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십 명의 직원에게 얽매이는 일 없이 꼭 필요한 두 명의 스태프와 합을 맞추며, 일주일에 단 3일만 내키는 대로 진료를 본다.
그리고 내 뒤에는, 내 평생의 노동 소득을 아득히 초월하는 거대하고 견고한 자본의 성벽이 완성되어, 내가 숨만 쉬어도 스스로 돈을 불려 나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
이 글은 당신에게 부자가 되는 법을 팔아먹기 위한 얄팍한 힐링 에세이나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그저 자본주의의 룰을 완벽하게 해킹하여 '시간의 주도권'을 거머쥔 어느 생존자가, 자신의 뇌에 깔린 소프트웨어를 기록해 두기 위해 남기는 차가운 매뉴얼이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계속해서 남들과 비교하며 체면의 세금을 바치다 죽든가, 아니면 남들에게 기꺼이 '괴짜'라 손가락질받을 용기를 내어 시스템을 탈출하든가.
불편한 진실, 이른바 '빨간 약(Red Pill)'을 삼킬 준비가 된 자들만 다음 장으로 따라오길 바란다.
매트릭스 밖의 진짜 자본주의 생태계는, 당신이 알던 그 팍팍한 세상과는 완전히 다를 테니까.
해당 브런치북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홀수 화 (Odd): 자본주의를 정복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룬 현재의 투자자 송원장 이야기
짝수 화 (Even): 돈이라는 방패가 없어 처절하게 버텨야 했던 과거의 생계형 수의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