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무너짐

by VetStella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새벽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목소리가 갈라지는 채로 괴롭게 외쳤다. 꿈의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아마 사고는 아닌 거 같고 감정적으로 무너져 내렸던 순간이었던 거 같다.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말.

도와주세요.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길래 내 입에서 그렇게 간절히 도와달라는 말이 나올 수가 있지?


사회에서 인연이 닿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든든한 인연들이 있어도,

그분들이 나의 어려움 앞에서 발 벗고 나서줄 걸 알면서도,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기대어 보지 못했던 내가

이제 무너지긴 했나 보다.


꿈에서 기억나진 않지만,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벌써 수술 후 한 달이 넘었다.

26.3.26





내가 머물렀던 6인실 외과 간호 병동에는

이미 어제 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두 분과

어제저녁 9시 넘어서쯤 수술 후 베드에 실려 신음을 내며 마취에서 깨어나고 계신 한 분,

그리고 오늘 당일 수술 예정인 나를 포함한 세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유방암 수술 당일,

속옷을 모두 탈의하고 겨드랑이 제모 후 단정히 양갈래 머리로 땋고 환자복을 입고 기다린다.

나의 경우는 머리가 짧아서 양갈래 머리는 생략하고 오전 검사를 대기하고 있었다.



다른 한 분은 단정히 준비를 하고 휠체어를 타고 이동 주임님과 함께 초음파실로 이동하고

나는 수액대를 끌고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한 손으로 잡고 그 뒤를 따랐다.

휠체어를 타신 분은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젊은 암 환자였다.

6인실 커튼 사이로 들려오는 그 환우분의 주치의와 대화에서 오늘 유방암 수술 이후 5월에 갑상선암 수술도 예정이라고 했다.



초음파 대기실은 매우 복잡하고 바쁘고 정신이 없다.

검사가 지체되면서 다들 예민하게 날이 서 있는 환자들과

이런 상황이 이골이 난 듯 이마는 찡긋한 채로 펴질 시간이 없고, 목소리는 친절함과 단호함으로 프로답게 대처하며 접수하시는 선생님들.

창과 방패처럼 팽팽한 긴장감이다.

나는 벽에 기대어 이런 상황들을 지켜보고 사람들의 표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간에 힘이 빡 들어가 펴질 겨를이 없는 원무 선생님들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동물병원도 한두 시간 이상의 대기 발생으로 언제나 고함과 함께 컴플레인이 있어 왔으니까.



휠체어를 타고 앉아 계신 입원실 동기이자 오늘 수술 예정이신 환우도 참다못해

곧 수술인데 언제 검사하냐,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호소했다.


그분 등 뒤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며 그분을 바라보았다.

소리 없이 눈을 훔치신다.

뭐지? 눈에 뭐가 들어간 건가?


또 얼마 있다가 눈을 훔치신다. 눈물이 나나보다.

말없이 계속 눈을 닦아내신다.

긴장이 되신 건가...

이 때는 그분의 감정을 잘 알지 못했다.

26.02.04





수술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휴식이 시작되었다. 휴직 전 직장에서의 나의 당참은 사라졌다.

나의 찌그러진 한쪽 가슴은 뻐근하고 욱신거렸다.

아무 감정 없이 눈물이 그냥 주룩주룩 흐른다. 림프 배액의 문제인가?

당황스럽다. 이거 왜 이래...


시도 때도 없이, 슬픔도 없이 눈물이 계속 흐른다.

신경이 덜 깼나.


우연히 만난 암투병 환우분이 하늘의 메시지를 전달하듯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나를 사랑하라고?

넷플릭스 웃긴 거를 많이 보라고?

맛있는 거 많이 먹으라고?

싫은 말 무시하라고?


하... 세상 쉬울 거 같았던 조언이 제일 어려운 일이구나.



가슴의 부기가 빠지면서 내 유두 아래 부위는 함몰되어 간다. 염증도 맺히면서 속옷이 스칠 때마다 따끔하다.

원래도 이쁜 가슴이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비뚫어져 버린다.

앞으로 방사선치료하면 피부도 검게 되겠지.

호르몬 억제제도 먹게 되면... 아... 글로만 봤던 부작용들을 겪겠지. 조금 씁쓸한데?


넷플릭스 어떤 방송을 훑어봐도 어떤 장면에도 웃음이 나지 않는다. 웃긴 장면 이면의 아픔이 느껴진다.

식욕은 0으로 수렴한다. 하루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낄 수가 없었다.

지인들이 맛있는 거 배달시켜 먹으라고 보내 준 배민 상품권으로 뭘 먹을까 고민해 보다가도 아무것도 당기지 않았다.

생기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뭘까.

찌그러진 내 가슴 때문일까?

투병할 때 일반적으로 많이 느낀다는 억울함일까?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의 두려움은

잠시 쉼 이후에 달라지지 않을 똑같은 현실 속에 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날 숨 막히게 한다.


너무 무섭다.

삶의 감옥이.

26.02.18



사람들은 죽고 싶다는 말 앞에,

죽을힘으로 살면 된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죽을힘이

살아가는 것보다 더 어렵고 두렵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일테니까.

근데 그건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애착이 있을 때나 죽음이 두렵다고 느끼는 거였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삶이 더 두렵기 때문에, 살아갈 힘이 없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란 걸 이해하게 된다.

살아갈 방법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줘야 그나마 삶을 버텨볼 힘이 생긴다.



나의 삶에서 애착을 주는 건 무얼까. 몇 년 동안 웃음도 잃었고,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가 온 우주였던 아이도 커가면서 점점 나에게서 정서적인 독립을 해간다.

나의 삶에서 의무감 외에 나를 잡아두는 건 무얼까.


햇빛을 쬐며 하루하루 방서선 치료를 받으러 나서면 조금은 나에 대한, 햇살에 대한 애착이 생기려나.

26.03.28



이 글을 쓰고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너무 슬픈 소식을 들었다.

사랑하는 동료의 어머님께서 영면하셨다.


내가 삶과 죽음의 선택을, 아픔을, 슬픔을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그동안 아픔을 짊어졌을 동료에게,

모든 것이 미안하다.






"쌤, 아픈데 그렇게 울지 마."

정작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그녀인데, 나는 도리어 그 슬픔에 기대어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린다.


"쌤이 왜 나를 걱정해... 미안해, 내가 몰랐어. 맨날 나 힘든 거만 얘기했지. 쌤도 힘들었을 텐데, 내가 몰라줬어. 미안해, 쌤 앞에서 내가 울면 안 되는 건데..."


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꿈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도와달라고 말할 만큼

무너진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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