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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l 23. 2024

언니.. 나는 언니를 미워하지 않아.. 우리가 미안해

"오리야 너는 외동딸이라 그런가?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가? 넌 매사에 긍정적이고 참 밝은 사람 같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난 이 말을 정말 좋아했다.


그 누구도 마냥 밝은 내 모습이 가면이라는 생각을 못한다.  나는 그 누구한테도 솔직하지 못했다. 아니, 굳이 솔직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대로 만들어서 살아가고 싶었다.

'외동딸이라 부모님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 구김살 없는 오리' 이게 내가 원하는 이미지였다.  


나는 이복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을 꺼려했다. 물론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그 아이들은 내 인생에 있어서 남이었다. 그 아이 한테도 아마 나는 남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점점 커가면서 우리는 서로 철저하게 의식하면서도 서로 모른 척하고 살았다. 우리는 서로한테 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서로 모른 척하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릴 때에는 잠깐이지만 같이 살았기 때문에 어른들에 의해 강제로 자매가 되었고, 엄마한테 돌아갔을 때에는 아버지와 이혼을 안 해주는 엄마 때문에 그 내연녀는 일부러 우리 보란 듯 우리 집 근처로 이사와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자리를 잡았고, 이혼해 달라며 그 애들을 데리고 우리 집을 여러 번이나 찾아와 엄마를 괴롭혔다. 그때마다 어렸던 우리 셋은 각자의 엄마를 바라보며 불안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중심에 당사자인 아버지는 없었다. 참 아이러니 했다. 일 벌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정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었다. 아무튼 우리 엄마는 끝까지 이혼을 안 해줬다. 엄마는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해주냐며 끝까지 버텼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결국 그 여자는 내가 살던 동네에서 자리를 잡아, 결국 우리 셋은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멀리간 것이었다.


이때는 그 내연녀가 나랑 엄마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방과 후 나는 가끔씩 그 여자를 봐야 했고 그 여자는 나를 볼 때마다 째려보거나 욕을 했다. 어렸던 나는 그 여자가 정말 무서웠다. 특히 안경 너머로 날 원망 가득 보던 그 눈빛은 항상 날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을 지나 청소년이 되면서  여자와 그 애들을 피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들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었고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엄마와 내가 불행한 건, 그 여자와 그 아이들이 우리 있는 곳까지 와서 시작된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이상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그 이후 난 동네에서 그 여자를 마주치면 주눅 들기보다는 술집 여자라며 비웃어줬고, 이복동생들을 보면 불륜녀의 딸들이라며 손가락질하고 비난했다. 나도 잘 안다. 내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었고, 그 아이들은 잘못이 없었다는 걸, 하지만 그때의 난 누군가에게 정상적이지 않은 내 가족에 대한 화를 풀었어야 했고, 대상은 나보다 약한 어린 그 친구들이 되었다.


