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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Oct 15. 2020

평양냉면 마니아의 절망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보고 싶어 하는 음식점이 있다. 그러나 그 음식점이 내 맘대로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결코 갈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단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곳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거나, 국내 최고 대기업의 총수쯤 된다면 그곳에 가 볼 수 있다. 너무 어려운 길인가? 그렇다면 예술과 대중문화계에서 스타가 되도록 하자.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예술적 재능을 가졌다면 당신은 대한민국 평양냉면 마니아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물론 잔잔한 화해무드가 흐르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누구나 먹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먹을 수 없는 북한의 옥류관 평양냉면 이야기다.

     

 실향민들의 소울푸드였던 평양냉면은 그야말로 그들의 음식이었다. 슴슴하다 못해 이 정도면 고기 빤 물이 아니냐고 빈정거리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미디어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면서 소수이던 평양냉면 마니아는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오랜 시간 평양냉면을 만들어왔던 우레옥이나 평양면옥 같은 냉면 노포들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근대사 그 자체인 그들의 이야기를 등에 업고 더욱더 주목받았다. 그렇게 알려진 음식이 되다 보니 평양냉면이란 음식에 대한 ‘말’들이 많아졌다. 육수가 슴슴하고 심심할수록 북에서 먹는 원조의 맛에 가깝다거나, 면에 메밀 함량이 높을수록 진짜다.라는 말을 비롯해 ‘평양냉면에 식초를 뿌려먹는 사람은 제대로 먹을 줄 모르는 거다.’ 라며 먹는 법에 대해 잘난 척하는 사람을 비꼬는 ‘면스플레인’이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평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만큼 그 수많은 말들에 대해서 정확히 확인해 줄 사람들은 없었고, 실향민들의 수십 년 전 기억과 새로운 평양냉면 마니아들의 수많은 카더라 통신들이 얽히고설켰다. 평양냉면만큼 많은 말들이 붙어있는 음식이 또 있는가 싶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평양냉면 판은 썰과 썰이 싸우는 ‘썰전’의 무대가 되었다.

       

 2018년, 오랜만에 흐르던 남북의 화해무드 속에서 남한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평양공연이 성사됐다. 가왕 조용필을 비롯해 탑 아이돌 레드벨벳, 백지영과 YB가 포함된 남측 예술단은 동평양대극장과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2회의 공연을 확정하고 평양으로 날아갔다. 13년 만에 열리는 북에서의 공연도 그랬지만 그만큼 관심을 끌었던 건 두 번째 공연에 앞서서 예정되어 있던 남측 예술단의 옥류관 방문이었다. 정 재계 고위급 인사들의 방북에서나 비밀리에 열어줬던 옥류관의 문을 남측 예술단에게도 열어준 것이다. 남한의 수많은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평소 sns로 활발히 소통하던 그들의 ‘옥류관 평양냉면 후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아무도 확인해주지 않았던 그 수많은 썰들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초밥의 원조가 궁금하면 일본에 가면 되고, 닭갈비가 궁금하면 춘천에 가면 된다. 그렇다면 평양냉면에 얽힌 수많은 썰의 정답은 평양에 있을 테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고라는 옥류관의 평양냉면은 그 지리한 썰전을 단박에 끝낼 수 있는 마스터피스였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옥류관 평양냉면의 모습이 공개되었을 때 나를 비롯한 수많은 평냉마니아들은 크게 당황했다. 맑디맑은 육수일 거라고 생각했던 옥류관의 냉면육수는 초콜릿색에 가까웠고 메밀 백 퍼센트가 아닐까 했던 면은 마치 칡냉면을 연상케 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평양의 맛일 거라 생각하며 우레옥에서 먹었던 메밀 백 퍼센트의 순면 가격은 만 오천 원이었다. 면이 뚝뚝 끊어져서 먹기가 힘들다는 아내의 말에 그게 진짜 평양냉면이라고 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제발 조용히 좀 먹을 수 없겠냐고 한마디 하고 싶다. 그렇게 멘탈이 산산이 부서진 평냉마니아들에게 옥류관의 주방장은 일격을 날린다. 

 “이 곳의 평양냉면은 메밀 40% 감자전분 60%로 면을 만듭니다. 소화를 돕고 색을 내기 위해 식소다를 넣기도 하죠. 육수에는 소고기를 쓰지 않습니다. 주로 꿩고기와 닭고기로 육수를 내죠.” 

 이 일격으로 남쪽의 평냉마니아들의 숨통이 끊어졌다. 우리가 먹었던 평양냉면은 결국 현지화된 것임을 평양의 최고 냉면집 주방장이 증명해주었다. 그동안 육수와 면에 대해 수없이 떠들었던, 어떤 냉면집이 북한의 진짜 평양냉면인지를 따지던 그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냉면은 본디 겨울에 먹는 음식이다. 겨울에 가장 맛있기 때문이 아니라 겨울에 밖에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 뜨거운 육수를 차갑게 식혀줄 얼음은 귀하디 귀한 것이었고, 일반인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겨울이 되어서야 시원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여름이라고 뜨거운 육수를 식히지 못할 일이 없는 지금도 냉면은 겨울이 제맛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진정한 냉면의 원류를 쫓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냉면집이 붐비지 않으니깐 좋아서 그런 것이다. 

 백 년 전에 그랬다고 해서 지금도 그럴 필요는 없다, 겨울에 냉면을 먹던 그들도 여건만 된다면 여름에 냉면을 먹고 싶었을 테다. 평양에서 팔고 있는 냉면이 그렇다고 해서 내일 당장 우레옥의 냉면이 그렇게 바뀌지도 않을 테다. 다만 옥류관의 냉면은 음식에서 ‘진짜’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를 보여주었다. 

 결국 서울의 수많은 냉면 집중에 ‘진짜 평양냉면’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맛으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평양냉면을 둘러싼 지리한 썰전은 이제 그 막을 내렸다. 실체가 없는 진짜가 아닌 각자의 가치를 즐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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