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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엔떡국 Sep 11. 2024

공주: 문화와 예술의 정직한 도시화

  여행도 개인마다 스타일이 다르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어떤 여행 스타일을 가지고 계신가요? 하루 다섯 끼는 기본이고 웨이팅도 마다하지 않는 맛집 투어, 여행의 완성은 쇼핑이라고 말하는 백화점 투어,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파묻히는 힐링 투어, 유명 관광지 또는 핫 플레이스 찾아서 인증샷 남기는 실속 투어, 역사와 문화를 즐기며 과거와 현재를 드나드는 역사 투어.


  저는 역사 투어를 가장 좋아하는 듯해요. 고작 이십 대지만 꽤나 고지식하고 감성적인 면이 있어서 어딜가든 유적지나 박물관을 우선으로 들르곤 해요. 함께 여정을 떠나는 연인이 저를 보고는 역사학자 같다고 하더라고요. 비록 지식은 없지만 순수하게 역사를 사랑한다는 뜻에서 말이죠. 사실 저는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제 행동과 생각에서 이미 티가 나나 봅니다.


  어찌 됐든 몇 편이 될지 모르는 소박한 기행문을 앞으로 조금씩 풀어볼 예정인데, 51%의 자유로운 일정과 49%의 역사 투어를 섞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소개를 펼쳐 보겠습니다. 아마 저와 비슷하게 남몰래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 꽤 많다고 느끼는데요, 너무 과하지 않은 적당한 역사 투어를 함께 동행하고 감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쪽에는 논산과 부여가 그리고 북쪽에는 아산과 천안이 위치한 공주는 전라북도일까요 충청남도일까요? 정답이 너무 쉬웠나요.(웃음) 바보 같지만 사실 저는 이번 여름까지만 해도 공주가 전라도에 위치한 줄 알았습니다. 이번 여름휴가로 놀러 간 공주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었죠. 아... 여기 충청도였구나!


충청남도 공주시

  제가 이곳에 여행 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공주가 역사의 도시라는 별칭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기에 이것 또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역사의 도시라고 꼽히는 세 곳이 경주와 부여 그리고 공주라고 생각합니다. 위 세 지역이 역사적으로 더 가치가 있다기 보단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점에서 남몰래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께 적극 추천합니다.



백제무령왕릉연문

  공주에 와서 다행히도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연문광장입니다. 사실 공주 가볼 만한 곳을 찾아보면서 이런  기념문과 동상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곧이어 소개할 공산성을 가던 중 바로 옆에 위치한 장엄한 기념물들을 보면서 공주가 왜 역사의 도시라 불리는지 벌써부터 실감이 나게 해 준 장소입니다. 공주에 잔뜩 기대를 품고 여행 오신 분들은 웅장한 이 공간을 바라보며 산뜻한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하면 배로 좋을 것 같습니다.


  동상은 무령왕을 본떠 만든 기념물인데요, 단순히 동상이라고만 생각한 조형물에 알고 보니 특별한 장치가 숨어 있었습니다.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사진만 보고도 이미 알아차리셨을 것 같은데요. 힌트는 '회전교차로'입니다. 전국 최초로 회전형으로 세워진 무령왕 동상은 무령왕이 바라보는 방향마다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서쪽을 바라볼 때는 무령왕릉이 있고, 북쪽을 바라볼 때는 갱위강국(更爲强國: 백제가 고구려를 여러 번 격파하여 마침내 다시 강국이 되었다고 선언)을 선포한 대왕의 위엄이 서려 있으며, 남쪽을 바라볼 때는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군주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정한 날마다 무령왕 동상 회전식을 진행한다고 하니 운이 좋으면 특별한 경험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공산성 입구

  공주에서 꼭 들러야 할 곳 하나만을 꼽는다면 저는 공산성이라고 생각해요. 2015년 7월 따뜻한 여름과 함께공산성과 무령왕릉과 왕릉원 등 백제유적 8곳이'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중국과의 교류를 기초로 백제의 독창적인 문화를 이룩하고, 이를 일본 등 주변국가에 전하여 고대 동아시아 문화번영에 기여한 점이 높게 평가되어 세계인의 유산이 된 곳 중 하나입니다.


