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왕홍(网红): 인터넷(网络)에서 핫한(红) 사람(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网络红人(왕루어홍런)의 줄임말이다. 대개 인플루언서라고 부르며, 우리나라 개념으로 치면 인스타 인플루언서 같은 느낌이다.
2. 리지아치(李佳琦): 중국 왕홍 중 탑티어로 립스틱을 리뷰해주는 오빠로 유명하다. 엄청난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3. 웨이야(薇娅): 역시 중국 왕홍 중 탑티어 왕홍. 화장품과 패션 중심으로 활동한다.
4. 즐보(直播): 라이브 방송
중국 더마 스킨케어 브랜드 玉泽(Dr.Yu)
玉泽는 중국 최대 화장품 및 생활용품 기업인 상해가화(上海家化)가 2009년에 7번째로 출시한 자체 브랜드로서, 더마 스킨케어 카테고리의 브랜드이다.
"从医学角度寻求肌肤问题解决方案"
"의학적인 각도를 통해 피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하다"라는 브랜드 이념을 기반으로 국내외 저명한 피부과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과의 연합을 통해 제품을 개발하고 효능을 확보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브랜드 이름은 玉泽. 옥구슬 옥에 윤택할 택을 쓰며, 중국어로는 유ㅣ(오타 아님. 발음 시 입술을 닭똥집처럼 말아야 함) 즈어(빨리 하면 저인데, 조금 더 늘어지는 느낌)로 읽는다. 현지에서 닥터유(Dr.Yu)로 쓰이기보다는, 중국어 이름을 더 많이 쓰는 듯하다. Dr.Yu로 바이두 검색하면 잘 검색이 안 된다.
“如玉般盈润,富有光泽”
"옥반과 같이 윤기 있고, 광채가 풍부하다"는 의미의 구절에서 玉와 泽 두 글자를 따와 브랜드명이 되었다. 피부를 옥빛처럼 되돌려주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느 중국 로컬 더마 브랜드와 비슷하게 각 병원의 권위 있는 피부과 전문가들과의 공동 제품 개발, 일류 병원(루이진병원, 화산병원, 화서병원)과의 연계 실험을 통한 효능 보증, 식물에서 인체 피부 장벽의 지질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성분을 통해 피부 장벽 개선 효과 등을 소구하고 있다.
닥터유뿐만 아니라 여타 중국의 더마 스킨케어 브랜드들은 병원과 연계하는 방법을 많이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굴지의 해외 브랜드사만큼의 기술력이 안되다 보니 로컬 소비자들을 설득할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부과 전문가들과 공동 개발, 병원과의 연계, 약방 판매 등의 방법들로 RTB(Reason-to-Believe)를 보완하고 있다.
이런 무공해 브랜드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인사이트는 놀랍게도 바로 '왕홍 마케팅의 암'이다.
리지아치 즐보에 등장한 玉泽의 마스크팩
왜 너는 나를 만나서, 리지아치의 유혹
玉泽는 19년 광군절에 전년대비 150% 성장할 정도로 급속히 인기를 얻었다. 그 중심에는 리지아치가 있다. 작년 광군절 무렵, 이 브랜드는 처음으로 리지아치 즐보(라방)에 출연하게 된다.
"나는 여드름 피부인데, 매번 玉泽쓰고 나면 여드름이 바로 가라앉아요. 게다가 다시 나지 않음. 내가 프랑스 출장 갈 때도 매번 들고 다니는 팩이에요. 민감성 피부, 여드름 피부 여성분들 꼭 사세요. 양심 추천!"
