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친구들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가 안쓰럽고 뭉클하고 참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면서 이젠 아버지 생각만 하면 눈물부터 난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공감이 안 갔기 때문에 그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생각한다면 이기심, 무책임 딱 이 두 단어가 생각난다. 그게 내 아버지니깐..
아버지는 여러 번의 불륜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2명의 혼외자를 두었으며 그들에 대한 책임도 다 하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나나 우리 엄마한테 최선을 다했냐라고 물어본다면 아니었다. 우리는 철저하게 버려진 존재였고, 나한테 아버지는 길에서 마주치는 동네 아저씨보다 못한 존재였다.
아버지는 젊었을 적에 권투를 하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 큰 주먹으로 엄마를 때리는 모습이다. 근데 웃긴 건 아버지도 나름 자식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나한테 꼭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럼 나는 방에서 엄마가 맞는 소리를 그대로 들어야 했다. 사람을 때리는 소리와 엄마의 신음은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에 나는 너무 무서워서 엄마를 위해 맞설 생각은 전혀 못했다. 단지 그 화가 나한테까지 오면 어떡하지, 저 문을 열고 아버지가 날 때리면 어떡하지, 그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식이라고 나한테는 직접적인 주먹질을 안 한 거라고 해야 하나?
또한 아버지는 나한테 훈계를 빙자한 언어폭력을 자주 하셨는데 단골 멘트가 니 애미 닮아 멍청하다, 니 애미 닮아 뚱뚱하다, 니 애미 닮아서... 이런 비난 섞인 말들을 하면서 혼외자들과 나를 비교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아버지가 항상 불편했다.
연락도 하기 싫었다. 어차피 연락을 해봤자 좋은 소리 한 번을 못 듣는데 왜 연락을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꼭 내가 성적을 잘 받거나 학교에서나 대외적으로 상을 받거나 자랑할만한 일이 생기면 아빠한테 전화를 하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칭찬이 아니라 비교와 빈정거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연락이 뜸해졌고, 아버지는 전혀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 우리는 아버지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 없이 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필요성은 더더욱 필요없게 되었다. 항상 그랬듯이 나한테는 엄마라는 큰 존재가 아버지의 역할도 충분히 해줬기 때문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내가 30대를 막 들어섰던 어느날, 엄마한테 급하게 전화가 왔다. 당장 집으로 와보라는 연락이었다. 집에 가보니 아버지는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버지는 과거에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던, 혼외자들과 내연녀가 자기를 얼마나 존경하고 자기에게 얼마나 잘하는지 아냐며 자랑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들한테도 철저하게 버려진 것이었다. 갈 곳도 없고 돈도 없어진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가 아버지가 없는 게 익숙해졌을 때 우리에게 돌아왔다.
처음에는 단출한 짐가방 그리고 노숙자 같은 아버지의 행색에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난 뭐 하다가 이제 기어들어왔냐고 악에 받쳐 비난을 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했는데, 아버지가 없어서 내 인생이 어땠는데, 당신 내연녀들이 나나 엄마한테 어떤 짓을 했는데, 감히 이렇게 우리한테 돌아온다고? 그날은 아마 처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원망 섞인 비난을 아버지한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비난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만히 듣고 있을 아버지가 아니었다. 비난이 계속되자 아버지는 참지 못 하고 손이 올라왔다. 엄마가 막아섰다. 그러자 아버지는 차마 과거의 본인처럼은 행동하지는 못하고 막아선 엄마한테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냐며 다그쳤다. 순간 어릴 때의 기억이 났다. 무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은 객관적으로 봐도 전혀 무섭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보다 작아진 엄마가 아버지를 막아주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내가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아버지는 너무나 당당하게 나에게 큰소리로 내가 못 올 곳을 온 것도 아니고 아직 니 애미랑 돈 정리 할 것도 남았고 그리고 너랑 나는 천륜으로 이어져 있는데 어디 딸년이 싸가지없이 애비한테 이런 행동을 하는 거냐며 나에게 큰소리를 치고는, 독립해서 비어있던 내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나는 엄마를 쳐다봤다. 그리고 괜스레 순간 아버지를 무서워했던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엄마한테 당장 내보내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 한마디로 엄마한테 화풀이 아닌 화풀이를 한 거다. 엄마가 한숨 쉬며 말했다. "며칠만 있는다는데 저 꼴을 봐라, 불쌍하잖아. 네가 참아" 이 말을 듣고 엄마한테 괜히 아 몰라 엄마 맘대로 해 하고 본가를 나오고 나서는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음에도 아버지한테 휘둘리는 것 같은 엄마와 내 모습에 화가 났다.
그렇게 며칠만 있겠다는 아버지는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안 나가고 있다. 아버지는 지금 버티고 있는 것 이다. 이제 아버지라는 사람은 내가 본가에 가서 마주치면 나에게 더 이상의 비교 그리고 빈정거림은 안 한다. 엄마한테도 더 이상의 폭력은 안 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성을 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처음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원망도 컸지만 그만큼 아버지가 다시 생겼다라는 기쁨도 생겼고 또한 아버지도 과거랑은 다르게 변했겠지라는 기대도 생겼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변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대놓고 여자를 만나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여전히 다양한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 우리의 관계는 말 그대로 깨진 유리병이였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절대로 새 유리병처럼 될 수 없는, 말 그대로 깨진 유리병이다. 엄마와 나는 그걸 깨닫는 순간 포기를 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대감을 포기하고 남처럼 생각하니 숨 쉴 구멍이 생겼다.
아버지는 여전히 본인이 했던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계속 나를 설득하려 한다. 그리고 종종 나에게 네가 지금 이렇게 잘 큰 건 자기 덕이라며 네 몸에는 내 피가 흐르고 있다. 너와 나는 천륜이다. 아무리 부모가 잘못해도 자식은 부모를 버리면 안 된다. 이런 말을 많이 한다. 근데 나도 병신 같은 게 처음에는 잘 컸다고 말해주는 것에만 집중이 돼서 나를 인정해 주는 거 같아 좋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지금 늙고 갈 곳이 없고 더 이상 버려지는 것이 그 누구보다 싫으니 더 강조하듯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래서 나를 천륜이라는 걸로 묶어놓으려고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묻고 싶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천륜의 뜻을 제대로나 알고 하는 말인지. 천륜은 부모 자식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는 것일텐데 아버지는 나한테 그 도리를 다했는지, 아니 지금이라도 그 도리를 하면서 그 천륜을 말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걸로 묶일 생각이 없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여전히 난 당신을 용서 안했고 용서 할 생각이 없다.
난 당신한테 착한 딸이고 싶지 않다.