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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Sep 22. 2020

스무살, 나 학과 잘못 선택했나? (1)

철학 전공생의 현타와 현재

스무살만큼 좋다고 칭송받는 나이가 어디있겠는가. 성년이 된 첫 해, 대학생활을 하면 모두가 '새내기'라고 부르며 얼러주는 나이, 좀 서툴어도 괜찮은 나이, 나이가 무기인 젊음...?


스물을 지나왔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만큼 어린게 유세인 나이인가 싶기는 하다. 내 스무살은 너무 어려서 어려웠고 그래서 서툴었던 시기였다. 이제는 잘 기억도 안나는 고민부터 시작해 자다가도 생각나면 이불을 하이킥하는 흑역사까지.  스물의 서툶에 A-Z를 꼽으면 한도 끝도 없겠으니 (!) 제일 힘들었던 고민, 그리고 많은 이들이 힘들어 할 주제인 '학과'에 대해 화두를 던져보려한다.


  

자는거_아님_존재에_대한_Zzzz...


    나...학과 잘못 선택했나?  

개인정보를 최대한 밝히지 않는 쪽으로 쓰려고 했건만 이 이야기를 풀며 내 학과를 숨길수는 없겠다. 나는 철학을 1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많고 많은 학과 중 왜 철학과니?"


첫 물음을 던진 사람은 고등학교 담임선생님. 그렇게 묻는 것 만으로도 반항심은 뾰족하게 솟았고 괜시리 더 철학과에 진학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후로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많은 때에, 수없이 많은 기출변형으로 이루어진 질문을 답해야 했다. (철학이 좋아요? 철학과에서는 뭘 해요? 허허..! 철학자를 하는구만..! 왜갔어?)


그런 질문들이 꼭 싫은 건 아니었다. 대답하기 어렵지도 않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PD가 되고 싶었고 내가 생각하는 PD의 역량은 무엇보다도 '관점'이었다. 무엇을 담으려면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 해 철학자들의 수많은 관점들을 배우고 싶었다. 아, 여기까지만 보면 그럴 듯 하다. 꽤나 괜찮은 고등학생의 대답이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철학이 멋있어보였다. 지적 허영심이 진학 이유의 반은 차지했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치열하다. 고민은 대학을 막상 진학해서 생겼다. 첫 수업이었던 '철학 입문'. 원어강의로 진행되는 수업에서는 총 3가지의 언어가 등장했다. 고대 그리스 단어들, 교수님의 유별난 독일어 사랑, 영어로 진행된 수업과 번역체 한글로 쓰여진 거대한 교재. 이정도는 애교다. 도대체 이게 수학인지 뭔지 모르겠는 논리학, 왜 다들 자를 뒤에 붙인건지 이름도 헷갈리는 맹자순자노자고자공자.. 


내가 생각했던 철학 수업이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였다면 실제로 접한 현실은 끝없는 해석과 분석이었다. 당연하다. 한 사람이 생애를 펼쳐 구축해놓은 철학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단어 하나가 의미하는 뜻은 방대하고 사소한 디테일 하나에도 담긴 의도가 가득하다. 어렵고 난해한 학과 수업에 나처럼 '철학 우울증'을 앓는 동기들은 꽤 많았다. 30명 즈음되는 동기들 중 5명은 전과다, 군대다, 반수다 가지각색의 이유로 단톡방에 (알 수 없음)으로 표시되기 일쑤였다. 

    

인정한다. 학과에 대한 진한 현타를 말했으니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학과 공부에 미칠듯 몰입한 적이 크게 없다. 특히나 동양철학에는 놀랄만큼 관심을 두지 않았다. 누군가가 너의 게으름과 무지가 철학을 폄하하는 것 아닌가, 라고 비난한다면 그에도 딱히 변명할 그럴듯한 답은 없고 좀 부끄럽긴 하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학과 공부에 100%몰입하고 나서야 후회를 느끼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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