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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덮어둔 시, 내가 만든 나무

기억을 깎고, 하루를 다듬는 일에 대하여

by 설날엔떡국

여지껏 나를 진지한 태도로 이끌었던 선택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괴로움, 낯섦, 외로움 그리고 설렘.

매번 행복한 기억으로 남진 않았지만, 돌아보면 꼭 행복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삶에서 전해지는 격동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준비된 자의 태도일 테니까.


가끔은 선택 자체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피어난다.

선택은 책임을 수반하고 책임은 선택이 가능했으니, 나는 오랫동안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 애써 불을 지폈다.

만약 그때의 나에게 흡족했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최악의 선택이었다"라고 고백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반성했다.

앞으로는 깊게 고민하지 않기로,

책임을 멀리 두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는 올바른 결정을 하겠다는 완벽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실수를 허용하며, 그 안에서 분노와 실망을 기꺼이 견디겠다는 나의 관철한 의지이다.


덕분에 심란한 밤을 보낼 때도 많았다.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돛단배를 보며 슬그머니 비웃던,

그 선장들의 목소리는 어느 천둥소리보다 쓰라렸다.


하지만 바다를 가르다 못해 물속 깊이 가라앉더라도,

가슴 깊이 바다를 집어삼키겠다는 마음으로

덧대고 덧댄 갑판은 어느새 단단한 땅이 되었다.

그렇게 책임은 나를 가두는 족쇄가 아니라

나를 이끄는 자유의 섬이 되었다.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사유와 멀어진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문득, 반년 전의 내가 또 하나의 선택을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마도 나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해 겨울, 나의 전부를 나눌 수 있었던 가족이자, 동생이자, 각별한 벗이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시집을 덮어 두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시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세상 어딘가에 떠돌아도 좋다며 믿었지만,

그것은 어느 순간, 나에게 큰 짐이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한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정작 나조차 그 시에서 아무런 위로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그만두게 만들었다.

마치 인생이 망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를 보며 하루를 살아가는 가족들,

깊은 유대로 서로를 버티게 해주는 친구들,

나에게 착실하고 선하다 말해주는 지인들에게는 유감스럽지만

나는 여태까지 잘못된 선택을 반복해 왔다고 뉘우쳤다.

또다시 외로움의 연속이었고,

이 기억 역시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위태롭게 떠 있는 돛단배는 격동의 파도를 마주쳤고,

상황을 수습하고 나니 잃어버린 것들이 꽤 많았다.

그렇게, 보물이라 여겼던 것들을 한껏 쏟아낸 배는 다시 가벼워졌다.


지금 나는 목공을 배우고 있다.

가구를 설계하고 제작하며 훈련받는 중이지만,

이와 관련된 어떤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몇 년 뒤 공방을 열지, 어떤 컨셉의 가구를 만들지, 얼마나 오래 할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 내가 선택하고 배우고 있는 이 시간이,

산뜻한 바람처럼 찾아온 소중한 기회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한다는 건 역시나 어렵다.

특히 기술과 창작이 만나는 이 영역은, 초보자에게 큰 장벽이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내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소소하지만, 어쩌면 특별할 수 있는 이 순간들.

훈련의 끝자락에서,

그 시간을 기록하고자 조심스럽게 짧은 글을 발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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