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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엔떡국 Feb 09. 2023

시인이 되고 싶었다

가난하지만, 누구보다 여유롭고 풍유한 삶


시인이 되고 싶었다.

먼저 누군가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외로운 밤공기에 울림을 주는 그런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한낱 작은 생명체가 갈망한 커다란 소망이었으니 무엇보다 완전하고 각별해야 했다. 그렇기에 남몰래 조용히 시를 써 내려갔다. 희망이 가득했기에 열망과 기대감은 꺼지지 않았으며 그렇게 나의 공책은 너덜 해져 갔다.


나의 시는 성숙하면서도 모나야 했기에, 주관적인 시상이 주관적이지 않도록 극히 애를 썼다. 누구나 겪고 느꼈을 법한 걱정이 나만의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외롭고 쓸쓸했다. 나의 청춘을 항상 부정했기에 가끔은 칭찬도 위로도 받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지은 시를 다시 읽으며 조금이나마 감명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나의 시는 일기에 가까웠다. 비우려고 할수록 채워지는 추억들처럼 사실 나의 순간들이 새겨지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그저 형편이 없어서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4년 간 지은 일기장은 시집이 되지 못하고 추억이 되었다. 결코 쉬운 포기란 없다. 모든 것이 운명이며 허상인 삶에서 스스로 '멈춤'을 선택한다는 것에는 분명 큰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그 끝에도 계속 미련이 남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꽤나 진심이었고 열중했었던 것 같다.




많은 시를 읽으며 시 이상의 것을 보고 배우려 노력했다. 서점에 베스트셀러로 오른 유명한 시집들을 읽고, 도서관 구석에 숨어있는 시집들을 읽으며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만의 시에 대해 공부했다. 우선 내가 느낀 점은 '시라는 것이 참 어렵다'이다. 어렵다는 게 단순히 문장∙문단 구조와 어려운 단어로 인하여 이해가 어렵다는 것도 있지만 나에겐 너무나 공감이 되지 않는 글들이 꽤 많았다. 당연히 나의 경험이나 내력 부족일 수 있지만 다양한 시를 읽어보며 공부를 하는 나조차도 공감이 되지 않는데 이 글이 과연 진정성 있는 시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한 요즘 추세인데 자유로운 형식으로 짓는 시의 특성을 살려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 위주의 시들이 많아졌다. 사실 그 이상으로 서점에 들러 아무 시집이나 펼쳐보면 열에 아홉은 이러한 시집이다. 내가 상업적인 눈이 없거나 아니면 진정성 마저 느끼지 못하는 시인일 수 있지만 아무리 봐도 이걸 읽으며 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라는 장르의 폭이 넓어진 것은 좋지만 이에 따라 장르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詩란 가벼워선 안되지만 과한 것도 맞지 않고 따라서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글을 늘여 쓰는 게 아닌 간결하게 전달하는, 곧 울림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러한 푸념은 '보다 깊은 울림을 주고 싶다는 열망이 남아서겠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시인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한 사람에게 전하는 시'와 '대중에게 전하는 시'에 대한 갈등이 생겨서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누군가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는 게 나의 포부였는데, 무엇보다 일반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아픔을 위로하고 싶었다. 내가 선택하고 꿈꿨던 것은 한 사람만을 위해서라도 시를 짓는 시인이었다. 가난하지만 누구보다 여유롭고 풍유한 삶을 살고 싶었다.


우리 모두가 시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한 편의 시로 끝이 아니라 한 달 뒤에 다시 한 편, 또 일 년 뒤에 다시 한 편. 시는 일기와 비슷할 수 있지만 보다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준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시에 담긴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면의 이야기는 사진을 통해 그 시절로 돌아가 당시의 속마음을 끄집어낼 수 없다. 그래서 시는 오늘만이 쓸 수 있는 일기와 같다.




비록 씁쓸한 맛이 담긴 이야기였지만 헛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배우고 느낀 것은 많았으며, 예나 지금이나 또 먼 훗날에도 저에겐 모두 가치 있는 시이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을 해봤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전 단락에서 시를 쓰면 좋은 점에 대해 짧게나마 적어봤는데 이 글을 계기로 한번 시작해 보면 보다 성숙한 마음을 갖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사막>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막

               -오스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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