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절반이 가운을 벗어던지는 진짜 이유
(※ 들어가며: 이 글은 철저히 동물병원과 수의사의 입장에서 쓰인 지극히 편향적인 기록임을 미리 밝혀둔다. 물론 세상에는 돈만 밝히는 질 나쁜 동물병원도 있고, 이상한 병원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입은 보호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송 원장이라는 한 인간이 수의사라는 직업의 서늘한 민낯을 처음 마주했던, 잊을 수 없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약간의 각색을 거쳤다.)
수의대 졸업생들은 대부분 가슴속에 뜨거운 불꽃을 하나씩 품고 사회로 나온다. 아픈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내 손으로 살려내겠다는, 생명에 대한 순수한 열정 말이다. 지금은 차가운 자본주의의 신봉자가 된 송 원장에게도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송 원장이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임상 수의사의 길을 포기하는 동기들의 비율은 무려 50%에 육박했다. 그 똑똑하고 열정 넘치던 청년들이 왜 도망치듯 가운을 벗어던지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회사로 떠났을까?
일이 고되어서가 아니다. 그들을 무너뜨린 건, 보호자들의 서슴없는 멸시와 모욕, 그리고 '돈' 때문에 내 눈앞에서 아픈 생명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끔찍한 무력감 때문이었다.
송 원장의 인턴 시절, 그 무력감이 극에 달했던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분양받은 지 얼마 안 된 3개월짜리 핏덩이 강아지가 병원에 내원했다. 증상은 심각했다. 3일째 밥을 한 술도 뜨지 못했고, 하루에 3~4회씩 구토를 쏟아내고 있었다. 다 큰 성견과 다르게, 고작 3개월 된 어린 강아지가 3일이나 굶었다는 것은 이미 심각한 저혈당이 왔을 가능성이 높으며 당장 처치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뜻이다. (사람으로 치면 어린아이가 아픈 것과 어른이 아픈 것은 천지 차이인 것과 같다.)
비용 부담을 느끼며 '최소한의 검사'만을 원하던 보호자를 설득해, 가장 시급하게 감별해야 할 치명적인 전염병인 '파보 바이러스' 장염 키트 검사를 진행했다. 인턴 송 원장은 한 치의 오해도 없게 하려고, 보호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앞에서 새 키트의 포장지를 뜯고 분변을 채취해 검사했다.
결과는 선명한 두 줄. '양성'이었다. 키트 검사가 100%의 정확도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파보는 임상 증상과 키트 결과를 종합했을 때 신뢰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완벽한 확진을 위해 외부 실험실로 PCR 검사를 보낼 수도 있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파보는 발병 초기 일주일의 집중 치료가 생사를 가르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서 죽어가는 강아지를 두고 일주일 뒤에 나올 PCR 결과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송 원장은 무거운 마음으로 강아지의 상태를 설명하며, 입원과 추가적인 혈액 및 영상 검사(약 30만 원 선)가 시급하다고 말씀드렸다. 그 순간, 보호자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마치 벌레를 보듯 송 원장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쏘아보더니, 진료실이 떠나가라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완전 사기꾼, 장사꾼 새끼들 아니야 이거! 멀쩡한 개를 병 걸렸다고 덤터기를 씌워?"
송 원장은 당황하여 의학적 근거를 대며 침착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그녀의 귀에는 이미 어떠한 설명도 들리지 않았다. 얼굴이 상기된 그녀는, 죽어가는 강아지를 거칠게 안고서 온갖 비난을 퍼부으며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진료실에 홀로 남겨진 인턴 송 원장은 망연자실했다. 욕설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보호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욕을 먹는 건 수의사의 숙명이라 쳐도, 저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집에 끌려간 3개월짜리 강아지는 며칠 내로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날, 송 원장은 가슴속 생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처참하게 찢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병원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보호자의 남편이었다. 그의 주장은 황당했다. "너희들이 돈을 뜯어내려고 파보 키트를 조작했다."
송 원장은 보호자분이 보는 앞에서 포장지를 뜯고 검사했다고 항변했다. 그 역시 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주작 가능성이 없다는 걸 네가 입증해 보라"며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렸다. 어떠한 설명도 믿어주지 않자, 결국 송 원장은 키트 제조사에까지 연락해 해당 키트를 수거해 가도록 조치했고, 제조사 측에서 직접 보호자에게 연락해 키트 결함이나 조작이 없음을 증명해 주었다.
송 원장은 이 지긋지긋한 해프닝이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다. 순진한 착각이었다.
며칠 뒤, 지역 맘카페와 여러 인터넷 경로를 통해 그 병원을 저격하는 장문의 글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XX동물병원, 키트 조작해서 없는 전염병 만들어내고 수천만 원 요구함]
검사비 30만 원은 인터넷의 익명성 속에서 순식간에 '수천만 원'으로 부풀려져 있었다.
당시 인턴이었던 송 원장은 병원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어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억울함과 수치심에 수십 번도 더 사직서를 만지작거렸다. 다행히 동료들은 그를 위로해 주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대표 원장님이 직접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었다.
보호자가 원한 것은 결국 '돈'이었다. 그들은 그날 진료비로 고작 5만 원을 결제하고 갔다. 그런데 인터넷에 악의적인 소설을 써서 병원을 협박한 대가로 위로금 명목의 100만 원을 요구한 것이다.
대표 원장님은 똥을 피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계좌에 100만 원을 입금했다. 돈이 입금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인터넷을 달구던 그 뜨거운 분노의 글들은 거짓말처럼 깔끔하게 삭제되었다.
그 강아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파보 바이러스의 특성상 아마도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강아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30만 원 앞에서는 '사기꾼'이라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강아지의 질병을 무기 삼아 병원을 협박하여 100만 원을 뜯어내는 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것이 순진했던 청년 송 원장이 가운을 입고 마주한 자본주의의 가장 끔찍하고 구역질 나는 밑바닥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타인의 노동과 기술을 공짜로 착취하거나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해, '생명', '도덕', '약자'라는 완장을 차고 가장 잔인한 폭력을 휘두른다.
송 원장은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다. 착하고 성실하게 진료만 본다고 해서 이 지옥 같은 진흙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힘없는 '을'의 위치에 있는 한, 언제든 저런 위선자들의 표적이 되어 영혼까지 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현재의 송 원장이 그토록 독하게 자본을 모으고 시스템에 집착하게 된 진짜 이유. 그것은 단순히 좋은 차를 타고 명품을 두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생명을 담보로 흥정하고, 인터넷 리뷰를 무기로 삥을 뜯는 저렴한 악의 앞에서도 "됐으니 나가십시오"라고 미련 없이 문을 가리킬 수 있는 힘.
인간의 추악한 위선으로부터 나 자신과 내 직업적 자존심을 완벽하게 지켜낼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방패는, 오직 '압도적인 자본'뿐이었기 때문이다.
해당 브런치북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홀수 화 (Odd): 자본주의를 정복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룬 현재의 투자자 송원장 이야기
짝수 화 (Even): 돈이라는 방패가 없어 처절하게 버텨야 했던 과거의 생계형 수의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