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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Aug 27. 2020

돼지갈비는 그 이름만 남았다

 초등학생 시절, 주말이 되면 난 하루 종일 전화기 앞을 서성거렸다. 근처에 살았던 이모부는 가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호탕한 이모부의 목소리가 들리면 난 그때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전화의 내용은 일요일인데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것. 저녁 하기가 귀찮은 엄마와 주말 저녁 술 한잔이 고픈 아빠의 이해관계는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물론 그 저녁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나였다.

     

 오랜만에 모인 두 가족의 목적지는 대부분 갈빗집이었다. 대단히 축하하거나 기념할 일은 없었으니 돼지갈비였다. 소갈비는 너무 비쌌고, 누군가는 생선회를 먹지 못했다. 온 가족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국밥이나 백반은 무게감이 떨어졌다. 넓고 큼직하게 포를 뜬 갈비를 빨갛게 타오르는 숯불화로에 구워 먹는 돼지갈비는 분명 그 무게감을 가진 음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렴했다. 어른들의 소주 안주로도 훌륭하며 달달한 간장 양념의 맛은 아이들의 입에도 맞았다. 각종 밑반찬과 진한 시래깃국까지 한 그릇 내주니 가족 외식의 메뉴로 돼지갈비 이상의 것을 찾기는 어려웠다.

          

 우리나라에서 갈비라는 이름은 소갈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소고기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갈비를 최고로 쳤다. 소 한 마리에서도 얼마 나오지 않는 희소한 양은 양반들의 허영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신분을 과시하는 음식이기도 했던 소갈비는 그래서 무척 비싼 음식이었다. 소갈비의 위상은 그대로 근현대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소갈비 정도는 뜯어야 중산층’이라는 인식 속에 갈비라는 이름의 환상은 커져만 갔고, 그 환상은 돼지갈비라는 음식을 만들어 냈다. 소갈비 뜯기는 어려웠던 서민들의 음식, 시작은 그랬다. 돼지갈비는 취급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고급짐을 어필하던 몇몇 소갈비 집들은 결국 전 국민적인 돼지갈비의 인기에 굴복하며 슬그머니 메뉴판에 돼지갈비란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허영으로 시작된 음식은 함께하는 음식이 되었다.          


 2020년이 된 지금 돼지갈비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돼지고기는 여전히 가족 외식으로 인기 있는 메뉴지만 사람들은 갈비보다는 삼겹살을 찾는다. 예전엔 먹기 힘들었던 다양한 부위를 손쉽게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삼겹살의 양을 늘리기 위해 갈빗대에 붙어있는 살코기조차도 삼겹살에 붙여서 출하된다. 안 그래도 얼마 없던 갈빗살은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돼지갈비는 무한리필이라는 이름 정도는 달아야 관심을 끌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돼지 갈빗대는 폭립이나 등갈비란 이름으로 더 많이 소비된다. 돼지갈비는 이제 그 이름만 남아버렸다. 하지만 뭐 어떤가, 닭갈비에도 떡갈비에도 ‘갈비’는 들어가지 않는다. 예전에도 우리는 결국 갈비라는 이름이 주는 만족감과 행복감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돼지갈비는 삼겹살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뜨거운 불판을 가운데 두고 무언가를 ‘함께’ 구워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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