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더위
‘더위’를 뜻하는 영어단어는 ‘hot’이다.
그러나 둘이 같다고 말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더위라고 하면 뜨거운 빛과 기(氣)의 흐름이 가득 찬 상태가 떠오르는데 hot 은 뜨거움, 그 온도만을 뜻하기에 그렇다. 이 때, hot에 걸맞은 번역은 ‘열’일 것이다.
더위가 명사임에도 상태를 말하고, hot이 형용사임에도 존재를 말하는 역설은 동양과 서양의 다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 예로, 한의학에는 이열치열, 열에는 열로 상대한다는 개념이 있다. 바깥이 더울 땐 몸의 열이 피부로 몰리게 되고 상대적으로 체내는 차가워지기 때문에, 뜨거운 음식을 먹어줌으로써 체내의 냉한 기운을 달래준다는 원리이다. 즉, 열과 냉을 하나로 보고, ‘더움’이라는 드러난 현상보다는 그 이면의 인과 관계를 해석하고 불균형을 조절하여 상생하려는 동양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하지만 서양의학은 이것을 비과학적이라 한다. 체내에 지나치게 열이 몰리면 탈진과 열사병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 이유인데, ‘열’ 자체에 주목하고 객관적인 관찰을 중시하는 서양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어떤 것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놓여있는 관계(context)를 보는 시야가 필요하고, 그것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전자에서 얻어지는 것이 인과에 대한 해석이라면 후자에서 얻어지는 것은 현상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철학과 과학의 출발점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존재가 있어야만 관계가 생기고, 관계에 놓여야 비로소 존재도 의미가 생기듯이 둘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는 없다. 동양적이거나 서양적이거나 결국 같은 것을 다른 각도에서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요새 한국의 날씨는 이례적인 폭염이라고 한다. 이곳은 반대로 한겨울로 치닺고 있다. 서울과 시드니,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계절에도 불구하고 가끔 동시에 비가 오는 식으로 날씨가 겹친다.
그런 기분 좋은 우연이 생길 때면 나는 지구라는 작은 공을 감싸고 있는 한 쌍의 손이 떠오른다. 두 손 모아 지구를 손에 담고 호오오 숨결을 불어 넣는 가이아의 손. 숨결이 닿는 곳은 뜨겁고 닿지 않는 곳은 춥지만 결국 하나의 숨결로 이어지고 있는 공간. 더위와 hot사이에 놓여있는 그 빈 공간에 결국 진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