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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Oct 22. 2023

슬럼프를 겪고 있는 마케터 후배들이 있다면

마케터 추천 도서: 최인아,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정말 오랜만에 내게 위안과 안도를 안겨준 책을 만났다.

이 책이 조금만 더 세상에 일찍 나왔더라면 그렇게 기나 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란 생각이 잠시 스쳤다가, 금세 ‘아니다, 내가 겪어야만 했던 고민의 시간들이었다’라는 결론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꽤 오랫동안(일 년 정도),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해 굉장한 슬럼프를 겪었었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를 했던 터라 일부 지인들은 아는 내용일 것이다. 대략 7년 정도, BM(브랜드 마케터)으로서 주도적인 업무를 해오다가 GM(글로벌 마케터)으로 업무를 변경한 그다음 해에 겪은 일이었다. GM 첫 해에는 바뀐 업무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을 보내 차마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그다음 해에 엄청난 슬럼프를 겪었다. GM 상품 담당의 업무를 단순하게 치환해 보자면, 국내 자료를 해외 지사용으로 베리에이션 하는 일이다. 그 안에서 더 치열하게 고민할 지점들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벌떼같이 몰려드는 신제품 출시 일정에 생각보다 고민할 시간을 갖기는 쉽지 않았고,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 속 인물들처럼 빠르게 번역하여 빠르게 전달하는 ‘단순 노동’의 일상이 계속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업무의 의미를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 아르바이트생이 해도 되는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르다 보니, 더더욱 일에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조직에 더 기여를 하고 싶은데, 그 기여하는 것이 ‘전달’의 업무라는 게 너무도 슬펐다.





자, 여러분의 동력은 무엇인가요?
자신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혹은 어려움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계세요?
-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87p



최인아 님은 이 책에서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아무리 말려도 그 일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충족이 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서 기나긴 슬럼프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 년 정도를 무기력하게, 아무런 고민 없이 보냈다.


하지만 다행인 건, 내 주위에는 따끔한 충고를 해주시는 선배들이 있었단 것이다. 어느 날, 선배 한 분을 찾아가 이제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고, 예전에는 선배들을 보면 동기부여가 되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당연히 ‘나도 그래’ 류의 말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답변, 아주 속이 쓰리지만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제는 네가 다른 사람들을 동기부여 해줘야지, 누군가가 동기부여 해 주기만을 기다리지 마!’. 뭐라고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지만,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나는 왜 그동안 누군가가 동기부여 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왜 스스로 의미를 찾고 동기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을까,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일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뀐 것은.





누누이 강조하지만 일은 자신을 위해 하는 겁니다
내가 일의 주인이라 여기는 태도와 노력으로 시간의 밀도를 높이세요.
그럼 그만큼이 자기의 역량, 자산으로 쌓일 겁니다.
-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157p


어떤 마케터로 남고 싶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나는 ‘나에게 떳떳한’ 글로벌 마케터로 남고 싶다. 여기에서 ‘나에게 떳떳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고민 없이 단순히 자료를 전달하는 그 시간에도 ‘GM’으로서의 커리어는 쌓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결코 스스로에게 떳떳하지도 않거니와, 이 회사를 나가면, 즉 대기업의 시스템에서 벗어나면 내게 남아있지 않을 알량한 커리어였다. 그런 시간들로 나의 시간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회사를 나가도, 나 혼자 존재하더라도 ‘글로벌 마케터’로서 떳떳하고자 내 시간을, 회사가 주는 베네핏을 활용하자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내실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글로벌 마케터'로 자리하기 위해 틈틈이 해외 시장 보고서를 읽고, 회사의 시스템을 통해 볼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들을 스스로 찾아보았다. 특히 중국 시장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이두를 밥 먹듯이 뒤졌다. 그리고 그렇게 습득한 내용들을 나 스스로 정리하고,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 브런치 ‘중화탐탐 호시탐탐’ 매거진의 시작점이었다.


어떤 것에 대한 태도는 나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꽤 많은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적어도 내가 회사 업무에 대한 태도를 바꾼 이후로, 일이 바빠서 힘들지언정, 하루하루를 버티느라 혹은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롭지는 않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에서 최인아 님이 일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태도’에 대한 것이다. 다름 아닌, ‘태도’가 경쟁력이라고 말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고 정말 깜짝 놀랐다. 내가 했던 고민들, 내가 내렸던 결론이 이 책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이 같아서 시시했냐고? 천만에. 오히려 좋았다. 왜냐하면, 내가 내린 결론이 맞았구나, 이대로 가면 나도 최인아 님처럼 멋지게 내 삶을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이 책을 후배 마케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마케팅'이라는 업무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 '마케팅'은 일에 정해진 한도와 범위가 없다. 내가 더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안 하고 싶으면 그대로도 괜찮다(여기에서의 '괜찮다'는 '사고가 안 난다'에 가깝다). 당연히 모든 마케터들은 더 많이 고민해서 더 많은 것을 반영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마케팅이라는 것에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는 경우는 결코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것까지 해봐야지!' 하다가, 결국 시간에 쫓겨 '기본'만 하게 될 때가 많고 이런 순간이 반복되다 보면 일의 의미가 퇴색되고, 어느 순간 업무에 '갈리고' 소모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마케터들은 항상 지쳐있고, 의욕이 넘치던 마케터들도 어느새 하나둘씩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만약에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 쉽게 상황에 잠식되지 말고, 나의 주도권을 상황에 내어주지 말고 관점을 바꿔보자고, 태도를 바꿔보자고. 우리 한번 다시 해보자고.



'좀더 가보자. 조금만 더 가보자.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귀한 것들이 있다.
그런 시간을 보낸 후의 나는 지금보다 한결 나아져 있을 거다'
-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3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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