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라제의 역사 괴담
안녕하세요^^
오브라제 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역사 괴담 특집(2)로 들려드립니다. 역사 특집(1)과 이어지는 내용이기에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상황 이해를 위해 앞 내용을 먼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재미를 위해 내용을 각색하였습니다.)
“김희성 자네, 그 이야기 들었는가?”
“무슨 이야기?”
“영월 군수가 또 죽었다고 하는구려,“
”아, 그 얘긴 잘 알지. 그래서 착잡하구먼.."
“자네가 다음 영월 군수로 뽑힐 유력한 후보라는데, 괜찮겠나?”
“안 그래도 지금 그것 때문에 골머리야. 무슨 핑계로 거절을 해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네,”
그때 뒤에서 한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대신 가겠소.”
“그대는 누구요?”
“내 이름은 충원이요, 그대들이 꺼려 하는 그 자리, 내가 가겠소”
그렇게 박충원은 모두 꺼려 하는 영월 군수로 새롭게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해 보니, 영월은 처참한 상태였어요. 부임하는 군수마다 이유도 모른 채 비명횡사하여 마을이 제대로 관리나 운영이 되지 않았고, 천재지변이 겹쳐 마을이 없어질 위기에 처해졌던 것이죠.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난다기에 자원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많겠군.”
부임한 첫날밤, 촛불 하나를 의지한 채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휙!
갑자기 촛불이 꺼졌고 주변은 암흑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죠.
“누구냐!”
박충원은 소리쳤습니다. 그러니 어둠 사이로 파란 불빛이 번지더니 10대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 곤룡포를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대가 이번에 새로 부임한 군수인가 보군…“
박충원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예를 갖추었습니다.
”노산군… 아니, 상왕 전하시옵니까?“
”그대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같아 다행이오.“
그러자 박충원은 오래전 숙부에게 죽임을 당한 어린 상왕의 이야기를 어찌 모를 수가 있겠냐며 흐느꼈습니다. 박충원은 너무 창백하고 가냘픈 소년의 얼굴을 보니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 혼이 저승에 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녔을 비통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전하..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이옵니까?”
“내 목에 감긴 활줄이 너무 아프구나, 그동안 다른 군수들에게 이것을 풀어달라 말을 하려 했지만 모두 나를 보고 정신을 잃었는데, 그대는 달라서 마음이 놓이는구나. ”
“걱정 마시옵소서. 소신이 전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송구하오나 전하, 전하의 어체를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듯싶사옵니다.“
“엄흥도, 그를 찾아보거라.”
소년은 이 말을 끝으로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박충원은 영월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노인을 불러 물었습니다.
”엄흥도란 자를 아는가?“
”예, 옛날 이곳 호장이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는가?“
”이곳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어 잘 모르겠습니다.“
박충원은 마을 사람들을 여럿 불러 물어보았지만 모두 같은 대답일 뿐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고민을 하던 차, 박충원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다시 처음 불렀던 노인을 다시 불러오라 하였죠.
“어젯밤 꿈에 노산군께서 날 찾아와 목에 걸린 활줄을 풀어 달라는 말씀에 그 명을 지키고자 엄흥도가 있는 곳을 찾으려 하네.”
노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 사람들만 아는 사실을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군수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전하께서… 나타나셨다고요?”
“그래, 나는 그분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라네. 그래서 자네 도움이 필요해. 자네가 모른척한 것이 혹시라도 엄흥도에게 불화가 닥칠까 봐 그런 것이라면 걱정 말게. 이것은 나만 아는 일이야. 알려진다면 엄흥도뿐만 아니라 나도 위험해지는 것이니 염려 말게.”
노인은 너무 오랜만에 듣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디 있는지 이야기해주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붙였습니다.
“이곳 영월에서는 그분을 노산군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박충원은 그들의 충심에 마음이 울렸습니다. 그렇게 엄흥도를 찾아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엄흥도 이오?”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나는 영월 군수 박충원이라고 하네. 꿈속에 상왕 전하께서 어체를 찾으려면 그대를 찾아가라 말씀하시기에 찾아왔소”
“상왕 전하…”
엄흥도의 말끝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전하께서는 목에 활줄이 감기었다 말씀하시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소?”
“군수께서 저를 찾아왔다는 것은 영월 사람들이 제가 사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것이겠죠. 그분들은 의리가 있는 분이니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았을 터, 그분들을 믿고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전하께 사약이 내려졌을 당시, 자신은 죄가 없으니 사약을 마실 이유가 없다며 거부하셨습니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 하였을 때, 한양부터 전하를 따라온 한 노비가 공을 세우려는 마음에 활줄로 전하의 목을 감아 졸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동강에 던져지셨죠..