공산성 뒷모습과 위에서 내려다 본 시내 모습

  그럼에도 특히 공산성을 추천하는 이유는 '현재와 과거의 공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산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을 따라 쌓인 성벽과 그 앞을 꾸리는 현재의 갖갖의 상점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며 자세한 정보와 여러 유물들을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도 좋지만, 이곳 공산성과 같이 과거 백성들이 실제로 삶을 살던 옛 터전에 방문하는 것은 전혀 다른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의 의미에 맞게 자연과 어우러져 한껏 사진도 찍고 유적지에서의 뜻깊은 추억도 남길 수 있어 누구나 좋아할만한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3,000원으로 무령왕릉과 석장리유적까지 방문할 계획이라면 통합권(6,000원)으로 표를 구매하고 지참하시면 구입 다음날까지 사용이 가능합니다.



무령왕릉과 왕릉원 입구와 진묘수 기념물

  다음은 공주 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유적지, 무령왕릉과 왕릉원입니다. 이곳을 소개하기 앞서 무령왕릉과 왕릉원 입구에 위치한 웅진백제역사관을 먼저 들르게 되는데요. 웅진백제역사관은 백제의 웅진 수도 시기에 대한 박물관입니다. 길지 않은 전시구간과 공주 방문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공간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으니 여유가 된다면 잠시 쉬어갈 겸 들러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웅진백제역사관을 통해 올라가면 금방 무령왕릉과 왕릉원 입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산상에서 이미 통합권을 구매하셨다면 표를 따로 구매하지 않고 지참한 표를 매표소에 보여드리면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보도에는 무덤을 수호하는 진묘수가 길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귀엽게 생긴 상상의 동물이 무덤을 지키고 있다니 현대인의 시선에서는 재밌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전시관 입구와 무령왕릉 고분 내부

  드디어 무령왕릉 전시관 입구입니다. 왕릉을 관람한 경험이 꽤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무덤에 들어간다는 행위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만약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 안에 들어와 관람하는 걸 본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전시관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어린이 크기 정도의 작은 입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 엉성한 자세로 입구를 통과하고 나니 교과서에서 많이 본 벽돌무덤이 나옵니다. 전시관 안에는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 5호 그리고 6호 총 3기의 고분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현재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은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본떠 만든 모형이라고 합니다. 모형이라고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관람한 저는 철저히 속은 채로 넋 놓고 관람했을 정도로 자연스러웠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으로 가는 길목과 경치

  무령왕릉 전시관 다음으로 방문할 코스는 대망의 국립공주박물관입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국립공주박물관은 가는 숲과 산의 경계선쯤 위치한 길목을 따라 걷다 보면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옆에 위치한 백제오감체험관에서 오감 체험과 소품 구경을 하며 간략하게 머리를 환기시킬 수 있는 코스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바로 옆에는 궁도장이 위치하여 경기장을 따라 펼쳐진 드넓은 잔디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 입구와 정약용 선생의 ⎡여유당전서⎦ 부분

  국립공주박물관은 공간이 널찍하여 굉장히 쾌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주었던 공간입니다. 공산성에서 웅진백제역사관 그리고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거치면서 보고 배웠던 것들을 전체적으로 다시 감상해 보는 코스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주관적인 감상으로는 다른 전시관에 비해 더 웅장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백제의 섬세한 귀금속 공예 기술이 담긴 여러 유물들을 보면서 백제야말로 예술가의 도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배우고 난 뒤, 어느 국가가 강성했고 정복을 잘했는지도 중요하지만 일찍이 이러한 기술과 예술을 지녔다는 것에 더 자부심을 가지게 되네요. 또 흥미로웠던 건 조선 후기 주요 위인이자 천재라 불리는 정약용 선생께선 삼한 중 백제가 가장 강했고 문화가 발달했다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삼한의 역사 중 먼저 몰락한 백제가 가장 선진국이었다니, 정약용 선생의 짧지만 흥미로운 평론이었습니다.



