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이 Sep 22. 2020

스무살, 나 학과 잘못 선택했나? (2)

Just Do It 

*두근두근, 수능공부를 손가락이 빠져라 했건만 날 기다리는건 심오한 전공의 난해함. 시작부터 이상하다. 스무살, 나 학과 잘못 선택했나? -이전편에서 이어지는 (2)편입니다.*

초롱초롱 튜브는 놀랍게도 철학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대학원생이라는 사실..!

정신차려보니 막학기


"많고 많은 학과 중 왜 철학과니?"


야심차게 대답을 했던 19살, 20살 때와는 달리 지금은 대답이 꽤 가소로워졌다. 


"그러게요..하하" 


그래서 정말로 어떻냐고? 적당한 대답과 신입생 때 느꼈던 현타와는 달리 막학기 즈음 되니 딱히 후회는 없었다. 나름대로 철학에 애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너무 심심한 대답일까?


스무살 땐 이 학문을 4년동안 배울 수 있을까 하는 현타, 왔었다. 왜 한국어로 쓰인 책이 안읽히지? 라는 우울감, 느꼈다.막상 학과를 선택할 때는 분명한 동기가 있었음에도 후회는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학과에 대한 고민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한 학문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생각했던 대학생의 모습과 실제 대학생의 모습에서 차이가 난다는 사실 또한 작용한다. 스무살은 그렇다. 모든게 낯설은 와중 환상이나 기대는 와장창 깨지고 만다.


매 학기, 철학 수업을 어떻게든 들었다. 재미가 있으면 있는대로 집중했고 없으면 없는대로 수업을 탈주했다. 한 학기동안 수업을 4번 들어간 적도 있고 2점대 학점에 울려오는 뒷골을 소주로 적신 날도 많다. 그래도 학교는 그냥 다녔다. 다른 곳으로 튈 용기나 배짱이 부족해서일수도 있고, 넓은 철학의 바다 속에서도 나름대로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몰두하며 점차 정을 붙이기도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짜증나던 용어들과 철학자 그 자신은 이해할까 싶은 난해한 번역체 (존재를 이해하는것은 존재자의 현존과..)가 어느 순간 읽히더라. 학과를 선택한 아주 원초적인 욕구인 지적 허영심도 넘치게 채웠다. 하고자 했던 바를 이뤘기에 막학기에 이르러서도 후회는 없다.



??? : 그냥 버티고 있으면 좋아진다고?

소피스트 경력직 (4년 이상) 이직 요청합니다


내가 그랬듯 '그냥 버티면 좋아진다!'라는 꼰대스러운 답을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현실과 이상이 달랐을 때의 혼란이나 불안을 자신의 탓을 돌리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싶다. 우리의 선택이 항상 최선일 수는 없다. 최선이 아닌 선택에 혼란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내 선택이 잘못되었나?'  짚다보면 잘못된 선택으로 암담한 미래가 올거라는 불안이 목을 턱턱 막는다. 실제로 스무살 당시 나의 깊은 현타도 이런 불안에서 시작했다. "이대로 4년동안 아무것도 못한 채 2400만원을 쓰고, 허송생활하면서 보내고, 취업도 못하면 난 어떡해..?"


가장 최악의 상황이 반드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꿈같은 말은 접겠다. 다만 기대가 현실의 모습과 다른 만큼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도 다가올 미래와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결과는 언제나 과정이 있어야만 생긴다. 현재도 거치지 않은 우리가 이르게 미래를 예상할 순 없다. 


변화가 용기를 바탕으로 하듯, 불안을 담보로 삼으면 현재를 버틸 수 없다. 

나는 가장 불안할 때 이 모든 일이 내 선택 탓이라는 후회를 의식적으로 밀어냈었다. 


"내 탓해야 뭐 달라져?"


자책을 한번 하건 열번 하건 달라지는 건 없다. 자기반성은 명확하게 한 번이면 충분하다. 새로운 선택을 통해 변화하던지 현실을 버티며 선택을 이행하던지. 그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괴로움을 자신의 탓인 양 떠안는건 자학일 뿐이다. 



Just Do It

ⓒNike

얼마 전 졸업예정증명서를 출력했다. 1전공 : 철학 (문학사) 라는 타이틀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일단 확실한건 좀 행복했다. (졸업이다!) 최근 철학과를 탈출한 옛 동기의 최근 근황을 들었다. 전과한 학과에서 잘 적응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할 생각이란다. 20살 때, 나처럼 본인 학과를 괴로워하던 친구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봤다. 코로나19가 끝나면 공부를 하러 교환학생을 갈 생각이란다. 


긍정적인 예만 써놓았지만, 버티건 튀건 그 자체로 더 나은건 없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선택에 한없이 매인다면 결과를 만들 행동을 행하지도 못한다. 잠깐 고개를 들고 일단 뭐든 시작해보자. 아직 그럴 수 있는 나이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서툰 스무살을 좋다고 칭송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무살, 나 학과 잘못 선택했나?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