하루는,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서 그 여자랑 이복동생이 지나갔다. 나는 그때 내 친구들이랑 같이 있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있다는 든든함 때문이었을까? 난 일부러 큰 소리로 어! 술집 여자다!라고 외쳤고, 나랑 같이 있던 친구들은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수치심 가득한 얼굴로 그 여자는 나한테 다가와 가정교육 제대로 못 받았냐며 손가락질을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더 이상 그 여자가 무섭지 않았다. 그 여자는 내 기억 속의 여자가 아니었다. 머리는 푸석했고 얼굴은 늙었고 옷은 추레한 볼품없던 모습이었다. 그때 난 직감했다. 아 아빠가 더 이상 얘네를 찾아가지 않는구나, 이 여자와 저 아이들은 이제 아빠의 관심 밖이구나 라는 걸 알았다. 그걸 느끼자마자 더 조롱 섞인 말투로 그럼 아줌마는 가정교육 잘 받아서 애 있는 남자 꼬드겨 그런  했냐며 대들었다. 그 여자는 너무 커버린 나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지 못했다. 씩씩거릴 뿐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대들듯이 말하며, 왜요? 어릴 때처럼 때려봐요! 때려봐! 하면서 소리 질렀다. 그러면서  그 여자랑 같이 있던 이복동생한테 소리쳤다. 야, 니네 엄마 유부남 꼬셔서 너 낳은거야 라고 적나라하게 말했다. 그때 그 여자는 경악스러운 얼굴로 그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나와 친구들은 우리를 피하는 그 둘의 뒤에 대고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솔직히 당시에는 너무 통쾌했다. 이겼다고 생각했고, 내가 엄마를 대신해서 복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날 이복동생이 울던 모습이 자꾸 기억이 났고, 그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기억 속에서 이복동생들에 대한 생각은 없어졌다.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나는 엄마와 동네 길을 지나가다가 그 동생 두 명을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놀랐다. 하지만 그 두 명은 우리를 보자마자 눈을 피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을 가린 채 지나갔다. 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그 친구들의 행색에도 놀랐다. 한편으로는 걱정과 함께 마음에는 잊고 있던 찝찝함이 생겼다. 왜 쟤네는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저렇게 지나가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내가 했던 행동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엄마가 동네에서 그 여자와 저 애들을 마주치면 비난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렇다. 그 아이들은 우리한테 또 비난을 받을까 무서웠던 것이다.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내 스스로가 창피했다. 나는 내 분노에만 빠져 그 친구들 역시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었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걸 더 후벼 팠던 이다. 나는 한편으로 그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 사과마저 내 마음만 편하자고 하는 행동이란 걸 알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사과를 하면 엄마를 배신하는 행동 같았다.


나는 그렇게 그 친구들에 대한 찝찝함을 남겨둔 채 내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며칠 동안 계속해서 전화가 왔다. 나는 원래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아 무시했다. 그러자 문자가 왔다. "언니 잘 지냈어? 나 00인데, 갑자기 아빠가 꿈에 나와서 아빠랑 통화하고 아빠한테 언니 번호 물어봤어. 한 번쯤은 언니랑 통화하고 싶었어. 문자 보면 연락 줘." 이 문자를 보고 나는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한테 왜? 아니 도대체 왜? 피할까도 생각했지만, 궁금했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나는 그 친구 목소리를 듣는 순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울컥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결혼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는 나와 우리 엄마 원망을 많이 했지만, 결혼을 앞두고 한 남자의 부인이 될 생각을 하니 우리 엄마와 나한테 너무 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나 또한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너희는 잘못이 없는데 그때는 철없던 나의 분노가 잘못 없는 너희한테 간 것 같다며 사과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힘겹게 말했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본인들이라며, 상처 줘서 미안하다고, 나는 언니를 싫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자기 엄마 때문에 내가 어린 시절 상처받은 것에 대해 정말 미안하다며, 그리고 우리 엄마한테도 너무 죄송하다고 하면서 용서를 받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넌 잘못한 거 없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한편으로는 피해자였을지 몰라도 이 친구들한테는 가해자란 걸, 원망을 해야 할 대상은 이 아이들이 아닌데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가지고 본인들이 부모를 선택을 해서 태어난 것이 아님에도 그 친구들 탓을 했다. 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내가 친구들을 싫어하는 게 아니란 걸,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이 아이들과 지낼 때, 그 여자가 나한테는 못됐어도 얘네들은 나를 감싸줬던 걸, 나한테 언니 언니 하면서 날 따랐던 것도 알고 있다. 초등학생 때는 간혹 내 반에 찾아와 우리 큰 언니라며 자기 친구들한테 나를 소개했던 것도 기억한다. 내 생일에는 엄마 몰래 나한테 찾아왔다며 굳이 우리 반까지 와서 선물을 주고 갔던 애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잘 살자고 서로 축복과 응원을 해주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그러면서 느꼈다. 이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안부 전화가 될 것이라는 걸, 나는 이 한 번으로 서로의 응어리를 풀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친구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내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진짜 가족은 될 수 없듯, 우리는 여름과 겨울처럼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고 나는 계속해서 나를 소개할 때 외동딸이라고 소개할 것이란 걸 난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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