리지아치의 지원사격을 받아 玉泽积雪草修护面膜 (마스크 팩)은 엄청난 바이럴을 일으켰고, 브랜드는 승승장구했다. 리지아치가 띄운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매 즐보에 玉泽가 포함되냐고 묻는 소비자 글들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올해 1월부터 618 프로모션 이전까지 리지아치 즐보에 玉泽는 무려 28번이나 등장하며, 명실상부 리지아치 픽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해당 마스크팩은 코로나가 터진 뒤 올해 2월 티몰 뷰티 1위에 등극하는 결실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618 프로모션 이후로 리지아치와 玉泽는 급격한 냉각기를 맞이한다. 7월 이후 玉泽의 리지아치 즐보 노출수는 0. 그리고 玉泽 브랜드에는 '리지아치를 배반한 브랜드'라는 오명이 써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玉泽는 618 기간에 리지아치와의 즐보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브랜드 점포에서도 즐보를 진행했다. 그런데 문제는 리지아치 즐보보다 브랜드 점포에서의 사은품 구성이 더 컸던 것. 내가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도 마찬가지지만, 매번 현지 마케팅팀에서 왕홍들과 협상을 할 때 구매 혜택(가격 할인, 구성품 등)을 최고치로 가져가려고 한다. 이번 광군절 때에도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의 대표 제품 가격이 왕홍과 협상한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본사 운영몰에 올라가 있어서, 즐보 직전까지 엄청난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아무래도 왕홍들은 자기 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것이니 본인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안전빵 요소가 필요했을 것인데(가격이 제일 저렴하거나, 혜택이 빵빵하면 소비자들이 그때를 놓치지 않을 것이므로),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 점포가 리지아치 즐보보다 더 많은 혜택을 가져간 것이다.
궁예를 해보자면, 玉泽는 이제 슬슬 브랜드 팬들을 玉泽 브랜드 관으로 옮기려고 했던 모양이다. 왕홍 라이브를 통해 판매하면 단기적인 매출은 발생하지만, 왕홍 수수료나 판촉비 등으로 인해 수익은 거의 0에 수렴하기에 브랜드에게는 골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玉泽팬의 대부분이 브랜드 골수팬이 아닌 리지아치의 팬, 즉 '玉泽팬 = 리지아치팬'이었던 것. 리지아치팬들은 이것은 玉泽의 배반이라 하며, 다 같이 영수증 발행을 요청했다. 우리나라에서의 영수증 발행은 늘 있는 보통의 일이지만, 중국은 기업이 국가에서 영수증을 따로 구매해서 발행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발행을 안 하면 세금을 덜 내는 셈. 그런데 팬들이 왕창 영수증 발행을 요구했으니 브랜드로서는 갑자기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난 것이다. 이건 사실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니까 뭐라 할 수는 없는데, 브랜드 고객 센터에서는 오히려 "느그 리지아치가 시키드나?"를 시전 하며 요단강을 건너고야 말았다(바이, 짜이찌엔)
등 돌린 팬이 안티보다 무섭다고, 이들은 그동안 玉泽가 야금야금 가격을 올린 것을 문제 삼으며, 이 가격에 살 가치가 없다고 악평을 올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9월 8일 리지아치와 玉泽는 각자 서로의 비즈니스가 종결되었다는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선언하였으나, 바로 다음 날인 9월 9일 玉泽가 리지아치의 경쟁 왕홍인 웨이야의 즐보에 등장하여 리지아치 팬들을 광분하게 했다.
샤오홍수에 올라온 리지아치와 玉泽의 갈등 포스팅
그에 대한 리지아치 팬들의 댓글
그 결과 올해 玉泽의 광군절 성과는 찾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玉泽는 1억 위엔 클럽에 들었다"라는 한 줄을 찾았을 뿐이다. 올해 광군절 중국 로컬 화장품 브랜드에서 1위를 차지한 더마 브랜드 위노나와 경쟁 브랜드로 소구 되었던 玉泽인데, 위노나가 약 7억 위엔을 판 것에 비하면 소박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왕홍 마케팅은 정말 명과 암이 분명하다. 특히나 玉泽와 같이 왕홍과 팬이 키웠다는 인식이 박힌 브랜드일수록 더욱 그렇다. 왕홍에 의해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질 수 있지만, 그만큼 왕홍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고객 센터 대응만 잘했어도, 팬들이 모두 돌아서는 이런 상황까진 안되었을 텐데 눈물의 유ㅣ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