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라제의 예쁜 공포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브라제 입니다.
오늘 무서운 이야기는 단종과 경혜공주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저주에 관한 괴담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자세한 역사 이야기는 앞의 이야기를 듣고 오시면 더 잘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재미를 위해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내용을 각색하였습니다.)
”네 이놈!!!!!!!! 감히 내 아들을 사지로 내쫓고 너는 편히 살아갈 줄 아느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밤, 세조의 침전에 왕비의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 찢어지는 비명소리를 질렀습니다.
세조는 온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여인의 분노에 찬 모습은 그야말로 끔찍했으니까요.
“전하께서 너를 그토록 아끼셨거늘 배응망덕하게 은혜를 이리 갚아? 세종대왕의 적장손이자 문종대왕의 적장자를 이리 대할 순 없음이야!!!!”
“으아아아악!”
세조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내시와 상궁은 놀라 침전에 들어왔습니다.
“전하, 또 나쁜 꿈을 꾸시었나이까.”
세조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이 나라의 왕은 과인이다. 어차피 죽은 혼령 따위이니 무시하면 그만이다.”
내시와 상궁은 세조가 현덕왕후(단종과 경혜공주의 어머니)의 악몽을 꾸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 한명회와 신숙주를 불러 지난밤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한명회는
“아들이 노산군으로 강등이 되어 유배를 갔는데, 어찌 그의 어미가 왕후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노산군의 모친은 사육신과 함께 단종복위를 하려 한 역모집안의 여인이니 당연히 폐위를 하시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신숙주는 맞장구를 치며 말하였습니다.
”맞사옵니다. 혼령이라도 시대를 따르지 못하는 자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셔야 합니다.”
세조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대신들을 불러 명을 내립니다. 현덕왕후를 폐하여 서인으로 강등하고, 더 이상 왕후가 아니니 종묘의 신주(왕비의 위패)를 없애 버립니다. 그것도 모자라 문종과 합장되어 있는 현덕왕후의 관을 파내어 평민들도 피한다는 물가에 왕후를 아무렇게나 묻어버리고 말죠.
그런데 그 후,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합니다. 왕후가 묻혀 있는 물가에 여인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세조는 이 이야기를 외면하죠. 그리고 정통성이 강한 조카가 살아있으면 자신의 자식들에게 해가 될 수 있으니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현덕왕후는 다시 세조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수양, 오늘 밤 네 아들을 데려갈 것이다. 내 아들을 몰아낸것도 모자라 죽이려 하면서 어찌 너의 아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길 바라느냐? 네 자식이 너의 죄를 짊어지게 될 것이고 너 또한 평생 죽지 못해 살게 될 것이다!“
왕후는 세조에게 침을 뱉었고, 그를 향해 손을 뻗자,
“안돼…!!!! 헉… 헉…”
세조는 시퍼런 얼굴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내시와 상궁이 침전으로 뛰어왔습니다.
“전하.. 세자께서 … 세자께서 …”
세조는 그 즉시 세자에게 달려갔지만 세자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아들을 안고 있던 정희왕후는 울부짖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세자를 데려가실 수 있으십니까! 흐흐흑…”
백성들은 세자의 죽음이 현덕왕후의 복수라고 말을 하였죠. 그 후, 세조의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왕후가 침을 뱉은 곳이 가려워지기 시작했고, 점점 진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조는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습니다.
“겨우 이것으로 나를 꺾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과인을 부정하는 자는 그 누구도 용서치 않으리라!”
그런데 얼마뒤, 세조에게 핏발이 서는 이야기가 전해지게 됩니다.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이자, 세조의 친동생인 금성대군이 유배지인 순흥에서 이복동생 화의군, 순흥부사 이보흠 그리고 지역 사람들과 함께 단종 복위를 위해 봉기를 일으켰다는 것이죠. 세조는 공신들과 함께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해 금성대군을 죽이고 순흥을 폐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노산군으로 강등된 조카 또한 죽이죠.
세조와 정희왕후는 둘째 아들인 예종을 장남 의경세자의 뒤를 이어 세자로 올리었고 한명회 딸을 세자빈으로 들입니다. (훗날 장순왕후) 그리고 얼마 안가 세자빈은 원손을 낳았고, 세조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불행의 그림자는 그들을 떠나지 않았죠. 세자빈은 산후병(출산 후 세균에 감염되어 고열에 시달리다 사망하는 병) 으로 원손을 낳은 후 닷새만에 숨을 거두었고, 원손 또한 만 한 살의 나이로 요절하자, 세조는 울부짖었습니다. 세조는 점점 두려워졌습니다. 정말 나의 죄로 내 자손들이 떠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였죠. 거기에 피부병은 점점 심해져 피고름이 온몸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병세가 악화되었을 때 자신이 차례를 어겼다며 후회를 하였지만 이미 엎어진 물은 담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현덕왕후가 다시 나타납니다.
“수양, 너의 죄가 여기서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말거라. 내 아들이 사지로 몰려 비참하게 죽어갈 때, 내 딸이 억울하게 홀로 남아 울부짖었을 때, 난 아이들 옆에 있었지만 혼령이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중한 내 아이들이 고통 속에 빠졌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미의 비참함을 너는 아느냐? 나와 내 부군이신 문종대왕께서 그리하신 것처럼, 너도 저승에서 네 자식과 후손들이 비참해지는 것을 보며 울부짖거라.”
