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다’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보통보다 더 자주 있거나 일어나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것이 음식일 경우라고 가정해보면, 내가 먹고자 할 때 대부분의 경우 쉽게 먹을 수 있거나, 굳이 그걸 먹기 위함은 아니었지만 어디 서나 볼 수 있다 보니 그냥 ‘저걸로 먹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을 지칭하는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범위를 좀 더 좁혀서 ‘회’라는 음식을 생각해 보면 어떤가? 가장 흔한 횟감을 말해달라고 하면, 아마 대한민국 사람 열에 아홉 정도는 제일 먼저 광어와 우럭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엔 연어나 참치 같은 횟감들도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소비량으로 따졌을 땐 광어와 우럭이 늘 맨 위에 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먹는 횟감이 아니라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횟감을 말해 달라 하면 과연 광어와 우럭이 높은 순위에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글에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지만 가장 맛있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생선 광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상차림에 광어처럼 잘 어울리는 회가 또 있을까?
광어는 가자미목 넙칫과에 속하는 어류다. 어쩌면 넙치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사람들도 있을 테다. 광어를 부르는 표준어는 원래 넙치가 맞다. 그러나 짜장면이 표준어가 된 것처럼 광어라는 이름을 워낙 광범위하게 쓰다 보니 지금은 광어도 표준어 대접을 받고 있다. 바다 밑바닥에 찰싹 달라붙어서 생활하다 보니 몸은 납작하고 넓적하다. 그래서 넓을 광(廣) 자에 물고기 어(魚) 자를 써서 광어다.
제철은 봄 산란기를 앞두고 영양분을 축적해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겨울이다. 우리나라에서 광어를 가장 많이 먹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양식의 대성공 때문인데, 지금은 워낙 양식 기술이 발달해 산란기나 제철이라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물론 자연산 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시 말해 광어는 양식의 성공으로 공급이 무척 안정적이기 때문에 흔하다. 그렇지만 양식 광어도 킬로 당 이만 원정도 가격이니 킬로 당 만 오천 원하는 우럭이나 킬로 당 만 원하는 숭어에 비해 비싼 편에 속한다. 사실 광어는 그렇게 흔해빠진 싸구려 생선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굉장히 고급 생선으로 대접받고 있고, 맛 또한 흰 살 생선 중에선 1,2위를 다툰다. 매운탕 재료로 더 빛나는 우럭과 횟감으로 경쟁한다면 광어의 자존심이 조금 상할 법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광어를 흔해빠진 생선으로 하대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 양식이 대성공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면 문제가 없다. 양식 생선이라고 모두 자연산보다 못한 시대가 아니다. 특히 광어처럼 양식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된 생선일 경우엔 더 그렇다. 그런데 워낙 많이 팔리다 보니 결국엔 가격 경쟁이 붙었다. 더 싸게 팔기 위해 아직 나오지 말아야 할, 다시 말해 맛과 크기를 위해 더 키워야 할 광어들을 기존의 것 들보다 싸게 출하했다. 킬로 당 가격을 따지는 수산 업자들에 비해 소비자들은 그냥 한 마리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점을 노려 언젠가부터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 ‘광어 한 마리 9900원’ 같은 홍보 문구로 저급 광어를 싸게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심지어 양식조 세척을 위해 저렴한 공업용 포르말린을 사용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늘 안정적인 수요가 있으니 양식 업자들이 많이 늘어났고, 그들 중 일부는 광어의 맛보다도 눈앞의 이익 만을 쫓아 저급 광어들을 출하시켰다. 그 맛없는 광어가 무척이나 싼 가격에 전국 어디 서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흔했다. 소비자들이야 그 광어가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 킬로 당 얼마 짜리 광어인지 알게 뭔가? 그냥 광어 한 마리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가격에 그 맛, 싸고 흔해빠진 것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을 것이다.
지금 새롭게 각광받는 생선들에게 영원할 것만 같던 광어의 왕좌가 위협받고 있다. 예전에 비해 많은 종류의 생선들이 신선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제 광어는 질린다는 대중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광어를 먹어봤던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제대로 된 광어는 9900원에 판매할 수 없다. 소비자들이 그보다 더 비싼 광어는 먹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결국 그것 또한 눈앞의 이익만을 쫓았던 악덕 업자들의 책임이다. 다만 광어가 별로 맛있는 생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흔했기에 대충 먹었던 그 생선은 흔하기 때문에 조금 더 자세히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9900원!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부산 여행을 갔을 때였다. 부산에 왔으니 회를 먹어야 한다는 조금 촌스럽지만 어쩌면 당연한 진리를 외치던 이모부의 주도로 광안리에 있는 민락 회 타운을 방문했다. 제철이어서 그런지 배가 하얗고 매끈한 3kg 이상의 자연산 대광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기에 이 정도면 진짜 보장된 맛이다 싶어 나섰다. 마치 유명한 일본 초밥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지금 이 곳에선 이 광어가 최곱니다’하고.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야 너는 여기까지 와서 광어를 먹자고 그러냐 광어는 서울에도 있잖아”라는 핀잔뿐이었다.‘이모부… 여기 있는 생선 중에 서울에 없는 거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난 예의 바른 조카이니 참았다. 사실 3.5kg 정도 되는 대광어 한 마리면 우리 가족 모두가 먹고도 남겠지만, 양이 얼마 안 되는 척하며 이모부를 설득했다.‘아 그러면 광어 이거 막상 손질하고 나면 얼마 안 되니까 이거 한 마리 제가 사고 이모부가 한 마리 더 골라주세요’그래도 조카 놈이 사 준다니 이모부는 맘에 들어하는 눈치셨지만, 광어라는 이름에 다른 가족들은 뭔가 심드렁해 보였다. 그러나 이모부 말대로 여기까지 와서 중국산 농어만 먹고 싶지는 않았다.
결과는 광안대교 야경을 바라보며 회에 소주 한잔 하시고 기분 좋아 지신 이모부의 한마디로 전달하겠다.
“야 이거 흔해빠진 광어도 부산에 와서 우리 가족들하고 먹으니까 맛이 엄청나구먼!”
뭐… 흔하게 하는 이야기지만, 다시 보면 그래서 맞는 말이다. 음식은 어디에서 누구와 먹느냐도 무척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