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라제의 예쁜공포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브라제 입니다.
오늘을 영국의 대표 관광지이자,역사적인 장소인 “런던탑 (공식 명칭 : Her Majesty's Royal Palace and Fortress, 줄여서 “더 타워 The Tower라고 불림.) ” 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런던 탑 안에있는 화이트 타워)
런던탑은 1988년 유네스코에 등재 될 정도로 유서깊은 장소이죠. 탑이라고 불려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 할 수 도 있지만, 원래는 11세기에 *윌리엄 1세가 머무는 궁전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왠만한 성의 모습을 갖추었고, 적군의 침입을 막기위한 요새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윌리엄 1세 ('정복왕 윌리엄' 이라고도 불림.): 원래는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이었으나, 노르만 정복을 통해 잉글랜드 왕국의 왕이 된 인물로 노르만 왕조의 창시자이다. 이후부터 몇 차례 왕조가 바뀌는 등 변화는 있었지만 현재까지 영국의 왕은 조금이나마 윌리엄 1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런데 리처드 1세 때부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는데요, 내정을 관리하고 있던 윌리엄 롱챔프에 의해 하나씩 탑과 벽을 늘려가기 시작합니다. 헨리 3세, 에드워드 1세 때도, 성벽을 쌓아 올리고, 건물을 더 짓는 등, 확장공사를 이어서 하게 되면서, 우리가 알고있는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 됩니다.
런던탑은 17세기인 1603년까지 500년간 왕궁으로 사용을 하였으며,(주로 왕궁으로 사용을 하였지만, 신분이 높은 죄인들을 유폐시키거나 처형을 하는 곳으로도 쓰였습니다.) 후 세대의 왕들은 자신들의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계속해서 런던탑을 왕권을 대표하는 곳으로 여겼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옥의 기능으로 많이 사용을 하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곳에서 사망했던 인물들을 알려드리면,
헨리 6세 : 1421년 ~ 1471년 / 향년 : 49세
(잉글랜드 왕, 헨리 5세와 프랑스 공주(샤를6세 딸) 카트린의 아들, 장미전쟁 중 에드워드 4세에 의해 런던 탑에 감금되지만, 9년동안 세력을 키워 (왕비 앙주 마거릿의 공이 큼.) 자신의 왕관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복위된지 6개월만에 다시 런던탑에 감금이 되었고 그곳에서 (에드워드 4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단단한 둔기에 머리를 맞아 살해당한다 . (감금&살해)
조지 플랜태저넷 : 1449년 ~ 1478년 / 항년 : 28세
잉글랜드의 왕족.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자, 리처드 3세의 형이다. 형 에드워드 4세가 헨리 6세를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자, 그도 왕의 동생이란 신분으로 공작 작위를 받게된다. 처음에는 에드워드 4세와의 관계가 좋았지만, 장인이 형과 사이가 나빠진 후,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는 것을 알고, 계획에 동참을 하게된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면서 가족들과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장인의 마음속에 자신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는 형인 에드워드 4세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와 계속 대립을 하다가, 결국 럽던탑에 감금 되었고 반역죄로 처형을 당한다. (처형)
