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에 대처하는 해답은 사실 없을 수도

by 포근한 배추김치

나 역시 무례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만 보이듯

내가 그런 사람이다 보니

요즘은 나 같은 사람이 참 많이 보인다.


우리는 슬프게도

상대방이 '나'를 함부로 대할 때,

불쾌함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점은 삶을 사는데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착한 줄 안다.

둥글둥글하고 모나지 않으며, 물에 물 타도 술에 술 타도 괜찮다고 하는 무던한 성품

예전에는 나도 이것이 좋은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나'는 누구보다도 모가 나있고, 날카롭다.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 속에 그들을 저주하지만,

다음날에는 애매하게 웃는 걸로 무례에 대처한다.


이 행동은 반복되다, 결국 나에게 화살을 향하게 한다.

방패로 화살을 무디게 해

그들에게 다시 비춰주는 통쾌한 결말은 없다.

스스로도 나를 찔러 나를 더 아프게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답답한 것은 나 자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 봤다.


책을 읽었다.

집에 꽂힌 책들 중에는 유독 말과 상황 대처법에 대한 것들이 많다.


영상을 찾아보았다.

유명한 박사님들의 상담 장면과 조언들을 보며

나와 비슷한 사례에 공감하고 솔루션들을 캡처해 두었다. 하지만 그뿐,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그 사진을 보진 않는다.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했다.

마음에 대하여 공부하게 되면서 나와 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하지만 교수님도 앎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현실은 속수무책이다.

타이밍에 맞는 워딩과 표정 근육의 미세한 조절은 이미 웃는 것으로 자동화가 되어버린 탓에

꼭 지나간 후에 후회로 남게 된다.


우리가 답을 찾는 이유는 '변하고 싶어서'이다.

해답을 찾기는 정말 쉬운 세상이다.

하지만 진실로 절망적인 것은, 알아도 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마치 매해 수능 만점자에게 공부 방법을 물어볼 때

우리가 특별한 비법을 기대하지만,

매번 같은 대답이 나와서 실망하는 것과 비슷하다.


삶은 늘 애매하다.

우리는 어떤 행동에 대한 명확한 대처를 원했지만,

애초에 정답이 없는 것들에

만병통치약을 기다리는 것은 모순적이며

정답을 안다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 또한 그렇다.

수많은 말하기 기술,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방법들을 배웠지만

그것들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것으로 알게 된 것은 그냥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씁쓸한 공감대였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어떻든

최대한 ‘나’를 덜 미워하고,

더 아껴주는 방향으로 찾아보면 좋겠다.


내가 찾은 대처법은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찾아

나를 단단히 지키는 것,

또 미운 그들을 최대한 미워하지 않고

연민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요즘 난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보듬는다.

때로는 노래방에서 샤우팅을 하며 화를 내뿜는다.

귀여운 컵이나 옷을 사기도 한다.

동생들과 수다를 떨며 엽떡을 사 먹는 것도 좋다.


그리고,

지독하게 미운 놈도

어떻게 더 연민어리게 바라볼지 고민할 것이다.


언젠가 한 숏츠에서 이옥섭 감독님이 말했다.

“정말 싫은 사람도 내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사랑스럽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이후로 누가 너무 미우면 그냥 사랑해 버려요.“


나도 처음엔

어찌 그를 사랑할 수 있겠냐고 그녀에게 반문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말은 계속 내 마음에 남았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가 할 수 있지만, 구차하지는 않은,

내가 무너지지 않을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무례를 받는 어떤 상황에 처했다고 가정해 보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당신에게 어떤 선택 창이 떴다고 가정할 때,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1) 그 사람에게 무례에 대한 내 감정 솔직하게 표현하기

2) 그를 차라리 가엾게 생각하며 바라보기

3) 그를 마음껏 증오하며 미워하기



내가 가장 원하는 선택지는 1번이다.

1번을 행하게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는 내 행동 자체에 큰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다음으로는 2번이다.

그를 증오하기는 쉽겠지만 내가 그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반증이요,

증오는 자동적이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그를 애처롭게 생각하는 것은 내 주체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현명한 복수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없다.
이건 여전히 인간관계가 어려운 한 사람의 치열한 고민과 사투의 흔적이다.


그러니 당신도 치열하게 고민하면 좋겠다.

실행할 수 있으면서 자신과 어울리고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 방식에 대하여.


계속해서 시도하고 수정하여 발전시키면 좋겠다.

실패하면 어떠냐.

어차피 인생은 지속되고 그런 상황은 어김없이 예고도 없이 찾아와 우리에게 시험을 걸 것이다.


언젠가는 또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이 자식 또 와서 나를 시험하네’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날 수도 있다. 그때는 내가 나를 조절하는 감정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어떤 길이든 좋다.

그 길이 에둘러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고,

어떤 이는 그 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알다시피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도 값지며

그건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냥 마음껏 마음대로 시도해보자.

내 삶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감당할 사람도 어차피 ‘나’이다.


고민하는 당신은 충분히 멋지다.

흘러간 일에 대해 오래 분개하고 속상해하기에

‘당신‘이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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