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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Aug 07. 2020

<신의 물방울>에 나온 와인 마셔보기 - 1

샤또 르 퓌, 델라모뜨 브뤼, 루이자도 샤블리, 페스케라 크리안자


신혼집 책장 한 칸에 전세 준 <신의 물방울> 전권



다들 와인에 깊게 빠지게 만든 원동력이 무엇일까?

나의 경우에는, 초반에 읽었던 <신의 물방울>의 역할이 컸다.

만화책인데도 불구하고 지식과 정보가 많아 처음에 개념을 잡기도 쉬울뿐더러, 시즈쿠와 잇세가 와인을 마시고 표현하는 것을 읽노라면 갈증이 느껴져 당장이라도 와인을 마시고 싶어 지곤 했다.

<신의 물방울>은 총 44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을 다 읽으려고 몇 주간 놀숲으로 퇴근했던 기억이 난다.


결혼을 하고 나서, 어느 날 남편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다. 기대에 부풀어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다름 아닌 <신의 물방울> 전권이었다!

그 덕에 요즘 잠들기 전까지 둘이 <신의 물방울>을 읽는데, 완전 생초보일 적 읽었을 때와는 또 감회가 남달랐다. 알게 모르게 이 책에 나온 와인들을 많이 마셔봐서일까. 이것도 나왔었네, 저것도 나왔었네? 하며 주인공들의 감상과 내 테이스팅 노트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신의 물방울>에 나온 와인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신의 물방울 34권] 샹파뉴 델라모뜨 브뤼 N.V & 샹파뉴 델라모뜨 블랑 드 블랑 N.V

Delamotte Brut Champagne Grand Cru N.V & Delamotte Blanc de Blancs Brut Champagne N.V

캠핑 가서 관자 감바스와 페어링 해본 델라모뜨 샴페인 블랑 드 블랑
브라이덜 샤워의 시작으로 딱 좋았던 델라모뜨 샴페인 브뤼


'살롱'의 형제 메종이죠. 역시 좋네.
'블랑 드 블랑'의 근사함이 유명한데,
이 캐주얼 샹파뉴도 아주 공들여 만들어서,
가격이 약 4천 엔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해요
- 34권 171쪽, 세라 -



세라가 시즈쿠에게 와인을 같이 먹자고 하며, 주문한 와인인 샹파뉴 델라모뜨 브뤼 N.V. 브뤼를 설명하면서 블랑 드 블랑의 설명도 곁들인다. 세라가 말했듯이 델라모뜨는 모회사가 로랑 페리에, 자매회사가 살롱인 샴페인 하우스로, 섬세하고 우아한 샴페인을 만드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델라모뜨 블랑 드 블랑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백포도, 즉 샤도네이 100%로 만든 샴페인이다. 마셨을 때의 첫 느낌은 '몹시 청량하다!'였다. 자몽의 시트러스 향과 산미가 잘 어우러지며, 피니쉬가 굉장히 깔끔하게 떨어지는 청량한 샴페인이었다. 피니쉬에 살짝 크림 향이 올라오는 것을 제외하면, 와인과 만나는 모든 포인트가 깔끔하고 청량했다. 캠핑에서 관자 감바스와 부르스게따와 페어링 해보았는데, 산미가 또렷하고 청량하여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렸다.


델라모뜨 브뤼는 샤도네이 50%, 피노 누아 30%, 그리고 피노 뫼니에 20%로 이루어진 샴페인이다. 적포도가 섞여서 그런지, 블랑 드 블랑보다 조금 더 크리미 한 느낌이 있다. 나는 확실히 아직까지는 블랑 드 블랑 보다는 적포도가 섞인 샴페인이 더 좋다. 크리미 한 이스트 향에 자몽의 시트러스 향, 그리고 또렷한 산미까지 더해져 정말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던 델라모뜨 브뤼. 세라의 말대로, 블랑 드 블랑도 좋지만 브뤼도 훌륭하고(나에겐 브뤼가 더 인상 깊었다), 또 이마트 장터 때 5만 원에 구입할 수 있어서 가격적으로도 우수했다. 세라의 말, 백번 맞다 마다.



 


[신의 물방울 21권] 샤또 르 푸이

Chateau Le Puy

스페인 돼지고기와 페어링 한 샤또 르 푸이 2006


어떤가? 아주 조용하고 우아한 와인이지?
- 도저히 2003년산 보르도 와인 같지가 않아요.
'샤토 르 푸이'의 포도밭은 400년간 한 번도 농약을 뿌린 적이 없어서, 꼭 숲 속에 있는 흙처럼 부드럽다네. 흙 속에 사는 미생물의 힘으로 밭이 끊임없이
경작되고 있기 때문이지. 흙이 살아 있는 거야.
샤토의 오너인 아모로 씨가 말하길, 이 살아 있는 밭에 심은 포도나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지하 70m까지 뿌리를 내린다는군.
- 21권 141쪽, 카와라게 부장 -



타이요 맥주의 와인사업부 부장 자리를 두고 카와라게 부장과 나카하라 부장이 와인을 선별하여 경쟁하는 장면에서 나온 샤또 르 퓌 2003년 빈티지 와인. 샤토 르 퓌는 약 400년 동안 유기농법을 고수하고 있는 내추럴 와인의 명가이다. 제초제 및 이산화황을 사용하지 않고, 달의 움직임에 따르는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사용한다. 그런 면모가 카와라게 부장의 설명에 잘 녹아들어 있다.


