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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l 16. 2024

엄마 어디까지 이해해야 해?

나의 세상의 전부는 엄마였다. 엄마의 세상 전부 역시 나였다고 했다. 우리는 의지 할 곳이 서로 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로를 의지하기에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고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여자였다. 엄마도 나도 모든 것에 있어서 서툴렀다.


내가 엄마와 다시 만났을 때, 엄마는 자양동 어느 가게 안쪽 가림막 커튼으로 가려진 허름한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엄마와 그 곰팡이 가득한 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 단칸방 바로 앞에는 가게 화장실이 있어 커튼을 쳐도 오래된 화장실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방에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는 그 방에서 엄마와 함께하는 일상이 행복했다. 생각해 보면 그 방은 엄마와 내가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그럼 엄마는 자리를 조금 더 만들기 위해 나를 품에 쏙 넣었다. 나는 엄마의 그 품이 너무 좋았다. 나의 가장 행복한 어린 시절은 그 쾌쾌하고 습한 그 방에서의 엄마와 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그곳을 정말 싫어했고 지금도 어쩌다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엄마의 가장 비참했던 기억이라고 할 정도니깐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장소는 서로 다른 기억과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엄마는 낮에 우리가 지내는 가게를 봐주는 일을 했고, 저녁에는 그 가게 2층에 위치한 가게 사장님 집 청소를 했다. 엄마가 얼마나 일을 고되게 했는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냥 난 단순하게 매일 엄마랑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을 수 있는 게 좋았다. 또한 엄마한테 어리광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 엄마한테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이 좋았다. 특히 난 엄마가 종종 나에게 해줬던 간장 밥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매일 가게 한쪽에서 허겁지겁 끼니를 해치워야 했지만 나는 그래도 좋았다. 엄마와 같은 숟가락을 쓰고 엄마가 밥을 내 입에 넣어주고 매번 엄마한테 챙김을 받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와 달랐다. 엄마는 간장 밥을 싫어한다. 엄마는 시장 볼 형편도 어려워 자식한테 간장이랑 밥만 줘야 했던 자신이 싫었다고 했다. 간장밥은 엄마한테는 엄마의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상징이었고, 가난의 서글픔이라고 했다. 아무튼 엄마는 그런 기억 때문인지 나한테는 돈에 대한 부족함 없이 내가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게 키우고 싶어 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고 엄마는 그걸 위해 엄마의 모든 걸 희생했다.

엄마의 희생으로 우리는 점점 나아졌다. 방도 여러 개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기 직전에는 현관이 크고 베란다가 넓고 주방이 화려한 높은 고층의 집 까지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엄마한테는 밤낮이 없었다. 말 그대로 우리 엄마는 밤낮없이 일만 했다. 엄마는 항상 바빠 한 번도 내 학교 입학식에 온 적이 없었다. 졸업식에는 항상 늦었다. 나는 항상 자고 있는 엄마 등 밖에 보지 못했다. 또는 엄마가 일 나간 후 빈 집만이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항상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나밖에 없다고 했는데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만 엄마 밖에 없었다. 나만 엄마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학교 끝나고 엄마가 데리러 오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소중한 날 위해 일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사랑한다는 나랑은 왜 시간을 같이 안 보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걸 이해하기에는 난 어린 나이였다. 그날 나는 집으로 가 잠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 심통을 부렸다. 처음에 엄마는 내 화를 달래주다가 날 혼냈다. 그때 난 엄마한테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엄마 미워! 나 아빠랑 살래! 아빠한테 데려다줘! 이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엄마한테 뺨을 맞았다. 처음으로 엄마한테 맞아서 충격적이었다. 난 내가 엄마한테 상처를 줬다는 생각을 못하고 날 때린 엄마가 미웠다. 난 그날 그렇게 집을 나왔다. 어린 나의 첫 가출 시도였다.


엄마는 날 잡지 않았다. 당연히 1시간도 채 안돼서 난 다시 집에 들어갔지만, 엄마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거칠게 내 팔목을 잡고 나한테 왜 들어왔냐며, 니네 아빠한테 가라며 날 다시 대문 밖으로 내쫓았다. 나는 엄마한테 버림받을 수 있다는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을 잡고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날 버리지 말아 달라고 빌고 또 빌며 악을 썼다. 하지만 평소의 엄마라면 내가 그 정도 울고 악을 쓰듯 잘못했다고 하면 안아줬을 텐데 그날의 엄마는 나를 짐짝 떼어놓듯 가라며 나도 너 먹여 살리느라 힘들었다며 나도 좀 편히 살자며 나를 문 밖으로 밀쳤다. 나는 엄마의 힘에 의해 밀려나고 문은 굳게 닫혔다. 엄마가 안에서 니 아빠한테 전화해 널 데려가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무서웠다. 또 그 지옥으로 들어갈까 봐 겁이 난 나는 있는 힘껏 문을 두들기며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었다. 다시는 나쁜 말 안 하겠다고 목 놓아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집 문은 열리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란 때문이었을까? 어느 순간 우리 집 앞에는 이웃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우리 집 사정을 잘 아는 이모가 울고 있는 나를 달래며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이모네에서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고 눈 떠보니 우리 집이었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 엄마 눈치만 봤다. 엄마는 조용히 울면서 내 상처를 치료해 줄 뿐이었다.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같이 울었다. 둘 다 말은 없었지만 우리는 이 날 서로 끌어안고 많이 울었다.