에드워드 5세 : 1470년 ~ 1483년(추정) / 향년 12세(추정)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장남. 에드워드 4세의 사망 후, 아들인 에드워드 5세가 12살 나이로 즉위하게 되자, 작은아버지인 글로스터 공작(훗날 리처드 3세)이 섭정을 하였다. 이후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글로스터 공작 사이에 세력다툼이 일어나는데, 결국 글로스터 공작의 승리로 끝났고, 당시 의회에서도, 에드워드 4세가 우드빌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약혼한 이가 있었기 때문에 중혼 이라는 이유로, 둘의 혼인을 무효화 시켰다. 그로인해 에드워드 5세와 동생인 요크공작이 사생아가 되어 작위를 잃게 되자, 다음 계승권을 가진 글로스터 공작이 왕위에 오른 뒤, 조카들을 런던 탑에 가두었고, 그 후 이들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1674년, 탑의 계단을 공사 하던 중, 유골들을 발견하는데, 이것이 에드워드 5세와 요크공작 일 것이라 추측하여, 찰스 2세의 명령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 하였다. 아직까지 이 유골들이 정말 에드워드 5세와 요크공작이 맞는 것인지, 그들의 정확한 사망원인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리처드 3세가 죽였을 거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 1933년, 유골을 검사 하였으나, 이들과 비슷한 또래라는 것만 밝혀지고, 성별구분도 하지 않는 등, 재대로 된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에 재검사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감금&살해[추정])
마가렛 폴 : 1473년 ~ 1541년
솔즈베리 백작부인자, 아라곤 캐서린 왕비의 충성스런 신하 였으며, 메리공주(훗날 *메리 1세)의 가정교사였다. 헨리 8세가 앤 불린과 결혼을 하기 위해, 왕비와 이혼하려는 것을, 아들인 레지널드 추기경과 함께 반대 하였으며, 왕비가 쫓겨난 뒤, 메리가 공주 신분을 박탈당하고 사생아가 되자, 반발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홀로남은 어린 메리를 돌보려 했지만, 헨리 8세가 이를 막았고, 결국 종교적인 문제와 사적인 감정으로 인해, 헨리 8세의 눈 밖에 나서, 반역죄로 런던 탑에서 2년동안 수감 되었다가 처형 당했다. (처형)
토머스 모어 : 1478년 ~ 1535년
잉글랜드 헨리 8세 시대의 법률가이자 정치가. 헨리 8세의 전속비서가 된 후, 그의 신임을 얻게 된다. 런던의 민선행정관 대리로 일을 하고, 판관으로서의 역활도 잘 이행하여 사람들의 환호를 받게 되었고, 계속 승승장구하여 재상(대법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헨리 8세가 첫번째 왕비와 혼인 무효하고, 앤 불린(두번째 왕비)과 결혼을 하기 위한 과정에서 심한 의견충돌을 보여, 결국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헨리 8세와 앤 불린(두번째 왕비)의 결혼식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물론, 그녀의 자식이 왕위계승권을 받는 것 또한 반대하였다. 이로인해 토머스 모어는 런던탑에 감금되었고, 반역죄로 처형 당한다. (처형)
토머스 크롬웰 : 1485년 ~ 1540년
영국의 정치가로, 젊었을적 이탈리아로 넘어가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영국으로 돌아와 법률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헨리 8세의 신임을 얻어 (첫번째 왕비와의 이혼을 돕거나나, 두번째 왕비 처형에 앞장서는 등 왕의 비위를 잘 맞췄다.) 비서장관과 주교 총대리를 지내며 어마어마한 권력을 쥐게 되지만 세번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가 사망 후, 클레페 왕녀인 앤을 왕비로 추천 했으나, 헨리 8세는 초상화와 실물이 너무 다른 것에 분노를 하였고, 이 틈을 노린 적들이 그의 죄들을 고발하자, 런던탑에 감금 되었고, 헨리 8세에 의해 잔혹하게 처형당한다.(처형)
앤 불린 : 1501년 & 1507년 ~ 1536년 / 향년 28세 & 35세
잉글랜드 왕비.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친모이다. 첫번째 왕비인 아라곤 캐서린의 시녀로 있다가 헨리 8세의 눈에 들게 된다. 헨리 8세는 그녀에게 자신의 정부가 되어달라고 하지만, 정식 결혼이 아니면 싫다고 거절한다. 왕은 나이가 있는 왕비에게서 더이상 왕자를 보기 힘들거라 생각해서, 하루빨리 사랑하는 앤 불린과 결혼을 하여, 적법한 후계자인 아들을 낳고 싶었기에, 교황에게 혼인무효를 요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종교개혁을 이루어 일방적으로 이혼을 하여 왕비를 쫓아낸 뒤, 앤 불린을 새로운 왕비로 맞이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이외에 모두 유산되거나 사산되자, 둘은 사이가 멀어졌고, 결국 남동생과 근친상간 죄를 뒤집어 씌워 런던탑에 감금시킨 후 처형한다. (원래는 화형을 하려 했으나 헨리 8세가 참수형으로 바꾸었다는 일화가 있다.) (처형)