저는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아들들과 함께 전하를 묻어드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나머지 활줄을 미처 풀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한이 되었는데, 이제서야 그 한을 풀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소년이 묻혀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엄흥도는 엎드려 절을 하더니 흐느끼며,
”전하 신 엄흥도 왔사옵니다. 제 신변이 무서워 그간 전하를 찾아뵙지 못하였사옵니다. 불충한 소인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흐흐흑… “
그들이 관을 열자, 목에 활줄이 감긴 소년의 유해가 보였습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꼬…”
박충원은 그 활줄을 바로 끊어버리고 제를 올려드렸죠. 그날 밤, 소년은 다시 꿈에 나타나 말을 하였습니다.
“할아버님이신 세종대왕께서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이야기해 주셨지. 하지만 한때 슬픔이 너무 커 그 사실을 잊은 적도 있었는데 그대들의 충심은 사육신 못지않은 것을 보니 이제야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겠구나. 고맙다.”
그 후, 더 이상 영월에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단종의 전설 중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이죠. 실제로 단종의 무덤을 찾게 된 것은 중종 11년 때입니다. 당시 단종이 죽은 지 60년이 지났을 때라 실제로 엄흥도가 당시까지 살았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단종의 자리를 찾았다는 것이죠. 세조의 후손들이 왕을 이었기에 혹시 보복을 당할까 무서워 묘를 관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시 어린아이들조차도 군왕의 묘가 있는 자리라며 그곳에서 놀거나 함부로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영월 사람들도 그 자리가 단종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우승지 신상이 중종의 명으로 노산군의 묘를 찾아 제사를 올리고 분묘(송장이나 유골을 땅에 묻어 놓은 곳.)를 수리하러 가게 되었는데 도착을 해보니 봉분(흙더미를 둥글게 쌓아 올려 만든 무덤)도 거의 없다시피 하게 낮았고, 왕이었던 분의 묘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관리가 되어있지 않은 모습에 중종에게 가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25년 뒤, 영월에 군수들이 연달아 죽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데, 당시 새로 부임을 한 영월 군수가 단종의 무덤에 정성껏 제를 올리니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바로 박충원이었죠. 그는 위의 내용대로 유력 후보였던 김희성을 대신해 영월에 간 것이었습니다.
선조 때 단종의 무덤에 석물이 추가되었으나 여전히 복위는 되지 못했기에 노산군의 묘라고 불렸지만 1681년 숙종 때, 왕후가 낳은 아들은 대군이라 하는데 어찌 노산군으로 불릴 수 있냐며 노산 대군으로 올리었고, 17년 뒤인 1698년에, 숙종은 노산 대군이 폐위된 것은 세조의 뜻이 아니라 간신들의 잘못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공신들의 책임으로만 돌려 자신의 조상은 낮추지 않고, 노산 대군을 다시 왕으로 높일 수 있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세조의 잘못을 인정해 버리면 후대 왕들의 정통성도 흔들려 버리니까요.) 그렇게 1698년 단종이 죽은 지 241년이 지나서야 숙종으로 인해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고 복위가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부인인 정순왕후도 왕비로 복위가 되어 둘의 신주(왕과 왕비의 위패)는 종묘에 모셔지게 됩니다. 묘 또한 왕릉으로 높여져 단종의 능은 장릉, 정순왕후의 능은 사릉이라는 능호를 받게 됩니다. (참고로 현덕왕후는 중종 때 왕후로 복위가 되어 문종 옆으로 다시 안장되었습니다.)
여담으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문종과 단종을 연약한 군주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이유는 김동인이 세조의 쿠대타를 정당화 하기위해 문종 (장영실과 함께 측우기를 만들고, 국방강화를 위해 신기전 등을 만들고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조선에도 북한산성을 쌓아 외세 침략을 막으려 했을 정도로 훌륭한 왕이었음.)과 단종 (생각과 달리 의정부 3대신인 김종서, 황보인 등에게 흔들리지 않았으며 나이가 많은 대신들 앞에서도 과감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고, 민생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미래가 기대되는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약한 군왕의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하들은 수양대군이 국법을 어긴적이 많아, 문종에게 수양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많이 올렸는데, 세종이 망나니 양녕대군을 매번 감싸안았던 것처럼, 문종 또한 수양대군은 나의 충직한 신하라며 동생을 보호하였는데 오히려 배은망덕하게 양녕대군과 세조가 한편이 되어 단종을 몰아내고 참혹하게 죽여 친형의 대를 완전히 끊어 놓았으며, 조카편에 있었던 충신과 형제들을 비참한 결말을 맞게 하였고, 세조에게 서모(아버지의 후궁)인 혜빈양씨는 죽이고, 숙모인 성녕대군 부인은 유배를 보내는 폐륜을 저질렀고, 형수인 현덕왕후는 왕비에서 폐한 후 관을 파헤친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쿠대타를 정당화 하기위해 성군의 면모를 보였던 문종과 단종을 후대까지 연약한 군주로 기억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세조도 연산군 못지않은 폐륜을 저질렀지만 역사의 승자이다보니 그의 죄는 묻혀버렸죠.
그럼 다음시간에는 단종과 경혜공주의 어머니 현덕왕후 괴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