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친구와 아늑한 밤
얕은 빗소리에도 곧장 잠을 깨던 나날에 요즘 침대에 눕는 일이 망설여졌다. 차갑고 정적인 겨울철 온도와 습도 때문인가 포근했던 이 자리가 자꾸만 어색하게 느껴진다. 겨울이 다가오면 유독 공허한 마음이 커진다. 하지만 마음 구석에 빈자리가 생겨 공허한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마음에 공백을 채워 넣는 것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
당근의 수확시기는 7월~11월 중순이다. 떨어진 당근을 뒤로하고 스스로에게 채찍을 휘두른다. '잘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 괜찮을까' 여러 고민과 의심은 끝없이 앞을 가린다. 마땅한 해결책도, 훤히 보이는 미래도 없지만 의심의 회초리는 끊이질 않는다. 그렇게 마음속을 비집어 뜬구름을 채워 넣는다.
허한 마음 때문인지 연신 집에 무언가를 채워 넣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벽지에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 걸어놓고, 창문틀에 작은 수납바구니 꽂아 놓고, 구석에 있는 스피커를 꺼내 듣지 않던 재즈 음악을 채워 넣었다. 엊그제 밤엔 뜬눈으로 잠을 설치다 거실 선반장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 있는 TV를 업고서도 남는 옆쪽 빈 공간들이 휑해 보였다. 마침 공기도 텁텁하다고 느낀 터라 공기 정화 식물을 사다 놓으면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제 우연히 도서관에 갈 일이 생겨 어떤 책을 읽을지 구경하다 공기 정화 식물에 관한 도감을 발견했다. 대충 흘겨보아도 맘에 쏙 들어 정신없이 읽느라고 제목을 까먹었다. 식물이 자라나는 모형, 잎의 질감, 색상, 화분의 모형을 기준으로 식물을 소개하며 인테리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관철하는 내용이었다. 식물은 숨겨진 힘이 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한다. 행복한 마음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곧장 근처 꽃집을 알아봤다.
만두와 산초
집에는 '만두'라는 호기심 많은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고양이에게 해로운 식물을 추리느라 여러 후보의 식물을 놓쳤다. '몬스테라'와 '홍콩야자'를 뒤로하고 '문샤인'과 '산초'라는 두 선택지를 고민했다. 줄기부터 잎까지 일체형의 모습을 띠고 있는 문샤인은 줄기 부분에는 하얀 연두색빛이 돌고 잎 부분은 초록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소인 파와 비슷하게 생겼다. 또한 조그맣고 조용하게 생긴 모습에 내가 키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산초는 이파리를 떼서 심어놓은 것처럼, 한 그루의 나무 같지만 앙증맞은 생김새를 갖고 있다. 잎 하나하나는 더 작은 데다 윤기가 있어 인조 식물처럼 보였다. 작지만 큰 한 줄기의 이파리와 작지만 거대한 나무 사이 열심히 고민한 결과, 산초를 집에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이파리가 연약해서 두 손 받쳐 드는 게 나을 거라는 꽃집 사장님의 말씀에 조심히 집까지 모셔왔다. 우선 적당한 곳에 올려두어 사진 몇 장을 찍고 잠시 한눈을 팔던 중 만두의 기다란 꼬리 끝에 산초의 작은 잎들이 떨어져 나갔다. 방금 전까지 아기 돌보듯 소중히 데려온 우리 산초가 눈앞에서 떨어져 정말 깜짝 놀라 당장 산초를 격리시켰다. 고양이에게 해롭진 않지만 식물을 해하는 고양이라니..
10일~14일 후 잎이 쳐지는데 이때가 바로 물을 달라는 신호이다.
오늘 물을 줬기 때문에 열흘 정도 지켜보고 물을 주면 된다고 하셨다. 식물을 집에 데려오면 따로 이름을 지어준다. 재작년 본가에 데려온 작은 알로에는 '송중기'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 당시 '빈센조'라는 드라마를 정말 재밌게 봤고, 송중기 배우에게 큰 매력을 느껴 빠졌기 때문에 좋은 의미가 담겨있다. 게임 닉네임을 생성하거나 나만의 무언가를 지을 때 항상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만큼 설렘도 느낀다. 이번엔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알렉산더'와 '쏘니' 둘 중 고민하다 결국 쏘니를 선택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쏘니의 주인공 '손흥민' 선수를 정말 좋아하고 짧지만 나의 작년 11월, 12월을 책임져줬기 때문에 특별히 손흥민 선수의 애칭을 선사했다.
꽃을 제외한 식물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희망사항이 있다면 더 큰 집에 살게 될 때 작더라도 나만의 정원이 있었으면 한다. 작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식물들에게 주기에 맞게 물을 주며 아침을 보내는 상상을 하면, 매일 아침이 설레어 침대에 눕는 일이 기대될 것만 같다. 그렇지만 많고 적은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우선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쏘니가 무럭무럭 자라서 더 큰 화분에 분갈이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나의 잠을 책임져줄 든든한 친구가 생겨 아늑한 밤이다.
- 임인년, 계묘년도 'Sonny'
든든한 친구와 아늑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