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사회생활인지 솔직함인지
1.
직장에서 친한 사람이라도 모든 말을 다 할 수는 없다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에
그래서인지 직장 사람들과 모임을 하고 나면
왠지 모를 공허함이 남는다.
완전히 솔직해질 수는 없는 관계
직장 내에서는 친하지만 직장 외에 사적 만남은 거의 없는 관계
직장이 달라지게 된다면 더 연락을 하고 지낼 것인가에 대하여 물음표가 남는 관계
하지만 직장 내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것에 있어서 나쁠 것이 없는 관계이기에 유지되는 이 관계에
미묘한 거부감이 들면서도 이게 사회생활인가 싶기도 하다.
2.
직장 생활은 정제된, 보이지 않는 정글같다.
‘나’를 까칠하게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고
유순한 사람에게는 은근히 선을 넘는 무례를 행하는 모습들
그리고 그것이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이 없다는 것이 놀랍다.
그들의 무례는 직장의 효율이라는 어떠한 명분아래 행해진다. 나는 이게 헷갈린다. 직장 안에서의 효율과 무례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이것에 대하여 욕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안에서는 은근히 그들에게 굴복하는 소시민적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점이 씁쓸하다.
이런 흐름에 휩쓸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막상 현실이 되면 속절없이 휘말리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속상하게 여긴다. 나를 지키는 것, 참 어렵다.
3.
그들의 무례에 적당한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무례는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난 특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약한 편인데
얼마 전 숏츠에서 지코와 피오가 블락비 시절 다툰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조금은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지코가 일적인 이유로 멤버들에게 기분이 상하는 말을 했고, 피오는 그것에 대하여 인정은 하지만 말을 왜 그렇게 이쁘게 하지 않느냐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면서 당시에는 많이 싸웠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지금은 서로에 대하여 솔직하게 직면했던 덕분인지 여태까지 좋은 관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상대가 하는 모습이 성실하지 않아 보일 수 있고,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상대는 나에게 인격적으로 함부로 말할 권리가 없다는 점. 비록 내가 잘못한 점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건 스스로가 자각하고 스스로를 위해 지켜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