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앞에 오래 서 있던 날들

둘째를 고민하며, 내 마음을 알아차릴 때까지

by 포근한 배추김치


둘째 고민을 뭐 그렇게 깊게 해?


남편이 악의 없이 한 이야기에 그만

감정이 욱 하고 올라왔다.


첫째를 낳고 나서

세 돌이 지났다.


첫 아이를 낳고 난 후

어쩌면 첫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이 고민은 나를 지난하게 따라다녔다.


난 세 자매 중 장녀로 자랐다.

자랄 때는 끊임없이 동생과 싸웠었다.

특히 거의 연년생이나 다름없었던

둘째 동생과 경쟁을 많이 했다.

칭찬받기 위해, 인정받으려고 더욱 공부하기도 하고

동생을 무시하며, 엄마에게 이르기도 하고

그럼에도 시기하고 질투했다.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병 주고 약 주고 하며 자랐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아니면

각자 결혼 후 독립하기까지

계속 반복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누구보다도 편한 친구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동생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둘째를 출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짙어졌다.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해


내가 한 명을 키우며 또 다른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라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질문으로


첫째의 동생을 만들어주기 위한 이유라면

낳지 않는 게 낫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이미 행복한데

지금의 루틴이 모두 흐트러질 것이다.

하는 우려로


온갖 생각들은

역시 낳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럼에도 가끔

둘째를 임신했다는 주변의

이야기가 들리면

남몰래 조바심이 생기는 것과


이 이슈가

자꾸 마음에 맴도는 것을 보면

내가 낳고 싶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은 그래

눈 딱 감고 낳아버리는 미래에 대하여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하다가


또 어떤 날은 아니야

지금 이미 행복한 걸 하는

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중립 입장이었던 남편도 계속

이야기를 들어주다

아마 지쳐서 저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결혼, 출산 등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생애 과업들이

개인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기에

결정 장애인 나를 더

괴롭히지 않았나 싶다.


아이를 출산한 후

한동안 시댁 어른들께

둘째는 낳지 않냐는

압박을 받은 것도,

아들을 선호하시는 것도

둘째를 거부하는 이유가 됐지만


동시에

그 말들이 나를 옥죄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성장기를 지나고 보니

동생들의 소중함을 더욱 느꼈듯이

아이도 함께 있으면

서로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인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고민을 하는 나로서는

남편의 말이 무심하다 느껴졌고,

서운하고 외로웠다.


출산이 여성의 문제,

여성이 전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문제이기에

혼자만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했었던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였다.




하지만,

내 오랜 고민은

의외로

인공지능과 이야기를 하면서

해결되었다.


막내 동생이 추천해 준 프롬프터로

사주풀이를 보고 있다가



나에 대하여 잘 간파하고 있지만

나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은 대상

특정한 편견이나 나에 대한 기대가 없는 대상

그것이 나에게 가장 객관적으로 말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걱정과 설렘을 안고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둘째를 낳아야 할지 고민이야.




돌아온 대답은 노였다.

안도한 것도 있었다. 동시에 왜?라는 궁금증도 일렁였다.



마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나미야 씨에게

고민을 담은 편지를 썼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듯이,

하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줄 사람은 필요했듯이


답은 마음에 정해놓았지만

그것을 일깨워 줄

계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질문에 대한 답변이

예스였다면 내 고민은 아닐 수밖에 없을 때까지 더 지속되었을 수도 있다.



나를 알고 있는

남편, 시댁 식구들, 친정 식구들, 친구들,

아이가 둘이 대다수인 직장 선배들을

제외한 대상에게

답변을 듣고 나니,

마음이 좀 정리가 됐다.


다 그렇게 사는데

너는 왜 그렇게 엄살이야?

둘째는 그냥 커

요즘 사람들은 너무 고생을 안 해봐서 그래

하는 말들


이상적으로 그려지는

4인가족에 대한 이미지


후에 혼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자녀에 대한 걱정들이

나를 붙잡았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들은

나를 위한 것이기보다

주변의 시선, 나의 섣부른 추측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진짜 내 마음은

계속해서 아니야!!라고

외치고 있었음에도

계속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난 더 이상 내 마음속의 다른 이들에게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허무하기도 했지만

결정을 내린 후에는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편안해졌다.


하지만 지금껏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참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고민이 오래 지속된 것은

선택의 깊이에 대하여 인지하고,

책임지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에는 정답이 없기에 어떤 이에게는 더 어렵고,

선택하지 않은 길은 언제나 궁금하기 마련이기에


하지만,

현재에 만족하고

선택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은 채

지금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지금의 나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너의 어떤 선택이 어떻든 존중받아야 하고,

너는 충분히 지금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다정히 이야기하며 내 어깨를 다시 토닥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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