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뜨는 것은 즐거워서

난 뜨개질이 좋아

by 포근한 배추김치

1.

바람이 가을을 알리자

다시 올해의 뜨개질을 시작했다.


“이 목도리 만들어보자. 엄청 쉬워.”

첫 시작은 같은 교무실 선생님의

달콤한 권유에서부터였다.


똥손인 나를 귀찮은 내색 없이

끈질기게 도와준 사람이 있어서

뜨개질의 매력에 눈을 뜬 것이다.


뜨개질을 하면서

꼭 잘하는 것이 아니어도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뜨개질을 하는 게

용하다고 하실 정도로

꼼꼼함을 요하는 일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틀리는 것도 창의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다양한 오류를 만들어

스승님들의 뜨개 실력을 늘게 만들기도 했다.

실이 잘린 것도 여러 번이다.


제대로 편물이 자리 잡기까지

다시 풀기를 10번 가까이해야만

가까스로 적응을 했다.


공부는 잘 못해도

수업 태도만은 성실한 학생이 된 기분이다.


거의 한 달 동안 편물이 자라나지 않아도,

뜨개실을 다 풀어야 할 때마다 속상하긴 해도,

난 빨리 뜨려고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아마 그랬었다면 제 풀에 지쳐 뜨개를 멈췄을 것이다.


나는 그냥 뜨개질을 하는 행위가 좋다.

반복되는 겉뜨기, 안뜨기도

한 단씩 정직하게 길어지는 편물도

보송하게 느껴지는 실의 촉감도

내가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 생긴 것도 마음에 든다.


실과 바늘로 이렇게 옷감을 짤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누가 처음 뜨개질을 생각해 냈을까

다양한 뜨개 도안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뜨개질은 아마 공간 지각 능력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예전부터 길치였었지 그래서 잘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이어가며


느리지만 정직하게 뜨개질에 몰두한다.


2.

뜨개질은 실과 바늘, 그리고 시간만 있다면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취미이다.


언제는 뜨개질이 너무 좋아서

뷰 좋은 작은 방에 갇혀서 뜨개질만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하지 않고

뜨개질을 하는 내 모습이 좋았다.


시간이 갑자기 생겼는데

뜨개 도구가 곁에 없을 땐

너무 아쉬워서 아침에 급히 나온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뜨개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른다.

시간을 가늠해 보며 길어진 편물을

자랑스레 보듬어본다.



3.

뜨개를 하며 또 배운 것이 있다.

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분명 난 잘못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하지만 편물을 보면

명백히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부정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헷갈려서

대강 이렇게 넘어가 볼까 하고 다음을 보면

항상 결말은 ‘푸르시오’로 가게 된다.


뜨개질만큼 결과를 속일 수 없는 취미가

또 있을까 생각한다.


한번 꼬여버리면

다음 수습을 어찌해야 하는지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틀려도 얼렁뚱땅 대충대충 하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나에게

뜨개질은

느려도 다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그럴 땐 내 손이 실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뜨개질은 잘 못한다고

누구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완성 시간만 늦춰지는 것뿐이니

다시 뜨개질을 시작하는 건 이제 도가 텄다.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해보자 다짐하며

제법 능숙하게 다시 코를 잡아 본다.


완성은 아직 멀었지만

오늘 뜰 몫은

이미 충분하다!


겨울이 가기전에 완성된 아이 목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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