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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Sep 27. 2020

급식 먹던 시절이 좋았지 :: 학식과 끼니(1)

Haksik University of FXXking Studies

다소 무거운 주제들로 <엑스트라 대학생활> 시리즈의 서두를 열었다. 그러나 대학생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주제,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는 목표가 우리에게 있다. 바로 '끼니'. 대학생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학식에 대한 로망도 불태웠더랬다. 그러나 어른들 말에는 이유가 있다. 식사를 하러 가려면 기본 1시간, 혼밥에 대한 부담, 배달음식에 괴로워지는 위장까지. 급식 먹던 시절이 참 좋았지...




0. 들어갈 땐 맘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자연친화적인 학교. 녹음이 참 푸르렀다. 


학교를 간 첫 기억은 아빠와 함께였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운전을 하는데, 글쎄 이름도 모를 산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더라. 직감적으로 '이 길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고는 급히 경로를 변경했다. 알고 보니 그 길은 산에 위치한 우리 학교로 최단시간(?) 갈 수 있는 비밀의 루트였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좀 특이했다. 정문은 있는데 후문은 없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산을 깎아 만든 학교는 넓이도, 자연경관도, 출몰하는 동물들도 언제나 예상을 웃돌곤 했다. 정문으로부터 가장 끝 건물이 걸어서 30분이 걸린다거나 (차로도 10분은 족히 걸렸다) 밤이면 기숙사의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린다거나, 공작이 간혹 보인다는 소문들은 입학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엔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1. 밥 한번 먹으러 가려니 30분


지나치게 넓은 학교에서는 밥 한 번을 먹으러 가려면 기본이 30분이었다. 원래 밥은 30분은 걸린다고? 밖으로 나가거나 밥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이동하는 시간'만을 잡은 게 30분이라는 점. 확실한 출처를 찾기 어려워 짐작의 용도로만 말하자면, 다니던 학교는 전국에서 대학 캠퍼스 크기 4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하필 산으로 되어있어 전체적인 부지가 오르막길이었고, 학교 내를 다니던 셔틀버스 (이하 빵차)는 매 버스마다 미어터지는 학생들로 몇 대를 보내기 일쑤였다.   


저 산을 넘어있는 스키장으로 걸어(?) 갔다는 괴담 아닌 괴담도 존재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 교내에는 총 5곳의 식당이 존재했다. 두 개는 일반적인 학식, 분식을 파는 식당이었고 하나는 교직원 식당, 하나는 기업들이 연수를 온다는 사회교육원의 식당, 하나는 기숙사 식당이었다. 누구나 먹을 수 있지만 누구도 먹어본 적이 없다는 사회교육원 식당을 제외하고는 꽤 선택지가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밥 한 번을 먹으러 가려면 30분을 기본으로 예상해야 했다. 본인이 식사를 빠르게 마치는 편이라면 1시간으로도 충분하겠다. 그러나 아주 일반적인 경우에서 메뉴를 정할 시간도 고민하고, 밥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실시간도 생각을 해본다면 총 2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했다. 



2. 학식 상태가 이상해요


서울 내의 어느 불교대학은 채식 뷔페가 있다더라, 어느 대학의 치즈돈가스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찾아갈 정도로 맛있다더라. 고등학생들이 꿈꾸는 캠퍼스 라이프에는 학식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에게도 이러한 로망, 있었다. 처음 학식을 먹던 날 어색하게 학식 표를 내밀며 오묘한 뿌듯함도 느꼈더랬다.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낀 건 3주 차부터. 언제까지 뚝배기에 담긴 정체불명의 김치 짜글이(?)를 먹어야 하는 것인지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요즘은 학식 표가 아니라 QR코드로 찍는다더라. 아직 재학생인데도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정체 불명의 크림떡볶이와 엄청난 짠 맛의 불고기 덮밥. 학식은 보이는 맛의 딱 반을 생각하면 된다. 

잠시 급식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꽤 급식이 잘 나오기로 소문 나 있었다. 비단 급식의 탓 만은 아니지만, 1학년 때의 한 반의 입학 몸무게가 12월에는 +100킬로였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니. 식사는 물론이요 급식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치킨랩, 쿠키, 케이크, 구슬아이스크림, 각종 스파게티류, 매주 바뀌는 주스 등. 완벽했던 급식에 3년 동안 길들여졌던 나로서는 학식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괜찮았던 교직원 식당 밥들. 다른 것 보다, 먹고 나면 속이 편안했다. 

물론 학교 내에 식당이 5군데나 있었던 만큼, 다양한 식사 종류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했다. 도저히 열 번 이상은 돈 주고 사 먹지 못할 정도의 일반 학식과는 달리 교직원 식당은 꽤 퀄리티가 좋은 편이었다. 채소, 고기, 밥이 적절히 분배된 메뉴가 매일 매일 다르게 나왔고 어쩐지 식당에는 채광도 잘 들어왔다. 훨씬 사람이 적어 상대적으로 혼밥을 하기 좋은 분위기는 덤.  다만 '교직원' 식당인 만큼 사람들이 몰리면 학생은 이용하지 못했고, 가격도 학식의 약 2배 정도로 매일 식사를 하기엔 가격적인 부담이 있었다. 혹여 교수님이라도 만나는 날에는 어색한 인사를 치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단점도 추가. (그래..OO이가 벌써 몇학년이니? 복학은 언제했니? 다음에는 전공 어떤거 들을 예정이야?)


지나치게 큰 지출 시간, 묘하게 맛없는 학식에 넌더리가 나던 나는 몇 가지 탈출구를 발견했다. '배달' 그리고 '학교 앞 음식점'.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는 학식보다도 더 괴로웠으니... 끼니 한 번 챙기기, 거 참 험난하다. 


(급식 먹던 시절이 좋았지 :: 학식과 끼니(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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