<신의 물방울>에는 밭이 구별되어 나오진 않고, 2003년 빈티지가 소개되었었다. 내가 마신 건 작년 회식 때 팀장님께서 선뜻 내어주신 샤또 르 퓌 바떼레미 2006년 빈티지. 마구간과 가죽, 그리고 나뭇잎 향기가 난다. 이 향기들과 뿌연 투명도가 내추럴 와인을 떠오르게 했는데, 역시나 내추럴 와인이었다. 산도가 꽤 있는데, 당도도 살짝 있어서 누룽지 같이 아주 잘 넘어간다. 보르도 우안의 와인으로 메를로 85%, 카베르네 쇼비뇽 15%의 비율로 블렌딩 되어, 더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아름다운 가넷 컬러가 과연 눈에 띈다.


카와라게 부장이 말한 것처럼 조용하고 우아한 와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대한 인간이 터치하지 않고 자연의 힘으로 빚어낸 위엄이 잘 드러나는 와인이었다.


 



[신의 물방울 31권] 앙드레 끌루에 브뤼 나뛰르 실버 N.V

Andre-Clouet Brut Nature Silver N.V

부산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회랑 앙끌 실버 마시기
750ml 보통 사이즈로도 1.5L 매그넘 사이즈로도 즐겨 본 앙드레 끌루에 나뛰르 실버


5천 엔 정도면 구입할 수 있지만, 본질은 그보다 몇 배의 가치가 있어요.
그랑 크뤼 밭의 피노 누아 100%로 만든 화이트 상파뉴. 소위 블랑 드 누아.
기포를 만들려고 병에 담아 2차 발효를 할 때 당분을 첨가하는
도사주 작업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맛이 극단적으로 드라이하지 않고 밸런스가 아주 좋아요.
생산자의 재능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만, 친밀함과 따스함은 느껴지지 않는,
쿨한 샹파뉴인 것은 확실합니다.
- 31권 129쪽, 잇세 -



잇세와 마키가 동침할 때 잇세가 준비한 샴페인 앙드레 끌루에 나뛰르 실버. 앙드레 끌루에 와인은 이마트 장터를 하면 항상 등장하는 와인으로, 눈에 익은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가격대도 이 나뛰르 실버나 그랑 리저브, 드림 빈티지의 경우 장터 때는 4~5만 원대에 구입할 수 있어서 굉장히 대중적으로 느껴지는 샴페인 하우스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이 나뛰르 브뤼는 잇세가 말한 것과 같이 별도의 당을 첨가하는 도사주 작업을 하지 않아 일반 브뤼보다도 더 드라이하게 느껴지곤 한다.


가격대가 만만하다 보니 샴페인 중 가장 많이 마신 축에 속하는데, 그러다 보니 테이스팅 노트도 때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가장 최근 마신 경험에 따르면, 아오리 사과, 아주 약간의 식빵 향이 스쳐 지나간다. 산미는 정말 최고. 그러나 피니쉬에 약간 탄산수 같이 맹맹한 구석이 있는데, 그 부분이 내가 좋아하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나뛰르 브뤼인 만큼 드라이하긴 하지만, 무겁지는 않다. 회와 한번, 돼지고기와 한번, 그리고 어복쟁반과 한번 페어링을 해보았는데 회와 가장 잘 어울렸다.


드라이한 느낌 때문에 호불호는 있겠지만, 잇세가 이야기한 것처럼 친밀함과 따스함은 느껴지지 않는, '쿨한' 샴페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신의 물방울 3권] 루이자도 샤블리

Louis Jadot Chablis

모둠회와 페어링 한 루이자도 샤블리 2017


이것저것 마셔보고 시험해본 결과, 샤블리에도 두 가지 타입이 있는 것 같아.
하나는 몹시 드라이하면서 샤블리의 특징인 미네랄이 두드러져.
또 하나는 사과와 복숭아, 파인애플, 서양배, 감귤류의 향과 과실 맛이 넘치는 듯한, 향이 풍부한 샤블리야. 생굴에 어울리는 건 전자인 드라이 타입 같아.
'루이 자도' 마을 단위 샤블리.
적어도 여기 늘어놓은 샤블리 중에서는 이 녀석이 최선의 선택이야.
- 3권 101쪽, 시즈쿠 -



아마 처음 <신의 물방울>을 읽으면, 가장 마셔보고 싶은 와인이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퀸의 노래가 들린다는 샤토 몽페라와, 굴이랑 가장 잘 어울린다는 루이 자도 마을 단위의 샤블리. 그래서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때, 루이 자도 샤블리 한 병을 사서 굴이랑 매칭을 해보고는 했었다. 루이 자도 역시 마트에서 굉장히 흔하게 보이는 와이너리로, 전 세계적으로 높은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시즈쿠의 설명과 같이 샤블리는 미네랄이 두드러지는 것과 과실 향이 넘쳐나는 샤블리가 있는데, 루이 자도 역시 마을 단위의 일반 샤블리와 함께 프리미에 크뤼, 그랑 크뤼 등의 라인업도 선보이고 있다. <신의 물방울>에서 이야기한 것은 마을 단위의 샤블리다.


