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웠지만, 이제는
1.
유독 화났을 때 글이 잘 나온다.
그건 예전부터 지속된 내 오래된 습관이다.
어릴 때도 내 일기장은 거의
데스노트처럼 분노와 절망이 가득했다.
필체로도 화난 게 느껴질 만큼
꾹꾹 눌러쓴 휘갈겨진 글씨에
나름의 논리로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폭포처럼 쏟아냈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글이 마려울 때를 살펴보면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가 많다.
화날 때 글이 잘 써지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우선 감정이 선명하다.
그리고 분노의 원인을 분석해 보고 싶어진다. 내가 왜 화가 났고, 화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감정의 꼬리를 따라가 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이 상황도, 화났던 감정도 조금 가라앉고,
나 역시 조금은 멀리서 그 상황을 내려다보는 이야기꾼이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된다.
이렇게라도 표출을 하면,
비로소 마음속에 고여 있던 나쁜 감정을 흘러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빈자리에는 다시 나를 응원하는 말을
채워두며 나를 지킨다.
2.
분노 원동력은 꼭 글에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이다. 부모님이 할머니댁에서 내가 사범대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작은 아빠는
"임용고시 그거 하늘에 별따기다. 하늘에 별 따기."
라는 말로 축하를 대신하셨다. 나는 그 순간에 아무 말 없이 멋쩍게 웃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꼭 합격해서 저 말을 쏙 들어가게 해야지
그 후 나는 진로 고민으로 대학교를 휴학을 하게 되었고, 방황을 끝내고 복학한 나는 아무래도 임용고사 준비가 동기들에 비해 늦어졌다. 응시 지역을 지원한 후,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거기 ㅇㅇ도 지원 안 했다던데, 너 할 수 있겠어?"
라는 말을 들었다. 이때 역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먼저 합격해서, 보여주자.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 때문인지, 나는 그 동기들보다 빨리 합격을 했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한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무례도, 그 영향력도 모를 것이다.
그들에게 고맙지는 않다.
표정 한번 찡그리지 못했던 그때의 내가 안타까울 뿐이다.
무례함을 받았을 때 불쾌함을 표현할 줄 몰라서, 분노는 나를 향했고 마음의 칼은 나를 채찍질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 결핍이 나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
그렇지만 이제는 바뀌고 싶다.
글로 화를 내뿜는 글 말고,
그때의 상황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싶다.
무례를 받고 당황스러워, 못 본 것처럼 넘기지 말고
이거 왜 주셨어요? 라고
무례를 찬찬히 마주 보며 대화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내 분노의 글들도 점차 사라지게 될 거다.
분노의 글이 점차 사라지게 될 그날을 고대하며
예전의 내 분노들에 약간의 감사와 미안함을 보내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