구 공주읍사무소 전경

  다음날이 되어 떠나기 전 조금이나마 공주를 더 기억하고 싶어 방문한 구 공주읍사무소입니다. 1923년 개관된 이곳은 현재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입니다. 문화재청의 지정 사유에 따르면 건축물 전면에 서양의 고전 양식을 새롭게 해석하였고 2층 벽돌조 근대 양식 건축물로서 현재 원형이 잘 간직되어 있어 건축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양식의 건물로 한 번쯤 방문해 보셔서 직접 눈으로 담아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공주시 대통1길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길목들

  구 공주읍사무소를 지나 남쪽으로 5분 정도 걷다 보면 작은 골목길과 오래된 주택들이 조화를 이루는 소박한 풍경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길거리 모습을 사진에 온전히 담지 못했지만, 이 순간 느낀 감정들은 여전히 밝게 빛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를 회상하니 공주와 백제는 예술을 화려한 작품으로 표현하기보단 일상과 같은 소박함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라고 해석한 것 같았습니다. 한 마디로 공주는 진정 예술가의 도시라고 느낀 여정이었습니다.



베어루트 전경(shop.bearroute 공식 인스타에서 옮겨온 사진입니다)

  이곳을 지나 5분 정도 더 걷다 보면 베어루트라는 작은 소품샵이 나옵니다. 여행을 가면 꼭 지역의 소품샵을 들르곤 하는데요. 이곳은 일반적인 소품샵과 달리 공주에 오면 꼭 들러볼 만한 소품샵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공주의 특별한 전경을 찍어 멋있게 꾸며놓은 포스터였습니다. 보통의 소품샵에서는 외국의 아름다운 호수나 지하철 또는 랜드마크의 포스터를 판매하여 관광객 입장에선 그리 흥미롭지 않은 소품들이 많았습니다. 베어루트는 젊고 선하신 사장님께서 설명하시길, 공주의 곳곳을 멋진 포스터로 판매하여 관광객에게 자연스럽게 공주를 알리는 계기도 되고 소품을 간직하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줄 수 있어 기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소품샵을 좋아한다고 말하니 근처 타 소품샵까지 직접 소개해주셔서 이곳 베어루트를 마지막으로 공주에서 긍정적이고 특별한 기운을 가득 받아가는 듯했습니다. 직접 찍은 사진이 없어 베어루트 계정을 통해 사진을 소개합니다만, 광고도 전혀 아니고 깎아내리려는 것도 아니니 사장님께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나름 알차게 보낸 공주에서의 여행이었습니다. 석장리박물관이라던가 메타세콰이어길 그리고 관풍정에서의 궁도 체험 등 여건 상 들러보지 못한 곳이 남아 다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위 코스에 대해서는 숙소행을 제외하고는 버스로 이동하여 자차가 없으신 분께도 적극 추천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아서였는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데 있어서 전혀 불편함을 느껴보지 못한 여정이었습니다.

  공주의 명물 밤파이는 제빵의 도시 대전인으로서 정말 맛있게 먹은 음식 중 하나였습니다. 밤의 고소함과 은은한 단맛이 빵과 어우러져 더 돋보이는 진한 맛을 안겨주었습니다. 일정 중 식사는 짬뽕과 해물파전과 김피탕과 소갈비 찜을 먹었는데 전체적으로 간이 심심한 편이었습니다. 물론 제 입맛에 따른 평가라는 걸 인지해주시길 바랍니다. 신기하게도 심심한 맛과 함께 재료가 신선하다는 느낌도 일관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건강한 음식을 먹은 것 같아 여정에 있어서는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백제의 아름다운 문화가 이어져 오는 듯한, 일상 속에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주. 삶의 여유와 소박한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이곳 공주에 잠시 들러보시는 건 어떨까요? 대단하게 신나진 않더라도, 진득한 행복을 느끼게 될 겁니다.


2024. 9. 11.

- 공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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