그 뒤로는 나는 엄마 눈치를 많이 살폈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좀 더 엄마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의 엄마는 우리의 상황을 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며 나를 이해를 시킬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점점 엄마는 나에게 이해를 강요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엄마 말에 갸우뚱한다 싶으면 나를 붙들고는, 오리야 엄마는 엄마 혼자 벌어서 오리를 키우고 있어. 우리가 굶어 죽는다고 니네 아빠가 우리한테 생활비를 주니 뭘 주니? 어? 그럼 오리가 엄마를 이해해야지! 너까지 도대체 엄마한테 왜 이러니!라고 하며 목소리를 높이면서 내 팔목을 잡을 때면, 나도 모르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점점 혼자 있는 게 익숙해졌고 엄마는 점점 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왔다. 엄마는 종종 시장 이모들이랑 술을 마시곤 했는데 이 날 엄마의 취기는 달랐다. 엄마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내 앞에서는 티를 안 냈지만, 그날은 달랐다. 엄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에 앉아 통곡을 하셨다. 엄마의 그 울음소리는 지금도 내 기억에 똑똑히 남아있을 정도로 서러워 보였다. 나는 잠에서 깨, 우는 엄마한테 다가갔다. 너무나 서럽게 우는 엄마를 보고 이유도 모르고 따라 울었다.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엄마는 나에게 같이 죽자고 했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냐며, 나에게 같이 죽자고 엄마가 그렇게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그 단호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는 계속해서 나에게 이렇게 비참하게 사느니 편하게 죽자며 엄마가 혼자면 벌써 모든 걸 포기했을 텐데, 내가 있어 포기를 못 한 거라며 같이 죽자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휘청거리는 몸으로 락스를 들고 왔다. 겁이 났다. 내 앞에 락스가 있고 당장이라도 마실 것 같은 엄마가 무서웠다. 나는 울면서 엄마한테 죽지 말자고 빌었다. 엄마가 락스를 들면 제발 그러지 말라고 울면서 매달렸다. 엄마가 날 밀치고 죽어야 한다며 나에게 소리를 질러도 나는 엄마한테 내가 더 잘하겠다고 빌면서 매달렸다. 엄마는 그렇게 몇 번 내 앞에서 그런 소동을 벌였고 그때마다 나는 엄마한테 내가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되겠다고 그러지 말아 달라고 울면서 빌었다. 그때 난 고작 11살이었다.

그 이후 한 번은 엄마한테 술 마시고 제발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엄마가 얼마나 힘들면 그랬겠냐며 딸인 내가 이해해야지 안 그럼 누가 엄마를 이해해 주겠냐며 나에게 이해를 강요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더 이상 엄마한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엄마 말처럼 날 위해 고생하는 엄마를 이해 못 하는 나쁜 딸이 되기 싫었다. 그 뒤 나는 가면 쓰고 엄마가 원하는 이해심 많은 딸 노릇을 했다. 그러자 엄마는 내 딸은 착하고 이해심 많은 딸이라며 나를 칭찬했고 나는 점점 엄마한테 나를 숨겼다.




엄마는 과연 알고 있을까?내가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지. 글쎄, 엄마는 전혀 알지 못 하겠지. 그 뒤로 나는 엄마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면, 긴장을 하고 엄마가 잠들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혹시라도 엄마가 날 두고 내가 찾지 못하는 곳으로 영영 떠나갈까 봐 집에 락스, 칼, 가위 이런 위험한 것들은 엄마 모르는 곳에 내가 다 치워놨던 걸, 엄마는 전혀 알지 못 하겠지. 내가 아침마다 엄마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 엄마의 숨결을 확인하며 엄마가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학교에 등교했던걸, 엄마는 전혀 모르겠지.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할 시간에 집에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거리며 불안해하며 혼자 울던 나를 전혀 알지 못 하겠지.

이 모든 걸 기억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독립을 했어도 여전히 엄마가 세상에서 전부인, 어릴 적 엄마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11살 꼬맹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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