그렇게 세조는 눈물을 흘리며 괴로움에 눈을 감았고 바로 그의 아들인 예종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세자시절 후궁이었던 소훈 한 씨가 세자빈을 거치지 않고 바로 왕비가 되죠. 그녀가 바로 안순왕후입니다. 새 왕이 즉위하고 새롭게 시작이 될 것 같았지만 비극의 대물림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예종은 1년 3개월 만에 19살이라는 나이로 요절을 하였고, 그의 자식들 또한 평탄치 못한 삶을 살죠.
예종과 안순왕후는 2남 2녀를 두지만, 첫째 현숙공주는 7살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12살때, 훗날 연산군의 대표적인 간신이 되는 임사홍의 아들 임광재와 결혼을 하지만 부부 사이는 좋지 않아서 공주의 남편인 부마는 첩을 두면 안 된다는 것을 어기고 양반집 여식을 첩으로 들입니다. 점점 부부 사이는 파국으로 치달아 결국 공주는 독살 자작극을 벌였고 이로 인해 임광재가 첩을 두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귀양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조정 대신들은 현숙 공주가 성격이 사납고 투기가 심해 이런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며 그녀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까지 휘말려 여럿 죽었고, 남편에게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 귀양을 가는대도 나와보지도 않았다며, 상소를 올려 비난을 합니다. 그 후 공주는 자녀없이 쓸쓸히 살다가 35살이란 젊은 나이에 사망을 하게 됩니다.
둘째 제안대군은 제멋대로인 성격이라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였는데, 첫 번째 부인이 병이 있다는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어머니 안순왕후(인혜대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촌 형 성종에게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를 하였고 그렇게 두 번째 부인을 들이지만 그새 첫 번째 부인과 사이가 좋아져 두 번째 부인을 내쫓고 첫 번째 부인과 다시 합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허락을 받기 위해 두 번째 부인 침실에 하녀들을 들여보내 부인이 동성애를 저질렀다며 거짓을 고하지만 결국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어머니 인혜대비에게 첫 번째 부인과 재결합하게 해달라고 조르게 되고 결국 인혜대비의 부탁으로 성종은 첫 번째 부인과 재결합을 허락합니다. 하지만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제안대군도 누나 현숙공주처럼 자손이 이어지지 못합니다.
셋째 혜순공주는 한 살의 나이로 사망을 하였고 넷째 왕자도 태어나자마자 바로 사망을 하여, 예종의 대는 끊기게 됩니다. (후궁들에게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어서 이전글에 이야기드렸듯이 예종 능에는 봉분에 이유 모를 화재가 여러번 일어났고, 성종과 정현왕후의 선릉과 중종의 정릉은 임진왜란 때 도굴을 당하여 단종의 충신들의 묘처럼 시신 없는 빈 무덤으로 있게 됩니다.
그리고 폭군 연산군이 나온 것에 이어 인조와 영조 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적인 역사가 쓰여지기도 했고, 나약한 군주들이 외세로부터 도망치기 바쁠때 그 짐은 백성들이 대신 지기도 하였습니다. 세조의 바람대로 그의 자손들이 조선 마지막까지 왕좌를 이어나가게 되었지만 결국 후손들은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게 되었죠.
반면 현덕왕후는 후대 왕들 재위시절에 복위 상소가 올라오기도 했지만 모두 묵인하고 거절을 합니다. 특히 중종시절 유순정이란 신하가 현덕왕후 복위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를 했는데 얼마뒤 이유 모를 병으로 사망을 하였고, 종묘에 벼락이 떨어지는 일들이 일어나자 현덕왕후가 노하였다 하여 1513년 중종 8년에 현덕왕후가 복위가 되어 다시 신주(위패)가 모셔지고 관 또한 문종 옆에 안장이 됩니다.
: 현덕왕후는 당시 세자빈이었던 순빈봉씨가 세자(문종)과 사이가 좋지 못해 오랫동안 회임을 하지 못하자, 후사를 염려한 세종과 소헌왕후가 간택후궁을 들이게 되는데, 그 중 한명 입니다. 문종의 부인들 중 가장먼저 임신을 해서 순빈봉씨에게 경계를 당하죠. 그리고 딸 둘을 낳아 승휘에서 양원으로 품계가 올라갑니다. (첫째딸은 일찍 요절하고 둘째딸 경혜공주만 살아남게 됩니다.) 그 후, 동성애등 여러사건으로 순빈봉씨가 폐출 당하자, 같은 간택후궁인 승휘 홍씨와 함께 세자빈 후보에 오르게 되는데, 세자는 홍씨가 되기를 원했지만 승휘 홍씨는 자녀가 없었고, 양원 권씨에게는 문종의 유일한 자녀인 경혜공주가 있었다 보니, 세종은 권씨(현덕왕후)를 세자빈으로 추천하여 세자빈에 오르게 됩니다. 문종이 홍씨를 총애하긴 했지만 세자빈 권씨와도 사이가 좋아서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던 후계자 단종을 낳았지만 안타깝게도 산후병으로 고열에 시달려 일어나지 못하자, 문종은 하던 일들을 모두 멈추고 밤새도록 세자빈 옆에서 직접 간병을 하였음에도 결국 2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문종은 오열을 하며 슬퍼했고 후에 왕이 되고 가장먼저 한 일이, 세자빈 권씨를 왕비로 추존하여 현덕왕후라 불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