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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Apr 23. 2020

끝에서 발견한 시작

 열여섯 살 때였다. 정상의 자리에서 돌연 은퇴했던 서태지가  <울트라맨이야>라는 하드코어 록음악을 들고 전격 컴백했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며 무언가 분출할 것을 찾아 헤매던 사춘기 소년에게  파괴적인 사운드와 강렬한 무대그야말로 컬처쇼크였다. 이렇게 멋진 게 있었다니! 그들에게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특히 기타를 길게 늘여매고 격렬하게 연주하던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내게 무대를 꿈꾸게 했다.

 무작정 학교 밴드부를 찾아가 날 밴드부에 넣어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기타를 치던 녀석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게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무슨 악기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서태지와 림프비즈킷의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를 치고 싶다'라고 하자 그는 조금 표정이 굳어진 듯했지만 다시 생글거리며 말했다. “우리 팀에 베이스 자리가 비어 있어.”

 베이스란 악기는 기타보다 조금 크고, 두 줄 모자란 네 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지도도 기타보다 떨어지는 데다 생긴 것도 비슷해 어머니는 오랫동안 내가 기타를 치는 줄 알았을 정도다. 군다나 저음을 담당하는 악기의 특성상 자세히 듣지 않으면 음악 안에서 베이스 소리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하여간 눈에 안 띄는 악기다. 당연히 기타나 피아노처럼 인기가 많지 않고, 그래서 베이시스트는 늘 부족하다.

 그는 나에게 '베이스를 배우겠다고 약속하면 밴드부에 넣어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베이스 연주자들의 시작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나 역시 베이스가 정확히 어떤 악기인지 몰랐고, 기타랑 비슷하게 생긴 것도 같으니 까짓 거 한번 해보지 싶었다.

 15년 넘게 이어질 질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베이스는 이렇게 생겼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한 베이스 연주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아예 본격적으로 학원에 등록해 체계적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생글생글 웃으며 날 베이스의 길로 인도했던 그 녀석은 약속을 지켰다. 난 베이시스트로 밴드부에 합류했다. 처음으로 악기를 매고 올라선 무대는 생각보다 훨씬 짜릿했다. 그저 멋져 보여서 시작했던 음악은 공부도 못하는 데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사춘기 소년에게 꿈을 꾸게 해 주었다.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했다. 프로가 되고 싶었고, 열심히만 하면 서태지, 아니 메탈리카나 콜드플레이만큼 세계적인 밴드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시를 앞두고 하루 여덟 시간씩 연습했다. 손가락이 갈라지고, 피가 나고, 그 상처가 아물어 굳은살이 배기기를 몇 차례, 베이스가 뭔지도 몰랐던 소년은 어느새 어엿한 음악 전공자가 되어있었다.

 어렵게 입시에 성공했지만 대학교의 이론 중심 적인 교육은 락스타를 꿈꾸는 내게 지루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무작정 홍대에 작업실부터 구했다. 커다란 남자 다섯 명이서 원룸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곡을 만들고 연습했다. 드디어 어린 시절부터 꿈꿔오던 진짜 밴드맨들의 세계가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어설펐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든 음악에 우리의 이야기로 가사를 붙여 사람들에게 들려준다는 건 무척 흥분되는 일이었다. 직접 클럽까지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 많지 않았고, 수입은 전무했다. 밴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선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지만 난 분명 가슴 뛰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밴드 '코어매거진'으로 활동하던 시절

 

 그리고 십 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세 개의 밴드를 거쳤고 네 장의 앨범을 냈으며 2012 EBS 헬로루키 대상을 비롯한 꽤 많은 상을 받았다. 물론 콜드플레이 같은 세계적인 밴드는 되지못했다. '더 이상 돈 따위는 상관없어'라며 패기 넘치게 음악 했던 스무 살의 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텅 빈 통장이 주는 초라함도 그랬지만 더 무서운 건 더 이상 음악이 즐겁지 않은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음악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다.

 두려웠다. 열여섯 살에 베이스를 잡으며 음악을 처음 시작하던 그 시절부터 음악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음악 말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이제 와서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너무나도 두려웠다. 결국 나는 음악도, 다른 무언가도 새로 시작하지 못한 채 세월만 보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녀는 내게 시작과 끝에 대해 말해주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반드시 끝이 나기 마련이지만 그 끝에서 발견하는 시작이 분명 있을 거라고 했다. 끝을 내지 못한 시작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내게 있는 또 다른 시작의 기회 또한 놓쳐버리고 말 것이라고. 그녀의 말에 용기를 얻은 나는 그렇게 15년 전의 시작에 마침표를 찍었다. '성공하지 못한 음악가'라는 꼬리표를 휘날리며 절망할 거라 생각했던 그 시작의 끝엔 작지만 남아있는 것들이 존재했다. 끝을 내기 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음악만큼이나 좋아했던 음식, 좋은 가사를 쓰고 싶어 꾸준히 읽어왔던 수많은 책, 덕분에 쓸 수 있었던 글들이 남아있었다.

 지금 나는 브런치에 음식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한두 편 쓰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재미도 있다.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처음으로 음악을 시작했던 그때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가슴 뛰는 하루하루를 꿈꾸고 있다.

 그렇게 난 시작의 끝에서 또 다른 시작을 발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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