시즈쿠는 2002년 빈티지를 마셨지만, 나는 2017년 빈티지를 마셔보았다. 입에 침을 고이게 만드는 시트러스 향과 산미, 그리고 미네랄리티가 풍부한 피니쉬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가끔씩 요구르트 같은 향도 느껴진다. 모둠회랑 매칭을 해보았는데, 캐주얼하게 마시기 좋았다. 3만 원대로 구매했던 것 같은데, 역시나 가성비가 최고다. 코스트코에서는 2만 원 후반대로도 구매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시즈쿠의 말에 완전히 공감하는 이유는, 이전에 알베르 비쇼 샤블리를 굴과 페어링해 본 적이 있었다. 마을 단위 급을 마셔보았을 때는 정말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 뒤에 '비싼 게 더 잘 어울리겠지'라는 마음으로 프리미에 크뤼를 매칭해 보았었다. 그런데 마을 단위급을 마셨을 때만큼 인상 깊진 않았었다. 그래서 시즈쿠의 말이 정말 공감이 된다. 굴이랑 매칭 할 땐, 최대한 미네랄리티가 특징적인 샤블리로 매칭 할 것.



 



[신의 물방울 28권] 틴토 페스케라 크리안자

Tinto Pesquera Crianza  

제주도 흑돼지 꼬치를 넣은 짜파게티와 페어링 한 페스케라 크리안자 2016


우유부단한 면은 있지만, 정말 필요할 때는 놀라운 집중력과 열정으로
확실하게 결과를 보여주는, 카케루 같은 와인.
- 마도카 씨, 이 와인은 '페스케라 틴토 크리안사' 2001년 산이에요.
오크통에서 18개월, 병에서 6개월, 도합 2년의 숙성을 거쳐…
마침내 세상에 나오죠.
- 28권 24쪽, 마도카 & 시즈쿠 -


카케루와 마도카는 오래된 연인. 카케루는 본인의 입지가 탄탄하지 못해 마도카에게 프러포즈를 못 하는 상황에서, 마도카는 집안의 등에 떠밀려 억지로 맞선을 가야 하는 위기에 처하는데. 그때 마도카에게 시즈쿠가 소개해주는 와인이 바로 페스케라 틴토 크리안자다. 2년의 숙성 기간을 거치는 이 와인을, 2년간 반지를 사고도 프러포즈를 하지 못 한 카케루에 비유한 것.


시즈쿠와 마도카는 2001년 빈티지를 마셨지만, 나는 2016 빈티지를 마셨다. 원래 제주도 흑돼지와 매칭 할 수 있는 레드 와인으로 샵에서 추천받아 구매했기 때문에 굉장히 찐찐한 맛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 예상은 맞았다. 브랜디가 들어간 초콜릿을 먹는 느낌. 초콜릿, 감초, 셰리주에서 나는 듯한 진하게 절인 듯한 과일의 향이 흘러나온다. 갈수록 산미가 진해지며 훅 들어오는 느낌이다. 정말 찐찐하다. 결국에는 흑돼지랑은 못 먹고, 흑돼지 꼬치가 들어간 짜파게티와 먹었는데 괜찮게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요즘 이마트에서 자주 보이는 이 와인은 4만 원 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사실 마도카가 표현한 '우유부단하지만 필요할 때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와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우유부단한 와인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카케루란 인물에 비유를 하느라 이렇게 비유를 한 것이겠지만. 하지만 그녀의 말과는 별개로 매력적인 와인인 것은 분명했다. 진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맞을 듯하고, 흑돼지나 혹은 스페인산 돼지고기와 잘 어울릴 느낌이다.


  



확실히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신의 물방울>을 읽을 때의 재미와, 어느 정도 와인을 경험해본 뒤에 읽을 때의 재미는 또 다른 것 같다. 다시 읽으니, 내가 마셨던 와인들이 나오니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달까.

갈수록 비싼 와인들만 나오고, 또 뒷면으로 나갈수록 국뽕에 취해 일본 와인이 줄기차게 나오지만, 그래도 와인에 대한 상식을 재밌게 쌓기에는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하다. 오늘은 비도 오니 신의 물방울에 나온 와인 한 병 마시고 시즈쿠나 잇세처럼 흐드러지게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친구와 혹은 연인과 표현 대결을 해 봐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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