캐서린 하워드 : 1523년 ~ 1542년 / 향년 18세
잉글랜드 왕비. 헨리 8세의 다섯번째 왕비이자, 두번째 왕비 앤 불린과 사촌 사이이다. 네번째 왕비인 클래페 앤의 시녀로 있다가 왕의 눈에 띄었다. 그녀가 왕비가 되었던 17세때 헨리 8세는 49살로, 30살이 넘게 차이났고, 장녀인 메리 보다도 어렸다. 그런데 어느날, 익명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그 속에는 결혼 전 왕비의 자유로웠던 남자관계에 대한 제보가 있어서 캐서린과 남자들을 체포해 추궁하니 사실이었고, 헨리 8세의 직속 시종인 토머스 컬페퍼와 불륜사실까지 들켜, 런던탑에서 처형당한다. (원래는 화형으로 집행해야 하나, 왕비였기에 참수형으로 바꾸었다는 일화가 있다.) (처형)
로치포드 부인 : 불명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인 앤 불린의 올케 (앤 불린 남동생(조지 불린)의 부인)이자 세번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와 다섯번째 왕비인 캐서린 하워드의 시녀이다. 앤 불린과 자신의 남편인 조지 불린이 근친상간을 저질렀다고 증언하여 둘의 처형을 조장하기도 하였으며, 다섯번째 왕비인 캐서린 하워드와 왕의 시종인 토머스 컬페퍼의 불륜을 도와, 런던탑에 감금되었다. 그곳에서 고문은 받지 않았지만 공포심에 미쳐버린다. (당시 영국 법상 정신이상자는 처형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연기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헨리8세는 정신이상자도 죄를 물 수 있도록 법을 바꾸어 처형하였다. (처형)
제인 그레이 : 1536년&1537년 ~ 1554년 / 향년 15세&16세
잉글랜드 여왕. 헨리 8세 여동생의 외손녀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녀는 부모의 욕심으로 인해 강제로 결혼을 하는 것은 물론, 본인은 원하지 않았던 여왕의 자리를 억지로 (헨리8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6세의 뒤를 이어) 오른다 . 하지만, 당시 백성들의 지지와 환호를 받았던 메리 1세에 의해 9일만에 폐위 당하였고, (그로인해 9일의 여왕 이라고 불림.) 런던탑에 감금 되었다. 메리 1세는 그녀를 불쌍히 여겨, 살려주려고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성공회 신자들이 일으킨 반란에 가담하자, 신하들은 계승권을 가진 제인 그레이를 죽여야한다고 말했고, 메리 1세는 마지막 기회로 카톨릭으로 개종하면 살려 주겠다고 했으나, 독실한 성공회 신자였던 그녀는 거절하여, 끝내 처형되었다. (처형)
로버트 데버루 : 1566년 ~ 1601년
에식스 백작, 잉글랜드 귀족이자 군인. 아일랜드 진압의 총독으로 임명이 되지만, 결국 실패한다. 이에, 불공정한 조약을 체결할 위기에 처하자, 무책임하게 영국으로 도망쳐 온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엘리자베스 1세는 매우 격노하여, 그를 관직에서 파직 하였다. 로버트 데버루는 정신을 못 차리고 반란을 일으키다 붙잡혀, 런던탑에 감금 된 후 처형당한다. (처형)
아르벨라 스튜어트 : 1575년 ~ 1615년 / 향년 39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조카이자,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먼친척으로 당시 왕위 계승서열 4위였다. 어릴적 부모를 잃은 그녀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나중에 윌리엄 시모어와 사랑에 빠져 비밀리에 결혼을 하지만, 결국 제임스 1세에게 들켰고, 그는 허락없이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아르벨라 스튜어트는 자택연금을, 월리엄 시모어는 런던탑에 가두었다. (당시 이들의 결혼이 왕위에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녀는 남장을 하고 몰래 탈출하였지만, 결국 제임스 1세 에게 붙잡혀 런던탑에 유폐되었고, 그 이후로 다시는 남편을 만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음식을 먹는것을 거부하다가 병사한다. (감금 중 사망)
월터 롤리 : 1552년 ~ 1618년
