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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라제 Aug 06. 2021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

오브라제의 예쁜공포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브라제 입니다.



*오늘은 잔혹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하니, 비위가 약하신 분들께서는 감상하시는데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 하면 가장 먼저 누가 떠오르시나요?


대부분 영국의 ‘잭 더리퍼’를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 사건의 안타까운 점은, 살인마를 잡지 못해서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죠. 그런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 살인마를 왜, ‘잭 더리퍼’라고 부르게 된 것일까요?



Jack The Ripper의 단어를 살펴보면, Jack은 당시 영국에서 흔하게 불리던 이름이기도 하고, 이름을 알 수 없거나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사람을 지칭할 때도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고, Ripper는 외과 수술용 칼로 난도질했던 그의 살인방법을 따서, ‘찢다, 찢는 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불린 이름만 보아도, 끔찍한 살인마였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가 범행을 저질렀던 시기는 빅토리아 시대 말기로, 런던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화이트채플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곳은 빈민촌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모여살았던 곳이었는데, 강도와 폭행은 일상이었고, 살인사건도 여러 번 일어났을 정도로, 모든 범죄들이 모여있는 지역이었습니다.


(*화이트 채플 : 영국 런던 타워햄리츠 자치구에 위치한 동네로, 런던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해있다. 현재는 아시아 이민자들이 많이 살도 있는 지역이다. - 나무위키 참고)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노동자들의 대우는 최악이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했습니다. 성인 남자들도 대우가 좋지 않았는데, 그보다 더 약자인 여자와 어린아이들의 상황은 더욱 처참했습니다. 사용하다 버려질 소모품처럼 쓰이는 것은 물론, 남자들보다 더 일하고 돈은 더 적게 받는 일도 *비일비재했죠.


(*비일비재 :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따라서 수없이 많다는 뜻이지요. 이와 비슷한 말로 ‘무수(無數) 하다’란 말이 있습니다. 글자 뜻은 ‘수가 없다’인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지식백과 참고)


매일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도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 150만 원 정도였기에, 당시 여성들이 먹고살기에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렇게 벼랑까지 몰린 그녀들은, 부족한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길거리에 나가서 자신의 몸을 팔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던 그녀들에게는 신의 기도가 통하지 않았던 것이었을까요?


잭 더리퍼는 매춘을 하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여 연쇄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매춘부의 특성상 손님과 둘이 있는 시간이 많고, 주로 어두운 장소나 밤에 활동을 한다는 점, 그리고 보호자가 없는 약자였다는 점에서 살인 대상이 되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화이트채플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는 총 11명으로,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이 중에 잭 더 리퍼의 희생자는 메리 앤 니콜스, 애니 채프먼,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 캐서린 애도스, 메리 제인 켈리, 5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이들은 '이 사건들 모두 살인마 잭이 일으킨 것이다.' 라고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나머지 6명은 살인 방식이 다르거나, 범인을 찾았기 때문에 제외가 되었죠.


그럼, 잭 더 리퍼가 저지른 5번의 연쇄 살인사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888년 8월 31일 새벽에, 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이 됩니다. 목에는 졸린 자국과 함께 날카로운 것에 찔린 상처가 있었는데, 그 상처는 배에도 남아있었습니다. 그녀가 바로 살인마 잭의 첫 번째 희생자였던 메리 앤 니콜스였죠.


하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살인마를 찾기 힘들기도 하였고, 사건 담당자의 한심한 일처리에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게 됩니다. 그 후로 살인마 잭은 점점 더 대범해지는데요,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나고 열흘도 되지 않은 9월 8일 새벽에, 애니 채프먼이라는 또 다른 희생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시신의 상태는 이전보다 더 끔찍했습니다. 내장을 적출하여 시신의 어깨에 올려놓은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죠. 그 시점에 신문사 앞으로  편지 한통이 도착하는데, 내용은 정말 공포스러웠습니다.

번역 출처 - 나무위키


이 소식이 알려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그를 ‘살인마 잭’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경찰들은 장난 편지라 생각하고 웃어넘기죠. 그런데... 범행 이틀 뒤에, 편지에 쓰여있는 대로 귀가 잘린 여성의 시체가 발견이 되면서 다시 한번 영국은 발칵 뒤집어집니다. 경찰들은 그제서야 심각성을 느껴, 혹시 모를 목격자를 위해, 편지를 공개하지만 목격자는커녕, 편지를 사칭을 하는 이들만 나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이 해결이 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세 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날은 9월 30일,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이번에는 시신 두 구가 비슷한 시간에 발견되었는데,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는 어두운 저녁에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던 곳이었고, 사건 당시에는 경찰도 순찰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살인마 잭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곳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유유히 빠져나간 것이죠.


서너 번째 희생자들의 상태도 목에 칼이 찔려 있거나, 신장이 꺼내져 있는 등 잔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곧이어 조지 러스크라는 화이트채플의 감시위원장에게도 편지가 도착을 하는데, 그 안에는 사람의 신장 일부가 함께 들어있었습니다.



이 역시, 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살인마 잭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지자, 사람들은 밤에 밖에 나가는 것은 꺼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담당자와 경찰들은 이것저것 시도만 하고 결과는 하나도 이루어 내지 못했고, 그들이 어영부영할 사이, 다섯 번째 희생자가 나오게 됩니다.


이번 사건은 역대 살인방법 중에서도 가장 최악이었습니다. 시신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모두 뜯겨져 있었고, 가슴은 잘려나가 있었으며, 심장은 없어져 찾을 수도 없었고, 장기들은 모두 몸 밖으로 나와, 방 전체에 뿌려져 있었습니다.


끔찍한 연쇄살인이 연달아 일어나자, 당시 여왕이었던 빅토리아는, 범인을 반드시 잡으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경찰들은 결국 명령을 지키지 못했고,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받게 됩니다.


이 사건의 몇 가지 비슷한 부분을 찾아보면, 희생자들 중, 살해당하기 직전에 사냥용 모자를 쓴 20대 후반의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증언과, 시신 대부분에 목이 졸린 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 위에서 언급을 했듯이 수술용 칼을 사용을 하였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몬터규 존 드루이트’, 어릴 적 트라우마가 있었다던 ‘월터 시콧’,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인 ‘앨버트 왕자’, 사기꾼인 ‘프랜시스 텀블티’, 자신이 잭 더리퍼라고 우겼던 사형수 ‘토머스 닐 크림’, 여성의 임신과  분만을 도와주고 간호하는 조산사인 ‘질 더 리퍼’등이 범인으로 거론이 되었지만 찬반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잭 더리퍼의 사건은 다섯 번째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에 잭 더리퍼를 따라 하는 모방범들이 많이 져서, 살인사건은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 모두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은 경각심을 가지게 되면서, 노력 끝에 범죄수사 분야가 발전하게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복지들도 생겨나게 됩니다.



*화이트채플 연쇄살인사건 : 1888년 ~ 1891년 (11명 / 모방범죄 제외)

*잭 더 리퍼 연쇄살인이라 알려진 시기 : 1888년 8월 7일 ~ 11월 10일 (5명)

잭 더 리퍼의 사건은 총 5건이라고 알려있지만, 화이트채플 사건은 대부분 미제이고, 당시 사건파일은 진작에 사라졌기 때문에, 여전히 화이트채플 사건은 잭 더 리퍼가 일으킨 것이다. 라는 의견과, 아니다. 살인방법이 다르니 다른 이일 것이다. 라는 갑론을박이 남아있어서 잭 더 리퍼 사건 기간을 1888년 ~ 1891년 전체라고 칭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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