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잊고, 너무 열심히 살 뻔했다.

by 포근한 배추김치


요즘 얼굴에 염증성 여드름이 계속 올라온다

하나가 가라앉았다 싶으면,

두더지 게임하듯이 다른 놈이 올라온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짐작컨대 스트레스가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


대학원 과제, 육아, 담임 업무, 시험 출제, 졸업 준비,

거기에 소소하지만 아내, 딸로서의 역할까지.

여러 개의 '나'로 정신없이 산다.

특히 요즘의 나는 ‘교사로서의 나’에 깊이 골몰하고 있다.


그만큼 진심이기에

해소되지 못한 것들이

자기들끼리 엉키고 뭉쳐서

짜지지도 않는 염증성 여드름으로 나타난 건 아닐까 싶다.


오늘도

해결되지도 않은 고민거리들을

계속해서 발끝에 달고 다녔다.


몸은 아이와 함께 있는데

정신은 챗지피티나 제미나이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데 여념이 없었다.

정신적 퇴근을 못한 채로

아이와 함께 하고 있어서

미안함과 피로감, 답답함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지혜롭게 결정하고 싶은데,

깨우치지 못한 탓인지,

자존심이 문제인지,

마음이 수백번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중 가장 많이 고민하던 문제를 가진 채,

주변 공원으로 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쑥을 뜯으러 나들이를 갔다.


그러다

아빠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 고민에 아빠는 이런 조언을 해 주셨다.

긴 대화를 간추리면 이렇다.


“일단 부딪쳐봐.

그렇게 고민하는 거, 막상 별거 아닐 수도 있어.”


그 당시에는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 아이를 재우고

집 정리를 하는데

아빠의 충고가 내 마음에 남아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였는지

내 문제 속에서 나와 살며시 뒤로 물러나보았다.

놀랍게도, 그게 가능했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그 문제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그전에는 내가 생각한 것들이

잘못되면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고 느꼈지만,

사실 이 고민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고,

만일 그 일들이 실제로 벌어진다 해도

해결 방법은 있다.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실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이라

실수를 하면,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걱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생각해보니

문제는 고치면 되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내 나름에서 최선을 다한 결정이니

어쩌라고, 라고 생각하니

고민들이

시뮬레이션 게임의 퀘스트처럼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그전의 나는

문제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문제에 나와서 바라보니

그때의 내가 가엾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는 책처럼

잠시 너무 열심히 살아버렸다.


김영하 작가가 알쓸신잡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의 100%를 사용해선 안 된다.
능력의 60~70%만 사용해야 한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능력이나 체력을 남겨두는 게 필요하다.”


참 인상깊었던 말이었는데

나는 잠시 이 사실을 잊고,

내 능력의 거의 100%를 끌어다 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을 깨달으니,

갑자기 고민하던 것을 탁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쉽게 되어서 다행이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내가 소진되는 걸 원치 않는다.

가늘고 길게, 그리고 다양하고 소소하게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다.

하마터면 너무 열심히 살 뻔 했다.

생각해 보면, 범죄가 아니라면

세상엔 그리 심각할 일은 없다.

이것을 다시 일깨워준 아빠께 감사하다.

짜지지도 않던 염증처럼 남아 있던 고민들도,

이제는 조금 가라앉은 것 같다.


아빠와 엄마와 내 아이가 캐온 쑥으로

저녁에 쑥전을 구워먹었다.

엄마가 반죽을 하고, 아빠가 꾹꾹 눌러서 부친 쑥전

쑥전을 입안에 넣었을 때는,

가늘게 채 썬 쑥의 향이 입에 가득 퍼졌었다.


그걸 떠올리니 입안에 다시 한 번

향긋한 쑥향이 나를 감싸는 기분이 든다.


아까는 진정으로 함께 캐지 못한 쑥을 떠올리며

이제야 그 길을 다시 혼자 거닐어 본다.

가늘고 오래 가기 위해, 나는 나를 아껴가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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