잉글랜드의 정치가, 군인, 탐험가, 작가, 시인이다.엘리자베스 1세가 행차하던 도중, 진흑탕으로 인해 그녀의 발이 더러워 질까봐 자신의 망토를 벗어 바닥에 깔았던 일과, 아일랜드 반란 진압, 신세계 식민지 개척 등의 업적으로 엘리자베스 1세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지만, 여왕의 허락없이 그녀의 시녀와 몰래 결혼을 한 것이 들통나, 런던 탑에 잠시동안 수감되었다. 제임스 1세 시절에는 음모에 휘말려, 반역죄로 또다시 런던탑에 감금 되었고, 13년이 지나서야 석방이 되었지만, 후에, 그의 부하가 함부로 스페인을 공격 했던 일로 인해, 처형당한다. (처형)
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삶이 참으로 파란만장 하였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이렇게 피바람이 불었던 곳인만큼, 영국에서 유령이 가장 많이 출몰 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런던 탑의 안쪽 성벽에는 13개의 탑이, 바깥 성벽에는 8개의 탑이 있으며, 총 21개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탑의 수가 많은 만큼, 유령들이 출몰하는 장소도 각기 다릅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유령인 앤 불린은, 주로 *화이트 타워와, 처형 당했던 *타워그린, 그리고 시신이 안치된 예배당에서, 자신의 머리를 들고 다니거나, 목이 없는 마부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나타난다고 합니다. 일설에 따르면, 1864년 보초를 서던 병사가, 하얀 형체의 머리 없는 여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놀라, 총을 발사 하였지만, 총알들이 여자의 몸을 그대로 통과 하자, 기절 하였는데, 다음날 다른 병사들에게 근무 도중 잠을 잤다는 오해를 받아, 직무 유기죄로 군법회의에 회부 되었지만, 그날 밤 근처 창문에서 모든것을 지켜보았던 목격자의 증언으로 인해, 다행히 징계를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후로도 많은 이들에게 목격 되었죠.
제인 그레이 또한, 타워그린에서 처형당하고 예배당에 안치 되서 그런지, 앤 불린과 같은 곳에서 목격되고 있고, 그녀의 남편인 길퍼드 더글리도 유령으로 나타나, 수감되었던 *뷰챔프 타워 감옥 안에서 쭈그려 앉아, 밤새도록 흐느끼고 있으며, 아르벨라 스튜어트는 자신의 생을 마감했던 *퀸즈 하우스에서 떠돌아 다닌다고 합니다. 참고로, 앤 불린, 캐서린 하워드, 제인 그레이는 자신들이 재위 시절 머물렀던, 햄프턴 코드 궁전 에서도 출몰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나중에 햄프턴 궁전의 유령이야기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타워그린에서 찢어질듯한 비명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것은 마가렛 폴 일 것 입니다. 그녀의 처형은 정말 끔찍하고 엉망이었는데요, 당시 처형수가 무릎을 꿇으라고 하였지만, 마가렛 폴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도끼를 들어올렸고, 놀란 그녀는 도망을 쳤지만, 처형수는 쫒아다니며, 그녀가 죽을때까지 도끼로 계속 내리 쳤습니다.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들려오는 그녀의 비명소리는 처참하기 그지 없었고, 그녀의 머리, 목, 어께 부분이 으깨져서,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조차도 보기가 괴로울 정도 였다고 합니다. 억울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죽음 이었기 때문 일까요? 그때 울려퍼졌던 울음섞인 비명소리는 아직도 그곳에서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드워드 5세와 요크공작도, 리처드 3세에 의해 감금되었던 *블러디 타워나, 유골이 발견되었던 화이트 타워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5세기 후반에, 경비병이 타워를 지키고 있는 도중, 10살 전후로 보이는 형제가 손을 맞잡고 서 있다가 블러디 타워 벽 속으로 사라졌다는 내용이 있으며, 여전히 그곳에서는, 킥킥 거리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함께, 잠옷차림의 어린 소년들이 겁에 질린채로 붙어있는 모습이나, 복도를 헤메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블러디 타워에서 오랫동안 수감 되었던 월터 롤리도 그 주위를 배회하고 있고, *웨이크 필드 타워에서 감금, 살해 되었던 헨리 6세도, 자신의 기일이 