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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Jul 09. 2020

음식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유튜브 실패기

버텨야 할 곳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 년 전이었다.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였고, 유튜버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보다 ‘한번 해 볼까?’ 고민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미 그곳에 자리를 잡은 1세대 유튜버들은 성공한 신인류가 되었다. 그들은 앞다투어 책을 출간하며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그곳은 마치 16세기 초반의 미국 같았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신대륙에 도착했던 개척자들처럼 수많은 새내기 유튜버들은 미래의 디즈니와 스타벅스를 꿈꾸며 채널을 개설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저 살아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린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된 ‘유튜브’라는 플랫폼과 ‘유튜버’라는 직업은 무척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곳에선 수많은 콘셉트와 소재들이 소비되고 있었고, 성공만 한다면 몇 년치 연봉을 한꺼번에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이었다. 난 즉시 채널을 개설했다. 남들에겐 ‘돈 벌려고 하는 건 아니야, 반복되는 일상에 활력소가 될 것 같아서 취미 삼아 하는 거야.’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나 역시 성공한 신인류를 꿈꾸며 21세기의 메이플라워호에 탑승했다.

     

 그 기회의 땅에서 내가 개설한 채널의 이름은 ‘식사 학자’였다. 식사를 연구하는 학자라는 의미였는데 채널의 콘셉트는 말 그대로 ‘먹방’과 ‘음식인문학’의 결합이었다. 난 무척 음식에 집착하는 사람이었고, 내가 유튜브를 한다면 당연히 음식과 관련된 콘텐츠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는 단연 ‘먹방’이었다. 구독자가 이백만을 상회하는 ‘벤쯔’나 ‘슈기’ 같은 유튜버들은 그저 음식을 앞에 두고 먹는다는 행위를 하며 인기 유튜버의 반열에 올랐다. 나도 대식가로 분류되는 편이었지만 그들의 식사량은 특별해 보였다. 도저히 그 정도의 양을 먹어치울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음식인문학’의 결합이었다. 틈만 나면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글 쓰는 셰프 박찬일의 저서를 탐독했던 내게 그 분야는 꽤나 자신 있는 것이었다. 꽤 참신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설레발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머릿속에선 이미 성공한 유튜버가 된 내가 자꾸 떠올랐다.

 그렇게 콘셉트를 정한 나는 곧장 첫 번째 영상의 제작에 착수했다. 제목은 ‘설렁탕과 곰탕 대체 뭐가 달라?’였다. 백 년 된 설렁탕집 이문 설농탕과 곰탕으로 유명한 하동관에 찾아가서 설렁탕과 곰탕을 먹으며 각각의 역사와 차이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영상이었다. 생전 처음 해본 영상 제작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각각의 식당에 찾아가서 촬영 허락을 받아야 했고, 전혀 유명하지 않은 일반인인 내가 카메라를 들고 가서 촬영하는 것을 주인 분들은 반기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많은 NG를 냈고, 재밌겠다며 도와주러 왔던 아내의 얼굴에도 짜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편집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 맘먹고 구입한 영상편집 프로그램을 붙들고 하루 종일 씨름한 뒤에야 겨우 첫 번째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조회 수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틀을 꼬박 투자했던 나는 힘이 빠졌다. 성공한 유튜버들의 저서에 왜 그리 ‘버틴다.’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스마트 폰을 가지고 누구나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대라곤 하지만 그저 ‘내 추억으로 저장되는 영상’과 ‘사람들이 봐줄 만한 영상’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였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품이 들어갔고,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 게 초보 유튜버가 처한 현실이었다.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유튜버의 일에서 그 부분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촬영과 편집에 들이는 시간은 내게 너무도 괴로웠다. 수익을 창출하는 조건에 도달하는 것조차 어려운 마당에 유튜브로 돈을 벌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음식 콘텐츠의 특성상 한 편 한 편에 들어가는 제작비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계속되는 적자와 무반응, 그리고 괴로움에 허덕이던 식사 학자 채널의 주인은 결국 열두 번째 영상을 끝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로부터 이 년이 지난 지금 유튜브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유튜버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더 적어졌다. 이미 레드오션이 된 그곳은 더 이상 그저 버티기만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식사 학자를 시작하던 시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먹방 유튜버 벤쯔와 슈기는 이미 그 왕좌를 내어 준지 오래다. 고작 이 년 만에 말이다. 그토록 빠르게 변하는 그 신대륙에서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내가 머물 자리는 애초부터 없었을지 모른다.

 직관적이고 빨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영상의 세계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여전히 음식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조금은 느리고 정적인 곳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영상을 만드는 것에 비해 조금은 고리타분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에 깜빡이는 커서가 주는 압박감과 무엇을 채워 넣을지 고민하는 설렘이 얽히는 순간을 사랑하는 나는 고리타분한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영상편집 프로그램의 첫 화면을 마주하는 것이 그토록 괴로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순간은 분명 행복하다.        


 커다란 성공을 꿈꾸며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당도했던 나는 그곳에서 초라하게 실패했다. 그리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한 이름 없는 배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어쩌면 그 배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돌아온 이들에게 ‘실패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버텨내지 못한 것이 꼭 우리의 탓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수많은 기회와 화려한 성공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곳에 어울리는 건 아닐 테니까.

 아직은 자리를 잡지 못한 유튜버도, 이것저것 끄적이며 아주 천천히 브런치에서 서른 명 남짓의 구독자를 모은 내게도 그리고 내 글을 읽어주는, 내가 읽고 있는 글을 쓰는 그 사람도. 아무런 보상이 없는 무언가를 하며 버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버텨야 할 곳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면 괴로운 법이지만 그 괴로움조차 즐거워야 버 낼 수 있다. 그래서 난 실패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진득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있어야 할 곳을 찾았다. 난 아직도 음식에 집착하는 중이고, 여전히 괴로우며, 아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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