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우주는 자라고 있었다.
엄마들끼리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가기 전 선뜻 마음에 내키지 않은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남편 없이 가는 것
직장 동료와 가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이 때문이었다.
같이 가기로 한 엄마 둘은 현 직장의 동료들이고,
개월 수는 차이가 나지만 모두 5살 여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가끔 밖에서 종종 보기도 했지만,
동료들은 자녀를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서 두 아이의 사이가 퍽 가까웠다.
내 아이가 함께 어울리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전의 만남에서도 그런 모습이 좀 보였던 터라
함께 오랜 시간을 붙어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혹여 그런 문제가 더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내 판단에 찐득하게 달라붙어 브레이크를 걸었다.
한편으로는 뭐 어때. 내 생각보다 더 잘 놀 수도 있고 포근이도 이런 상황을 겪어봐야 해.
그리고 자주 보다 보면 더 나아질 거야. 하는 생각으로 미지근하게 수락을 하고 여행을 떠났다.
막상 가서 보니,
내가 걱정한 부분이 그대로 나타났다.
“엄마, 애들이 안 놀아줘요. “
“엄마, A가 나 밀었어요.”
“이모, B랑 포근이가 자꾸 싸워요. “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중에도 몇 번이나 아이들이 찾아왔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다시 돌려보냈지만
나도 아이가 잘 노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꾸 눈길을 놀이방으로 돌렸다.
아이 둘만 손을 잡고 앞서 가고 내 아이는 뒤를 쫓아가는 모습
셋이 같이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내 아이는 끼지 못한 모습이 자꾸 보여 안쓰러웠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세계에 개입하는 것은 내키지 않아 혼자 속앓이를 했다.
그런 모습이 동료들의 눈에도 보였을 터,
“A랑 B가 같은 어린이집이라 그런지, 포근이가 외로워 보인다.”라고 동료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모른 척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마음을 알아준 동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저것도 배우는 거죠. 엄마가 지켜보는 것이 어렵지. 아이들은 괜찮을 거예요.”라고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동료도 내 말에 동의한다며,
요새 여자 아이들은 빨라서 유치원 때부터 같은 유치원 친구들끼리만 논다는 이야기
요즘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못 어울리면, 나서서 친구를 직접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를 이어했다.
알고리즘으로 자주 보던 ‘요즘 부모들의 문제점’이 떠올랐다.
너~무 아이 잘 키우려고 하지 마세요.
육아 관련 프로그램에 나오는 박사님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이 아이에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거다. 그 영상을 보며 나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내 아이가 잘 못 어울리고 있으니, 지켜만 보기가 쉽지 않았다.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입이 달싹거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를 타일러 되돌려 보내거나, 사이좋게 놀아 라는 말 밖에 없어서 엄마로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력감도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차에서 금방 잠이 들었고, 나는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전했다. 속상함이 많이 묻어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니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러자
이 속상함은 내 것이지, 포근이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포근이도 나처럼 속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부모가 지켜보는 것이 힘들어서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포근이에게 여행이 재미있었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재미있었다고, 다음 주에 거기 또 갈래요.라고 대답했다.
누구랑 가고 싶냐고 물어보니
같이 여행 간 A와 B를 말했다.
의외였다.
돌이켜봐도 포근이는 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꿋꿋이 놀이에 참여하려고 했고
잘 안 풀리는 일이 생기면 나를 찾아와 문제 상황을 알리기도 하고, 혼자 놀기도 했다.
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투기도 하면서 자신의 상황에 적응했다.
그것은 꼬마들의 세계에 있어서는 당연한 생리였을 거다.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친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을 것이고, 감정 표현에 솔직할 테니 비교적 낯선 친구와는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또 성향이나 표현 방식이 다르니 서로를 알아가는 것에도 설명과 시간이 더욱더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어른들이 문제였다.
그렇게 하루를 돌아보니,
내 아이의 모습이 대견했다.
저녁에 아이를 씻긴 후, 보송보송 솜털이 난 보드라운 볼에 로션을 발라주며 말했다.
“포근아, 너 여행 가서도 씩씩하게 잘 노는 것 보니까 너무 멋지던 걸. 포근이 최고야!"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은 나였다.
포근이가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항상 혼자가 될까 초조했던 내가 떠올라 안절부절못했던 것이다.
아이를 재운 후 남편과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말했다.
“우리 아이가 나보다 더 나아.
내 소심함을 우리 아이가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 포근이 정말 당찼어!
내 감정을 아이에게 섣불리 이입하지 않게 조심해야겠어. “
남편도 말했다.
“그렇지. 우리 포근이 생각보다 씩씩해. 그리고 많이 컸어. 아까 전에는 나한테 '아빠~ 나 별이랑 친구가 되고 싶어.'라는 말을 하더라고.”
남편이 이 이야기를 전하는데, 잠시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별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말
이 말에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순수함이 아름다워서였는지,
아이의 세상은 자라나고 있었는데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어서였는지,
아이가 부쩍 자랐다는 것이 아쉬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과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이 오래 기억될 만큼 생생하게 느껴진 것은 확실했다.
아이는 자신의 우주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다.
나는 남편과 이 아이의 우주에 별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을 함께하며 조금씩 더 부모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번 주는 아이와 함께 별을 보러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