되면,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나타났다가 쓸쓸히 사라지는 등, 많은 혼령들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떠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서운 유령 뿐만 아니라, 귀여운 장난을 치는 유령도 있다는데요, 화이트 타워에 있는 정체불명의 혼령이 간혹 관광객들의 어깨를 두들기며 놀래키곤 하는데, 막상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없거나, 하얀 형체가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유령을 화이트 레이디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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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1세 : 1516년 ~ 1558년 / 향년 42세
잉글랜드 여왕. 헨리 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헨리 8세의 첫번째 왕비이자 스페인 왕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이복언니이다. 본명은 메리 튜더(Mary Tudor)이다. 어머니가 왕궁에서 쫒겨난 후, 공주 신분에서 박탈돼, 사생아가 되었다. 그 후 헨리 8세의 압력으로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돌아가신 후에도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 그로인해 두번째 왕비인 앤불린과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메리가 앤 불린을 새 왕비로 인정하지 않자, 갓 태어난 엘리자베스의 시녀로 삼아 기저귀를 갈게 하는 등의 치욕을 주었으며, 그녀를 시종과 결혼 시키려는 계획도 세웠었다.)
훗날 여섯번째 왕비인 캐서린 파에 의해, 공주 신분을 되찾게 되었고, 아버지가 사망을 한 후, 이복동생인 에드워드 6세(헨리 8세의 세번째 왕비의 아들)가 즉위를 했지만, 노섬벌랜드 공작(제인 그레이의 시아버지)의 입김으로 인해, 에드워드 6세는 후계자를 제인 그레이로 지명을 하였고, 16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당연히 잉글랜드 법 상, 왕위 계승권 1위인 메리가 이어받아야 하나, 그녀의 5촌 조카인 제인 그레이가 즉위하게 되니 분노를 한다. 당시 메리를 지지하는 귀족들과 백성들은 많았으나 제인 그레이를 옹호하는 세력은 약해, 결국 제인 그레이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재위기간 동안 로마 가톨릭 복고정책으로 개신교와 성공회를 탄압하여 블러디 메리(Bloody Mary, 피의 메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엘리자베스 1세 : 1533년 ~ 1603년 / 향년 69세
잉글랜드 여왕. 헨리 8세와 두번째 왕비인 앤 불린의 딸이자, 영국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장본인이며, 처녀 왕으로 유명하다. 어머니가 처형 당했을 당시, 나이가 3살 정도 였으며, 이복 언니인 메리와 마찬가지로 공주 신분을 박탈당하고 사생아가 된다. 훗날에 여섯번째 왕비인 캐서린 파에 의해 복위되며, 자식이 없었던 메리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에드워드 6세 :1537년 ~ 1533년 / 향년 16세
잉글랜드 왕. 헨리 8세와 세번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의 아들이자,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이복 남동생이다. 왕비는 그를 낳고 산욕열로 사망했지만, 헨리 8세의 유일한 적통 아들이었고, 40대 후반에 낳은 늦둥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많은 사랑과 애정을 받고 자랐다. 즉위 했을 때의 나이가 9살이라, 외삼촌인 에드워드 시모어가 대신 섭정을 하였다. 에드워드 6세의 병세가 심해지자 후계자를 정해야 했는데, 노섬벌랜드 공작의 꼬득임으로 인해, 카톨릭 신자였던 메리 누나가 여왕이 되면, 카톨릭이 다시 부흥 할 것을 우려했고, 둘째 누나인 엘리자베스는 성공회 신자였으나, 친모가 간통죄로 처형 당했다는 것과, 자신의 둘째 외삼촌인 *토마스 시모어와 추문이 있었던 일로인해, 후계에서 제외 한다. 같은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고, 한때 자신과 혼담이 오갔던 성공회 신자인 제인 그레이를 후계자로 정한 뒤, 16살의 나이로 병사한다.
*성공회 : 개신교의 한 파. 영국 교회의 전통과 조직을 같이하는 교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성공회의 개혁은 헨리 8세와 아라곤 캐서린 왕비의 결혼무효소송으로 시작되었다. 교황 클레멘트 7세가 이 소송을 거절하자, 헨리 8세는 의회를 소집하여 1534년 국왕지상법(國王至上法) 을 발표한 데 이어, 1536년 로마의 감독권을 폐지하는 법령을 발표하였다. (국어사전, 지식백과 참고)
*엘리자베스 1세와 와 토머스 시모어의 추문 : 토머스 시모어는 헨리 8세의 세번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의 둘째 오빠이다. 여섯번째 왕비인 캐서린 파는 헨리 8세가 사망한 후, 그와 재혼하면서, 자신의 양딸인 엘리자베스도 함께 데려간다. 그런데, 토마스 시모어는 유부남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게 되면, 왕위와 가까워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여, 부인이 데려온 양딸이자, 14살 밖에 안된 어린 소녀에게 꼬리를 치기 시작한다. 캐서린 파는 이 사실을 알게된 후, 엘리자베스의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화이트 타워
런던 탑 안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며, 헨리 3세가 벽을 모두 하얀색으로 칠해버린 후부터, “화이트 타워” 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계단 공사를 하다가, 에드워드 5세와 요크공작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하였습니다. (현재는 갑옷이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뷰챔프 타워
에드워드 1세에 의해 1275년에서 1281년 사이에 지어진 곳으로, 원래는 방어용으로 만들어진 곳이나, 나중에는 아예 감옥으로 사용이 되었으며, 이곳의 첫 수감자였던 워릭 백작 토마스 뷰챔프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라 합니다. 제인 그레이의 남편인 길퍼드 더들리와, 로치포드 부인등이 이곳에 감금 되었으며, 뷰챔프 타워 벽면에는 당시 수감 되었던 사람들의 낙서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블러디 타워
헨리 3세의 통치 기간 동안 1220년대 초에 지어진 곳으로, 원래는 가든 타워로 불렸지만, 에드워드 5세와 요크공작 사건 이후부터 블러디 타워 라고 불렸으며, 월터 롤리가 13년간 수감 되었던 곳 입니다.
*웨이크 필드 타워
1460년 장미전쟁 당시, 웨이크 필드 전투에서 랭커스터 군이 승리하고 요크 군을 투옥시킨 것을 유래로 붙여진 이름이며, 헨리 6세가 마지막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패배한 후, 감금&살해 당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왕비인 앙주 마거릿도 남편과 함께 투옥되었으나, 그녀의 사촌인 루이 11세의 도움으로 석방됩니다.)
*타워 그린
넓은 잔디 밭으로 되어있는 타워 그린은 당시 처형장 이었지만, 런던 탑에 감금된 모든 사람들을 이곳에서 처형 한 것은 아니고, 윌리엄 헤이스팅스 (남작), 앤 불린(왕비), 캐서린 하워드 (왕비), 제인 그레이 (여왕), 마가렛 폴 (백작부인), 로치포드 부인 (자작부인), 로버트 데버루 (백작)만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나머지는 타워 힐에서 처형 하였습니다.
*퀸즈 하우스
1530년 경, 헨리 8세가 사랑하는 앤 불린을 위해 만든 곳 이지만, 슬프게도 그녀가 처형되기 전에 감금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아르벨라 스튜어트가 감금된 후, 사망 하였던 장소이기도 하며, 메리 1세 재위 시절, 엘리자베스 1세 또한 반역 음모로 인해 이곳에서 감금 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개방을 하지 않고, 열쇠를 보관하는 장소로만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